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절제된 아름다움, 쓰디쓴 유쾌함 - 뮤지컬 시카고

글 입력 2023.06.1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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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카고의 절제된 아름다움이 좋아"


함께 뮤지컬을 보고 나온 지인이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나는 뮤지컬을 보는 동안 내가 느꼈던 그 뿌연 시야가 확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무대를 보면서 정말 황홀하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뮤지컬과는 다르다고 느꼈던 점. 그것은 바로 절제미였다.


항상 숨어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들은 무대로 나와 주인공보다도 더 많은 무대를 차지한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는 고작 해봐야 기존 무대의 1/3도 안되는 크기. 큰 무대장치도 없다. 화려한 소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배우들이 아주 최소한으로 이뤄진 의상을 입고 있으며 그 의상은 모두 검은색이었다. 관능적인 흑백으로 이뤄진 그들의 의상. 아마 뮤지컬 시카고에서 가장 화려했던 것은 기껏 해봐야 마지막에 나오는 은색 구두 아녔을까?


끈적한 재즈 음악과 함께 선보이는 무서울 정도로 담백한 무대, 그 위에서 배우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살인이 자주 일어나는 그들의 세상. 다양한 여성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남성을 죽여 수감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을 비난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기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세상 사람들은 살인을 하나의 가십거리로 여겼고, 그들의 매콤한 살인사건 이야기에 열광했다. 진실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얼마나 그들의 흥미를 돋우는가였다.


사람들 죽이고 수감되어 있는 여성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자극적이게 만들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노력한다. 그들의 살인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검고 밋밋한 옷을 대신해 그들을 화려하게 꾸며줄 다이아몬드보다도 반짝이는 액세서리였다. 신문에 그들의 살인이 크게 적힐수록 그들의 살인죄는 반짝였다.

 

 

[2023시카고내한]Roxie_록시 하트(케이티 프리덴).jpg

 

 

그리고 그 여성들 사이에 우리의 주인공 록시 하트가 있다. 뮤지컬을 보기 전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배우들의 록시 하트를 봤지만, 케이티 프리덴의 록시 하트는 그 누구보다도 소녀같았다. 둥근 얼굴형 덕분일까? 그녀의 록시 하트는 너무도 순진하고 약아서 과분한 꿈을 꾸면서도 행복에 젖어있는, 마치 초등학생 여자아이 같았고, 미성숙함이 유독 돋보였다. 마치 선심 쓰며 '맛있는 사탕 줄게'라는 듯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활용하는 록시 하트 말이다.


그렇다면 그 죄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이 뮤지컬에서 어떤 존재일까? 최고급 시가도, 비싼 자동차도 없다고 허공을 향해 부르짖는 잘생기고 잘난 변호사, 빌리 플린이 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라고 속삭이지만 분명한 것은 지폐가 그의 손에 들리지 않는 이상 그의 사랑도 샘솟지 않는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금액이 있지 않으면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도 않지만 돈이 들리는 순간 온 세상은 그의 손에 그려진다. 사건도, 기자도, 모든 것이 빌리 플린의 능구렁이같이 거짓말로 점철된 그림대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빌리 플린은 나잇대가 있는 배우들이 맡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최재림 배우가 완벽하게 그를 소화해낸 적이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제프 브룩스가 빌리 플린을 연기했다. 그 또한 일반적인 빌리 플린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한다.

 

그렇기에 그의 언변에서 천재성이 더욱 돋보였다. 기존의 나잇대가 있는 빌리 플린은 '노련함'이 주된 키워드라면, 제프 브룩스나 최재림 배우와 같은 젊은 배우들의 빌리 플린은 '재능'이 조금 더 주된 키워드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빌리 플린은 비싼 자동차도, 최고급 시가도 필요 없다고 외치지만 그 잘난 재능을 활용하고 그토록 입이 닳도록 말하는 사랑의 대상이 바로 돈이라는 것은 확실한, 능구렁이 같은 잘생긴 젊은 변호사였다.


그렇다면 이 무자비하고 아름다운 죄수들을 바라보는 교도소의 간수는 어떤 인물일까? 그녀는 통칭 마마라고 불린다. 아주 인자하고 상냥한 마마,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만큼 그녀에게 인자하고 상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자함과 상냥함은 지금까지 적어낸 다른 캐릭터들이 그렇듯 아주 친절하고 달콤하고 무거운 돈 냄새가 난다.

 

 

2023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 공연_포스터.jpg

 


우당탕탕,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어지럽게 돌아가는 뮤지컬 시카고의 이야기를 정의내리자면, 유쾌함이다.

 

소품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무대와,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의상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꽉 채우는 배우들, 그리고 그 배우들 사이에서 아주 끈적이고 달달하게 흐르는 재즈 음악들을 듣다 보면 어느새 몸을 흔들며 즐거워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웃다 보면, 그 웃음 안에서 비린 맛이 난다.

 

진실에 상관없이 자극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즐겁게 춤을 추는 배우들의 구두 아래 무대를 가득 채우는 피비린내, 그리고 이 모든 가식을 뽑아내는 돈과, 돈과, 돈.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약 10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현재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쓰디쓰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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