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만드는 넘버들

글 입력 2023.06.2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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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시조가 국가 이념인 조선에서 양반에게만 시조가 허용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모든 백성의 일상과 함께하던 시조는 작품 속에서 15년 전부터 일부 지배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상태. ‘단’과 ‘진’은 신분에 상관없이 시조를 읊을 수 있는 세상, 모두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싸운다. 


단과 진을 비롯한 골빈당의 활약상은 흥겹고 중독성 있는 넘버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국악기 선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랩처럼 빠르게 이어지는 가사를 가진 넘버는 ‘스웨그에이지’라는 제목에 걸맞은 개성과 매력을 잘 보여준다. 한국어의 운율을 잘 활용해 곱씹어 들을수록 그 맛이 살아난다는 것도 특징이다. 


관객의 잠재된 흥을 깨우며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넘버 중에서도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섯 곡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조선수액: “하고 싶은 말을 뭐든 시조에 담아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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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 매일같이 무위도식 / 내가 바로 조선에서 제일 씩씩?

난 외톨이 살다 보니 적응됐지 / 나를 욕하는 저 푼수들은 관심 없지

(중략)

너무 답답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사는 건

정말 갑갑해 평범한 시조 평범한 생각 그런 건

하고 싶은 말을 뭐든 시조에 담아보는 거야 / 그게 바로 조선 수액

  


작품의 주인공인 단이 처음으로 혼자 부르는 넘버로, 관객에게 단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한다. 그는 양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평민들과 쉽게 어울리지도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역적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데다가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이 시점의 단이 갈망하는 것은 정해진 형식을 벗어난 자신만의 시조를 읊는 것.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야망을 갖고 있기보다 그저 남들과 좀 다르게 살기를 꿈꾸는 젊은이, 그가 바로 단이다. 


그는 ‘조선수액’에서 자신을 일컫는 후레자식이라는 멸칭을 ‘무위도식’, ‘제일씩씩’이라는 가사로 변주하며 자신이 나아가고 싶은 길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삶의 변화를 절실히 꿈꾸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기에 일단 젊은이의 패기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밀어붙이는데, 여기서 그만이 가진 ‘수액’(Swag)이 뿜어져 나온다. 여기에 능청스러운 배우의 연기가 더해져 단은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새로운 세상: “답답한 너무 갑갑한 내 운명을 바꿔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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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답답해 정말 갑갑해 / 이대론 안 돼 바뀌어야만 해

아버지가 바라던 꿈같은 세상

아버지의 뜻을 품고 이제 내가 해볼게

틀에 박혀 살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살아

양반에게 속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

답답한 너무 갑갑한 내 운명을 바꿔보겠어

 


‘조선수액’이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인 단을 관객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는 넘버였다면, ‘새로운 세상’은 한 단계 성장한 단을 볼 수 있는 넘버다. ‘저잣거리의 후레자식’이던 단은 골빈당에 들어가 아버지가 사실은 누명을 썼음을 알게 되며 목표가 생긴다. 바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철없어 보이던 그는 이 넘버를 통해 의지를 새롭게 다지며 어엿한 골빈당의 일원으로 각성한다. 


앞서 ‘조선수액’에서 익살스럽게 불리던 ‘너무 답답해 정말 갑갑해’라는 가사는 ‘새로운 세상’에서 보다 진지하고 무게가 실린 가사로 새롭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갑갑한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바꾸고자 하는 게 자기 자신에서 이 세상 전체로 확장될 때, 단은 영웅서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다. 조명 활용이 돋보이는 넘버라서 무대에서 직접 볼 때 그 웅장함이 더 크다.

 

 

 

나의 길: “나의 길은 내가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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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믿는 일에 주저해선 안 돼 

머물러 서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더 이상 운명이란 거짓말에 속지 않아

나의 길은 내가 선택해 / 내 운명을 거부하겠어

 


단에게 ‘새로운 세상’이 있다면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진에게는 ‘나의 길’이 있다. 단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동체적인 목표를 갖게 된 것과 달리, 진은 억압된 사회에서 백성들이 겪는 고통에 주목하며 초반부터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는 인물이다. 시조 대판서의 딸로 가만히 있어도 손해 볼 것 없는 단이 아버지의 뜻에 반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의지와 대담한 실행력이 필요하다. 


운명을 따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고민 끝에 진이 내린 선택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단의 ‘새로운 세상’에 이어서 나오는 ‘나의 길’은 두 사람이 얼마나 단단한 각오로 골빈당 활동에 임하는지 잘 보여준다. 서로 방식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더 자유로운 세상, 모든 백성이 자신의 마음을 시조에 담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건 같다. 두 사람이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보는 것이 이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것이 양반놀음: “후레자식 그게 나 오늘도 양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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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손가락질한다 해도 고개를 높이 들어

모두가 헛구역질한다 해도 얼굴을 들이밀어

센 척은 기본 허리는 안 굽혀 / 누리는 것만큼 책임은 안 지네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 후레자식 그게 나 오늘도 양반걸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대표하는 넘버를 하나 꼽는다면 떠오르는 넘버가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이것이 양반놀음’을 고르고 싶다. 양반놀음은 골빈당의 뜻을 어떻게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단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놀이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놀이는 어떤 이념이나 생각을 퍼뜨리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터. 양반의 거만한 걸음걸이와 뻔뻔한 태도를 과장되게 흉내 내며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이 곡은 저잣거리 사람들은 물론이고 관객까지 사로잡는다. 실제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판소리와 탈춤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곡의 공통점은 중독성이 있다는 것 아닐까. 이 넘버도 ‘오에오’ 하고 반복되는 후렴구의 중독성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다 같이 자유롭게 ‘오에오’를 외치며 ‘백성들의 세상’을 외치게 된다. 마음껏 풍자하다 보면 양반도 별거 아닌 게 되어버리고 용기가 생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으면서도 작품의 흥을 잘 보여주는 넘버이다.

 

 

 

정녕 당연한 일인가: “이제 내가 하는 말은 솔깃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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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도포에 눌러 쓴 갓 / 갓 태어난 핏덩이들 앗

잘 들어 그런 시조 / 두 번 다신 듣기 싫죠

양반 놈들 하는 것은 같잖은 가짜 / 이제 내가 하는 말은 솔깃한 진짜


(당연하게) 우린 살아가네 / (당연하게) 그래도 살아가네

(정녕 이게) 당연한 일인가 / (정녕 이게) 당연한 일인가

 


저항의 메시지가 담긴 ‘정녕 당연한 일인가’는 골빈당이 임금과 시조 대판서 앞에서 부르는 일종의 상소문이다. 가사에는 그동안 골빈당이 보고 들은 백성들의 참상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의 불행은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거듭되는 불행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사회문제로 봐야 한다. 초반에 단이라는 개인이 자기 자신의 삶과 운명에 던졌던 질문은 백성 각각의 사연을 거치며 더 큰 물음으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게 정녕 당연한 일인가?”


이 넘버에서 특히 강조되는 건 백성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이야기다. 북쪽으로 징용 간 남편, 대감집에 빼앗겼다는 아내의 이야기는 시조 대판서가 내내 주창하던 ‘부강한 국가’라는 개념과 대비된다. 부강한 국가는 실체가 없는 반면, 백성 개개인이 겪은 희생은 ‘진짜’로,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양반놀음’과 함께 골빈당원들의 군무가 두드러져 보는 재미 역시 큰 이 넘버는 2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

 

이 외에도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는 극장에서 한번 듣고 나면 집에 돌아오면서 계속 흥얼거리게 하는 넘버가 많다. 다행히 넘버 19곡, 총 38개 트랙이 실린 OST 앨범이 관객들의 성원으로 발매되어 있으니, 1번 트랙부터 들으며 무대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시 한번 극장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오는 8월 2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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