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 연극 '우주먼지'

글 입력 2023.06.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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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지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굳이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고, 있으나 없으나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날이 갈수록 내가 특별하다는 증거를 발견하는 순간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임을 인정해야 하는 때가 늘어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것뿐이라는 감각을 모두가 한 번쯤은 느낀다. 


제1회 ‘정:지 연출가전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프로젝트 스페이스바의 <우주먼지>도 그런 감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연극이 시작되면 한 젊은 여자가 일상에서는 듣기 어려운 어투로 말을 하며 그야말로 ‘연극적인’ 등장을 한다. 의아한 것도 잠시, 이어지는 여자의 생활은 지나칠 만큼 일상적이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온다. 처음에 나온 연극 투의 대사는 체홉의 희곡 『갈매기』의 등장인물 ‘니나’의 대사 일부로, 배우지망생인 여자가 오디션을 위해 연습 삼아 여러 번 읊었던 것뿐이다. 이 연극에서 가장 ‘연극적’이었던 대사조차 그렇게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일상 속으로 녹아든다. 


여자는 부모님에게 연기를 포기하고 취업을 할 거라고 말해두었고 실제로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격증 공부를 한다. 하지만 『갈매기』의 니나가 배우라는 꿈을 좇듯이 여자도 꿈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는 계속 오디션 연습을 한다. 여자는 열심히 살지만, 삶은 좀처럼 원하는 것을 내어주지 않는다. 하루종일 일과 공부, 오디션 연습까지 병행하며 바쁘게 살아도 늘 지갑은 가볍고 몸은 피곤하며 마음은 불안하다. 그런 여자 앞에 웬 노숙자 아저씨 한 명이 나타난다. 

 

한때 사업으로 큰 성공을 한 적이 있다는 노숙자는 여자와는 완전히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계속 미래를 걱정하지만, 노숙자는 현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집 없이 생활하며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노숙자의 모습은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로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그는 여자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는 역할이기에 초반에는 일종의 신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둘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노숙자 역시 평범한 인간이며 그의 삶의 태도 역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노숙자가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까닭은 미래를 아예 포기해버렸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 실패로 헤어지게 된 아들과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있다. 여자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면, 노숙자는 미래를 꿈꾸지 않기에 불안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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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중심으로 연극이 전개되는 경우 배우가 관객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이 되곤 한다. <우주먼지> 역시 노숙자가 여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작품의 메시지가 마치 설명하듯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쉽다. 우리에게 뜻밖에 주어진 이 먼지 같은 삶이 도대체 무엇인가 깊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무대 전환 장면과 배우의 움직임을 보면서다. 

 

작은 무대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은 인물의 감정과 마음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다. 하나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장면이다. 손님을 응대하고 주문을 받아 햄버거를 만드는 움직임은 활기찬 음악, 밝은 미소와 함께하지만 과장되고 힘겨워 보인다. 햄버거를 다 만들고 나면 여자는 숨을 몰아쉰다. 


다른 하나는 여자가 떡볶이를 사기 위해 달려나갈 때이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를 사러 죽어라 달리는 장면은 소박한 꿈인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도 너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여자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평범하게 사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며 울던 여자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다.

 

무대에서 장소 전환은 배우들이 직접 몇 개의 박스를 옮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육면체 박스 몇 개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햄버거 가게가 되었다가, 집이 되고, 다시 버스정류장도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삶도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삶도 마찬가지로 박스 몇 개 같은 허술한 규칙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연극의 하나이지 않은가. 엉엉 울다가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우리는 또 정신없이 박스를 옮겨 햄버거 가게를 만들어야 하는 신세. ‘우주먼지’다.

 

그래서 연극 속의 ‘우주먼지’는 자신이 우주먼지 같다는 기분에서 벗어나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었을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는 먼지처럼 수많은 존재 중 겨우 하나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성공으로는 먼지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지라는 사실이 아니라 먼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먼지에 대해 찾다가 신기한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온 1mm 이하의 작은 입자를 ‘우주먼지’라 부르는데, 지구에는 해마다 1만 4000톤가량의 우주먼지가 떨어진다고 한다. 이 먼지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비밀을 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를 꿈꾸며 우주먼지를 수거하러 다닌다. 해마다 만 사천 톤이 쌓일 정도로 흔한 게 우주먼지지만, 그중 똑같이 생긴 우주먼지,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주먼지는 하나도 없다.

 

각각 다른 우주먼지 같던 여자와 노숙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고, 그런 게 실재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우주먼지가 우주먼지라는 이유로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않듯이.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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