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울한 몽상가를 덮은 하얀 밤, 연극 '하얀 밤, 그리고…까만 아침' -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

글 입력 2023.06.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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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울한 몽상가를 덮은 하얀 밤


 

도시의 밤하늘 아래에서 목구멍 깊은 곳부터 들끓는 경멸감에 괴로워해 본 적이 있는가? 역겨움을 참을 수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적은? 젊은 사람이라면, 아니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이라면, 하다못해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믿는 이라면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밤하늘이, 이 도시가, 아니 이 세상이 그토록 경멸스럽다면 그 안에 있는 나는 내가 별처럼 수놓은 그것들로부터 정말 자유로울 수 있는가? 저 순진하고 사악한 군중이 나의 경멸을 피하지 못했다면, 개중에서 가장 느리고 아둔한 나는 더 많은 빛의 화살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고독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가 품은 망상은 그에 맞먹거나 더 거대할 정도로 평화와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가슴 속에 품는다. 난생처음 구멍을 발견한 아이가 처음으로 높이의 개념을 이해한 것처럼, 오직 고통과 절망을 통해서만 환희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나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될 때 더 명확한 진리를 가리킨다. 가장 고통스럽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가장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인 것처럼, 지나치게 비대해진 판타지를 가진 몽상가는 그 누구보다 현실을 갈망하는 이일 것이다.

 

오늘 괴로워해 연극 <하얀 밤, 그리고…까만 아침>은 그런 몽상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그는 아둔하여서 현명하고, 말이 많아서 말하지 못하며, 가지고 싶어서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기묘한 중첩과 혼란 속에서, 그는 환상과 실재가 겹친 단 하나의 살아있는 대상을 만남으로서 한 발자국 나아간다. 작품의 주인공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 한다.

 

 

 

2. 환상을 찢고 다시 봉합한 여인에 대하여


 

연극 <하얀 밤, 그리고 …까만 아침>은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기반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백야>는 짧은 소설이고, 연극 역시 텍스트를 크게 수정하지 않고 재현한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약간 세밀한 부분은 다르지만, 연극에 초점을 두고 요약해보고자 한다.).

 

몽상가인 주인공은 도시의 하늘 아래에 들끓는 군중에게 경멸하고, 들판에 자란 풀숲과 같은 자연 속에서만 안정감을 찾는다. 그는 가난한 젊은이로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고 방에서 늙은 하인과 함께 산다. 그는 때때로 거미줄 쳐진 자신의 방을 보면서 신경질적으로 하인에게 불평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의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그가 막연하게 상상한 여성의 모습과 겹친다. 우울하고 병약한 여인을 그는 쫓아가고, 여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성을 움츠러든다. 주인공은 구구절절 자신이 여성과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음에도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마저 밝히며 자신이 무해하며, 울고 있는 당신의 모습에 이끌려서 쫓아왔음을 밝힌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여인은 마음을 열고 자신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감격하고, 비가 오지 않는 한밤의 이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 이후로 둘은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밤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한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자신이 어떤 이야기할만한 과거가 없을 만큼 공허하여 그것을 채울 여인-으로 대표되는 것-을 강렬히 원해왔음을 이야기한다. 여인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게 공감하고, 그가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며 깊게 교감함을 밝힌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나스첸카라고 밝힌다.

 

다음에는 나스첸카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한평생 할머니의 구속에 얽매여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입자로 온 젊은 남성을 보고 호감을 느낀다. 그와 층계에서 몇 번이고 마주치면서, 남자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데이트를 하지만, 나스첸카는 남자가 할머니에게 얽매여있는 자신을 동정해서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확신한다.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남자가 모스크바로 돌아가게 되자 나스첸카는 그의 방으로 들어가 자존심을 다 버리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나스첸카에게 자신에겐 그녀를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떠난 일 년 후에도 나스첸카가 다른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결혼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가 울고 있었던 그날 밤, 그녀는 그 남자가 돌아왔지만,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나스첸카의 이야기에 주인공은 슬퍼하면서,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을 권한다. 나스첸카는 자신 역시 편지를 미리 써놨다고 이야기하면서 주인공에게 그것을 전해달라고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그러리라 약속하면서, 다음의 만남을 기약한다. 주인공은 편지를 전해줬지만, 나스첸카에 대한 갈망이 커짐을 느낀다.

 

그리고 다음 만남에서 나스첸카는 답장을 받지 못한다. 주인공은 나스첸카와 함께 슬퍼한다. 나스첸카는 주인공을 그 남자의 모습과 겹쳐보면서, 당신과 사랑에 빠진 여자는 행복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나스첸카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나스첸카는 기뻐하면서 자신의 집에 이사 오고,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그제야 밤하늘 아래의 군중을 다시 본다. 그렇게 둘이 돌아가려던 순간, 집 근처에서 그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녀는 바로 달려가 그에게 안긴다.

 

다음 날, 주인공은 나스첸카로부터 용서를 구하면서도 자신과 친구로 진해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그때 늙은 하녀는 그런 그에게 방을 모두 치워놨으며, 이제 누군가를 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늙은 하녀의 얼굴에서 시간과 외로움, 어리석음을 읽는다. 나스첸카의 편지를 읽은 주인공은 절망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바꿔 놓았음을 긍정한다.

 

 

 

3. 모순의 아름다움


 

도스도예프스키의 다른 작품이 그러하듯, <백야>는 캐릭터의 심리적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몽상가로서 살아가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 중간에 있는 여성, 나스첸카를 만나면서 절망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는 주인공, 할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과 수동성으로 남성과의 관계-그 방법 역시 수동적인-를 통해 해방되길 원하다가, 주인공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은 나스첸카, 연민과 호감이 섞인 감정으로 나스첸카에게 접근했다가 오랜 시간 후에서야 그녀를 찾아온 남자까지,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역은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장황한 독백과 굵직한 정서적 흐름은 몽상가 주인공이 현실의 인물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는 과정을 더 감동적으로 만든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가장 어두운 밤을 밝게 만든 여성과의 만남을 다룬 작품이다. 환상 속 여성은 현실적인 여성 나스첸카의 모습으로 그에게 접촉하고,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영원히 헤매던 밤을 하얗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여전히 몽상가이며 좁은 방에서 혼자이지만, 나스첸카의 편지로 혼란한 경계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을 고려하여,-지분 상으로나, 묘사상으로서나 필연적인 결과긴 하지만- 연극에서도 주인공에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쏟는다. 이 작품을 리뷰하면서 성찬제 배우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개인적으로 극 중에서는 세 가지 포인트에서 인상적이었다. 밤하늘 아래의 군중을 경멸하면서 한쪽 얼굴을 파르르 떠는 장면, 나스첸카 앞에서 거의 자폐적 모습과 선지자같이 스스로 펼쳐낸 장황한 말에 빠져드는 장면, 나스첸카와 함께 하얘진 밤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그랬다.

 

연극은 <백야>라는 제목을 살짝 변형한 것처럼, 나스첸카를 잃은 주인공의 슬픔을 좀 더 강조하는 장치로 연극의 시작 전과 후에 장면을 좀 더 끼워 넣었다. 배우는 연극 시작 전 골방에 버려진 인형처럼 우울하게 누워있는 모습으로 누워있고, 이 장면은 연극이 끝났을 때도 반복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지막 장면에는 방의 한구석에 나스첸카의 편지가 있다는 점이다. 연극은 이 장면을 넣음으로써 '까만 아침'을 강조한 셈이다. 주인공의 고독은 좀 더 짙어졌지만, 그만큼이나 나스첸카와의 경험은 더 또렷해진다.

 

 

 

4. 나가며


 

여러 고전이 그렇지만, 유독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개인적으로 마음을 울리는 면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초라한 현실 속에서 거대한 망상을 갈구하는 방법으로 현실을 갈구하는 우둔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나는 언제나 경멸스러운 군중 속에서 홀로 있는 기분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역시 나와 똑같은 이라는 것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해한다. 언제나 강한 감정은 그 이면의 진실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법이다.

 

나는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나스첸카를 이해한 만큼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나스첸카는 어쩌면 주인공에게 편지를 따돌려주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녀가 의식적으로 했건 말건 주인공은 알고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사랑하는 여자의 고통을 기회가 아닌 진심 어린 슬픔으로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그녀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일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편지를 전해줬으리라.

 

나스첸카와 주인공 사이에는 깊은 고독이 공명하고 있다. 사랑보다 깊은 그 감정은, 잠시나마 결합한 그 순간이 영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환희에 찬 것이었을 것이다. 그 찰나만을 위해 두 사람은 긴 시간을 고독하게 견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녀가 다른 남자를 향해 주저 없이 달려갔을 때조차 환희할 수 있었다. 그 후에 고독과 절망이 남은 자리를 채운다 해도, 주인공은 이전과 다르다. 편지가 남아 방의 한편을 채우는 한, 그는 영원한 고독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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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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