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방랑자의 본능, 그 목적을 찾는 여정 - 마이그레이션

지구상 마지막 북극제비갈매기의 대이동을 뒤쫓다
글 입력 2023.06.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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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운명을 사주에서는 ‘역마살’이라 부른다. 사회적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역마살 낀 사주는 대체로 기구한 인생을 뜻한다. 하지만 세상이 방랑을 방황과 동일시하는 바람에 우리 스스로 동물적인 방랑의 본능을, 자유를 향한 갈망을 억누르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샬롯 맥커너히의 데뷔작 ⌜마이그레이션(윤도일 옮김, 도서출판 잔, 2023)⌟ 속 주인공 ‘프래니 린치’는 그런 욕망을 호흡의 원천 삼아 살아가는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어머니의 핏줄로부터 방랑벽을 물려받은 그녀의 직업은 조류학자다. 그야말로 역마살을 타고난 그녀에게 철새의 이동을 연구하는 이 직업은 어찌 보면 천직이다. 작품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로 기후 이상으로 동물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세상이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제비갈매기를 연구하고 있다. 북극제비갈매기는 철새 중에서도 가장 먼 곳을 이동하는 종으로 북극과 남극을 오가기 위해 무리지어 대양을 횡단한다. 프래니는 그중 두 마리의 다리에 위치추적기를 매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연구비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이들의 뒤를 쫓는 것은 오로지 프래니 혼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푸른 하늘에서 날개짓하는 북극제비갈매기를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바로 그린란드에 정박 중인 어선에 올라타 남극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래니는 뱃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술집으로 향하고 이곳에서 사가니호의 선장 ‘에니스’를 마주친다. 그녀는 이누이트 언어로 까마귀를 뜻하는 사가니호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직감한다. 에니스는 뱃사람 경험조차 없는 뜨내기를 배에 태울 수는 없다며 거절하지만, 그녀는 갈매기를 쫓으면 물고기떼를 발견할 수 있다고 그를 설득한다.


사실 환경 파괴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프래니에게 어부들이란 물고기를 절멸시킨 주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갈매기떼를 뒤따르는 것이다. 그녀는 품삯도 없이 뱃일을 돕고, 몇 번이나 거친 파도 속에서 생명의 위협과 마주하고,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는 선원들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녀의 약속처럼 눈부신 물고기떼를 만나기도 하지만 정부의 제재로 어선 운항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프래니는 틈틈히 남편인 나일에게 편지를 쓰고 한 곳에 모아둔다. 하지만 이들은 부쳐질 수 없는 편지임이 계속해서 암시된다. 단지 그녀가 지금 배에서 생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체 그녀가 수신자 없는 편지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진행 중인 프래니의 여정 사이사이에는 그녀의 옛 이야기들이 끼어든다. 어릴 적의 기억부터 시작해 몇 년 전의 가까운 과거까지 흘러오는 이 이야기는 프래니가 조류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를 서서히 드러낸다. 


 
“하지만 밤에 잠이 들었을 때 나는 폐에서 깃털이 자라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깃털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겁에 질려 기침을 하다가 잠에서 깼고, 그 순간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엄마를 떠나왔을까?” 
(p.31)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기질을 닮은 프래니는 어릴 적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모험을 떠났다가 겁에 질려 돌아온다. 하지만 며칠새 어머니는 이미 그녀를 떠나버린 후였다. 그 이후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프래니는 성인이 된 후 아일랜드 국립대학교에서 청소직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몰래 수강하게 된 나일 린치 교수의 조류학 강의를 계기로 그녀는 북극제비갈매기에 완전히 매료된다. 새를 매개로 서로에게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은 순식간에 결혼식을 올려 부부 사이가 된다.


이들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만에 서로를 배우자로 확신한 것은 그저 충동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나일은 그녀를 옆에 두려 하지만 불가항력에 가까운 방랑벽 때문에 프래니는 계속 그를 벗어나려 든다. 남편에게 미리 말해둬야겠다는 생각은커녕, 휴대전화가 꺼진 줄도 모르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버리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녀를 떠나면서 남긴 상처로 추측되는 몽유병이 둘을 계속 괴롭힌다. 깃털이 목구멍에 차오르는 꿈에 압도당해서인지,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면 프래니는 자신의 손으로 남편의 목을 조르고 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잠들기 전 자신의 팔목을 침대에 묶기 시작한다. 갈매기를 쫓아 몸을 실은 사가니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 이유도 사라진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다. 엄마의 뿌리를 조사한 끝에 자신처럼 사생아였던 어머니의 아버지를 수소문해 찾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그녀가 방황은 어릴 적의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이는 방랑을 위한 명분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 아이리스가 사실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짧은 가출을 마치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프래니는 빈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맨 채 새상을 떠난 엄마의 시신을 목격해야 했다. 그 기억을 온몸으로 거부했던 그녀는 나일이 이 사실을 직접 알아내 일깨운 뒤에야 어머니의 자살을 똑바로 직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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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가 나일과 함께 참여한 멸종 보호구역 본부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해리엇 박사는 북극제비갈매기들은 육식성 바닷새인 만큼 먹이를 찾기 어려운 지금의 상황이라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니 이들을 가두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일은 먼 곳까지 날아가는 것은 북극제비갈매기의 본능이기에 이들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이들은 가능한 한 먹이를 찾아내 끝까지 생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 말은 당신이 방랑하는 진짜 이유를 인정하길 두려워한다는 뜻이었어요. 당신 본능이요. 당신이 그에 대한 수치심을 버리면, 당신의 진실한 모습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 당신이 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어느 곳을 가든지 당신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랄 뿐이에요.” (pp.397-398)

 


그런 북극제비갈매기의 본능은 프래니의 본성과 꼭 닮았다. 나일은 본부를 떠난 뒤 맞이한 어느날 밤, 자동차 조수석에서 프래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방랑 또한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니 더 이상 막지 않겠다고, 가정이라는 굴레에 당신을 가두지 않을 테니 자유롭게 떠나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프래니는 그가 속박을 놓아버리고 결심한 방임이 곧 영원한 이별임을 직감한다. 동시에 사실은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남편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충격에 휩싸인 그녀는 충동적으로  맞은편에서 달리던 자동차를 향해 돌진한다. 이 사고로 나일과 상대 운전자는 세상을 떠난다.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한 끝에 가석방된 프래니는 시어머니를 통해 남편의 유언을 전해듣는다. 바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을 향해 자신의 유골을 흩뿌려 달라는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프래니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어선에 오른 진정한 이유다. 그녀는 조류학자는커녕 제대로 된 학위조차 없는 전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편의 뜻처럼 마지막 북극제비갈매기의 이동을 관찰하려 했던 집념과 남편의 유언을 지키려는 결심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된 사랑이었다. 과연 그녀는 남편의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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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 책표지를 다시 보니 푸른 하늘에서 구름을 가르는 갈매기의 날개짓이 새삼스럽다. 입맛대로 통제한 환경에서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과 달리, 동물들의 터전은 주어진 그대로의 공기와 땅, 물과 흙이 전부다. 이 소설은 지구 본연의 유기체적 리듬이 완전히 깨어져 버린 훗날, 최후의 생명체로 인간만이 남게 될 미래를 그린다. 환경 파괴로 인류가 직면하게 될 피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야생동물의 8할이 멸종된 소리 없는 자연은 그 자체로 서늘한 위기감을 일깨운다.

 

 

수백 마리의 북극제비갈매기가 내 앞에 있는 빙산을 뒤덮고 있었다. 저마다 짝들과 어우러져 하늘에서 춤추며 날카로운 소리로 기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다제비라고도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우아한 자태로 물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었고, 그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 때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물고기 떼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p.426)

 

 

아직까지의 현실에서는 놀랍지 않은 새의 날개짓이 작중에서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풍경으로 그려진다. 생생한 묘사 덕에 눈이 시리게 새파란 남극의 하늘과 차가운 빙하, 흰 깃을 푸드덕대는 갈매기가 저절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하지만 프래니가 휩싸인 감격은 실낱같은 희망에 불과하다. 마지막 갈매기떼가 이동과 먹이 찾기에 성공한 이 장면은 분명 해피 엔딩에 가깝지만 지구의 회복을 장담하기에는 턱없다. 그렇기에 갈매기 무리를 마주한 그녀의 기쁨이 극적일수록, 우리에게 그려지는 지구의 미래는 더없이 암담해진다.

 

이 미래는 사회운동가 같은 문체 없이도, 살아 숨쉬는 문장력과 묘사력만으로도 독자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진다. 이 점이  ⌜마이그레이션⌟이 세계로부터 극찬 받은 이유일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 책의 장르를 환경 소설로 넘겨짚은 것이 섣불렀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가니호의 운항은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프래니와 나일의 과거는 치정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중반부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두 인물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결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두 갈래의 이야기는 수시로 교차되는 데다 서사의 속도나 분위기, 공기의 온도마저도 딴판이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두 이야기는 같은 호흡을 공유한다. 비슷한 속도로 진행되어 어느 한 순간 일제히 절정에 치닫는다. 두 서사가 난잡하다는 인상 없이 탄탄하게 결합되는 이유다.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던 주인공의 실체는 크고 작은 복선으로 숨겨져 있다가 과거를 되짚을 때 모습을 드러낸다. 사가니호의 최후를 앞둔 현재 시점의 이야기에 몰입하다가도, 프래니가 저지른 죄목이 궁금해 과거 이야기가 등장할 때까지 바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영화화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 역시 반갑다. 필요성 짙은 메시지와 매력적인 구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스크린 위에서는 어떻게 숨쉴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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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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