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본 미술관 방문기 - 쇼토 미술관

에드워드 고리 展
글 입력 2023.06.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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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고리 展 - 에드워드 고리를 돌아보는 여행

Journey to the World of Edward Gorey


 

여행 중에 만나는 비는 대체로 반갑지 않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과 부슬부슬 내리는 비, 그리고 쉴 새 없이 우산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바람. 어둡지는 않아도 차갑고 축축한 날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에드워드 고리 전시를 보기에 적절했다.

 

"미스테리한 세계관과 모노톤의 섬세한 선묘로 전 세계에 열광적인 팬을 가지고 있는 그림책 작가 에드워드 고리. 에드워드 고리는 자신이 글과 일러스트를 모두 담당한 그림책 외에도 삽화, 무대와 의상디자인, 연극과 발레 포스터 등 다채로운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에드워드 고리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부조리를 그리는 카툰 문학의 거장. '팀 버튼이 영향을 받은 화가이자 작가인데 화풍을 말하자면 굴소년의 우울이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대충 느낌이 전해질까. 무대와 의상 디자인으로 토니상을 받았다는 커리어도 언급하고 싶은데 이러면 다소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든다. 수상 작품명이 '드라큘라'라고 덧붙이면 그래도 납득할 만한 흐름이 될 것 같다.


이 전시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로는 음울하고 섬세한 작풍이 마음에 들어서, 두 번째로는 국내에서는 절대 개인전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비 오는 평일 오전에 방문했는데도 다양한 연령대의 적지 않은 관람객이 있었는데 국내에 에드워드 고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많지 않다. 심지어 출간된 그림책의 대부분은 절판이다.

 

이 정도의 인지도 차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 잡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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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섹션은 '고리와 어린아이' - 고리의 어린 시절 그림과 어린아이를 주제로 한 고리의 그림이 전시되었다. 주제에 맞게 '불운한 아이' 삽화가 일부 전시되었는데 글이 없어도 내용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를 소재로 한 그림책이지만 아동보다는 어른의 그림책 같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역시나 음울했다. 환상적으로 슬픈 엔딩이 아니라 입맛 씁쓸한 현실적인 불행이었다. 그림은 흑과 백, 한없이 섬세한 배경, 그리고 어두운 내용이 사람을 금방 몰입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섹션은 '고리와 이상한 생명체' - 이 구역은 그림책 '수상한 손님'의 삽화가 전시되었다. 앞서 본 '불운한 아이'가 취향에 부합하는 내용과 작풍이었다면 '수상한 손님'은 에드워드 고리의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독창적이고 수상한 생명체가 등장하는데 묘하게 정이 간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생물체에는 낯섦의 한계가 있는 건지 몰라도 앞의 섹션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삽화를 구경하게 되었다.

 

이 전시에서 특히나 좋았던 점은 삽화를 다 보고 나면 해당 그림책이 전시되어 있어서 전체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림을 먼저 접하고 나름의 감상을 한 다음에 작가의 취지를 파악하는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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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고리와 무대 예술' - 솔직히 말해서 고리의 화풍과 내용을 감상한 뒤라 이런 사람이 발레? 무대? 의상? 하는 의문을 숨길 수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저런 결과물을 내는 사람에게 다양한 인풋이 존재한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 그림책 삽화가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생각의 전환이 느리게 이루어졌다.

 

발레를 소재로 한 고리의 작품을 보니 발레 잡지의 표지?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발레를 지나 드라큘라가 등장하자 뭔지 모를 평온함을 느꼈다. 의문이 등장할 새 없이 바로 납득이 갔기 때문에. 드라큘라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누구보다 드라큘라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고리였다.


이어서 '고리의 책 만들기'에선 고리의 작업환경을 소개했다. 그림을 보기만 해도 아주 가느다란 펜촉이란 걸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섬세함의 뒷면을 보는 건 감탄이 나오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림책의 로고까지 본인의 손끝에서 만들어내다니. 가볍게 말하자면 변태적인 성향이 있어야 이런 작품을 낼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적당하게 말하자면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걸 고집하는 건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지막 섹션인 '케이프 코드의 커뮤니티와 코끼리'는 에드워드 고리가 뉴욕을 떠나 정착한 케이프 코드의 스튜디오와 그곳에서의 생활, 사후 에드워드 고리 미술관이 된 현황 등을 소개한다. 이 전에 대형 소파에서 비치된 에드워드 고리의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보니 이쪽에서 마지막 집중력을 할애하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내용은 작품만큼 인상적이지 않아서 흘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 나와 MD 판매 구역으로 향했다. 그림책 작가답게 실제 그림책을 판매하고 있었고 클리어 파일, 엽서, 핀 뱃지, 마스킹테이프와 같은 기본 굿즈부터 타로카드까지 나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타로카드가 고리의 그림을 컴팩트하고 다양하게 소장할 수 있는 아이템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가지고 싶은 삽화는 따로 있었기 때문에 엽서만 몇 장 구매하는 걸로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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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대형 미술관처럼 외국인 관람객 친화적인 곳은 아니라서 영어로도 소개글이 적혀있었지만 형식적인 느낌이라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시선의 높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느껴진 것만 빼면 아쉬울 게 없었다.

 

미술관장이 에드워드 고리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신경을 쓴 게 느껴지는 구성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두 시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전시뿐만 아니라 미술관에도 호감을 쌓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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