[Opinion] 편지 한 장 속 담겨 있는 무한함

편지 테마의 카페 어떠세요? 펜팔 편지 서비스 글 월 & 느린 편지 널 담은 공간
글 입력 2023.06.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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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드라마 <꽃보다 남자> 속 요트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유명 대사를 편지에 대입해 변형시키자면 다음과 같다. “흰 종이와 펜만 있으면 무엇이든 담을 수 있어.” 종이, 펜…. 일상에서 흔하게 존재하는 재료들로 담을 수 있는 것은 무한하다는 점이야말로 편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처럼 편지는 높은 접근성을 자랑하지만, 정작 편지에 대한 나의 경험은 시간을 많이 거슬러 간다. 중학교 때 나는 편지 쓰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편지지를 직접 제작하기도 하고, 편지에 기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낯부끄러워진 동시에 디지털 시대에 익숙해지며 어느새 편지 작성은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최근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나는 예전에 편지를 쓰며 느꼈던 설렘을 다시 한번 경험하기 위해 오랜만에 편지를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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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연희동에 있는 ‘글월’이다. 편지를 작성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책상과 의자, 다양한 형식의 편지지, 각양각색의 펜과 연필들까지. 그야말로 편지로 가득 채워진 곳이었다. 이곳은 펜팔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편지를 하나 작성하면 익명의 누군가가 작성한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 실제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펜팔 서비스는 내게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막상 편지지를 받고 나니 익명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떤 이야기로 채워야 할지 고민이 됐다. 오랜 생각 끝에 ‘오늘 하루의 결과와 상관없이 당신의 내일을 응원한다’고 적었다. 편지를 쓰며 누군가에게 위로하는 편지를 쓰는 행위 자체가 작성자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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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완성한 후 편지를 고를 차례였다. 본인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쓰인 편지 봉투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내 성격과 가장 유사한 사람의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편지에는 어렸을 때 남들에게 꺼내 보이지 못했던 상처를 고백하며 편지를 받게 될 이의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펜팔 편지를 고른 뒤에 이뤄지는 답장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다. 나는 편지의 내용에서 동질감이 크게 느껴져 답장을 결정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편지 덕분에 새로운 인연을 얻게 돼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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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게 편지를 썼다면, 이제는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다음 목적지로 수원에 위치한 ‘널 담은 공간’을 향했다. 이곳은 일 년 중 하루를 지정해 편지를 작성하면 일 년이 지난 뒤 선택한 그 날짜에 편지를 보내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일 년 중 하루를 특별히 정한다면 어느 날로 정해야 할까. 고민 끝에 내 생일을 택했다. 미리 내년 생일을 축하하며 ‘미래가 어떠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두 번째 편지의 작성을 마쳤다. 편지 작성 후에는 밀랍으로 편지를 밀봉하며 중세시대에 편지를 보내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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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체험을 통해 오랜만에 편지를 작성해보며 평범했던 일상을 낭만으로 물들였다. 종이와 펜만 있다면 완성되는 편지는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마음속 깊이 자리한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담겨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를 의미한다. 당신은 낭만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아직 낭만을 찾지 못했다면, 오늘은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을 써보면 어떨까. 수신인은 누구든지 상관없다. 편지를 쓰는 행위 자체가 당신의 일상을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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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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