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을 기억하는 방법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6.1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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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한 줄로 정의하기에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과 맥락들이 한 줄 한 줄 이야기를 새로이 덧대기에.

 

아르코미술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의 미술관이다. 1979년 마로니에 공원(옛 서울대학교 터) 내에 건물을 신축, 이전하면서 외관 전체를 뒤덮은 붉은 벽돌이 마로니에 공원과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다.

 

해당 미술관은 여타 공간에 비해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다. 그런데 급변한 우리나라에서 충돌하는 현장이었던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 ‘일들’과 결부되어 독특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동숭동은 서쪽으로 대학로와 접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거리로 알려져 있다. 많은 미술관, 박물관, 소공연장 등이 밀집해 있으며 다양한 연극, 뮤지컬, 음악 공연 등이 열린다.

 

마로니에 공원은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있던 곳으로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수많은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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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제2전시실에 놓인 둥그런 좌대 위 조각과 영상을 설치한 양승빈의 작업은 제작 배경과 결과물이 묘하고 흥미롭다.

 

작가는 ‘김수근 건축가’가 왜 의자를 디자인하지 않았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김수근(1931~1986)은 1979년 아르코미술관 외에도 남영동 대공분실,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경동교회 등을 설계한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대표 인물이다.

 

김수근을 조사하면서 제작하려던 의자의 존재를 알게 된 양승빈은 직접 그 의자를 만나기 위한 여정을 영상에 담았다.

 

사실 이 영상은 건축가에 대한 사실, 허구, 상상력을 기반으로 촬영한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진지한 음악이나 인터뷰 장면을 삽입하고, 취재하는 듯한 구도로 제작했기에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판별하기란 불가능이다.

 

‘사변적 고고학’이라 부르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과거의 사실로부터 작가의 재해석으로 이어지면서 조작한 기억을 한 겹 덧씌운다.

 

여기서 조작은 나쁜 의도가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연구자 혹은 역사가가 아닌 작가로서 고고학적인 대상에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한 행위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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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전시를 감상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포용적 환경 조성’을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그런 공간의 모든 곳에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는 없다. 가령 아르코 아카이브실과 아카이브라운지는 계단을 올라가야만 하기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는 접근이 제한된다.

 

문승현(옐로우 닷 컴퍼니)은 누군가에게 불친절한 미술관의 곳곳에서 홀로 혹은 안무가 김명신과 함께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퍼포먼스 영상을 제작했다.

 

2채널 비디오로 구성되어 있어 한쪽에서는 '시에나 색(지구 색으로 불리는 황갈색)'이 두드러지며 미술관 건축물의 구조를 패턴화한 영상이 동시에 재생된다.

 

주황빛의 공간을 헤집으면서 구역과 구역은 사람 그리고 신체가 매개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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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거날 써츠는 ‘앉음’으로써 신체가 공간을 점유하는 순간을 생각하게 하는 의자 디자인을 선보인다. 반드시 둘이 앉아야 평행을 이루며 안정적인 의자, 네 다리가 오므라진 의자, 엉덩이 뒤쪽이 아래로 많이 기울어진 의자 등 독특한데, 관객이 직접 앉아볼 수 있다.

 

평범한 의자와 다른 모양새로 인해 어쩌면 불편하기까지 한 의자는 성공적으로 앉으려 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 행위에 집중하게 한다.

 

멈춰서 그 자리에 풀썩 앉으면, 내가 중심이 되어 어느 정도 거리까지 말 그대로 ‘차지’하게 된다. 더욱이 움직일 때는 몰랐던 광경과 공기의 흐름까지 느낄 수 있다.

 

마로니에 공원, 미술관 야외 로비와 바로 맞닿아 있는 ‘프로젝트스페이스’에서 작가가 고안한 의자에 앉아, 네모로 벽을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풍경을 바라보면 수많은 감각들과 기억들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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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기획전으로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아르코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와 장소성을 두루 사유할 수 있었다.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의식을 불러내 아르코미술관을 새롭게 작동시키는 작품들은 역사 연구자와는 다르게 공간의 역사를 사유하고 기록하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전시 리플릿에 적힌 것처럼 각자 공간에 대한 기억과 견해를 갖고 있겠지만, 예술가는 그것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석하고 풀어냄으로써 계속해서 그곳이 유동적이게끔 한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니, 댄스 크루들이 한데 모여 준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공원은 1990년대에 비주류 문화와 소외된 목소리의 창구로 통하며 야외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이던 곳이었다.

 

지금은 그들의 존재를 알릴 곳이 너무나도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여전히 교류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과거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순간이 교차하면서 괜히 위안을 받았다.


대학로에 가면 그곳 만이 내뿜는 활기가 있다.

 

그래서 종종 들러 가만히 버스킹을 듣기도 하고, 비둘기를 피해 벤치에 앉아 지나는 이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오늘은 평온하지만 내일은 분투할 장소가 될 수도 있을 이곳의 미래를 우선은 기대한다.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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