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사람]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
글 입력 2023.06.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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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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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어. 행복해지고 싶다. 근데 그게 어렵네."


어느 날 유서에 그렇게 썼다. 


"사람은 사소한 것 때문에 살고 싶어지고 때로 죽고 싶어진대."


그렇게도 적었다. 그때 나는 끝을 내다보고 있었지만, 사실 몸은 삶을 향하고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 이런 불행이 닥쳐야 할 이유는 없지만, 닥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어."


문득 깨달았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걸. 불행의 이유를 따지고 들수록 돌이킬 수 없음에 괴로워진다는 걸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다시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고 싶냐고. 


내가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는 AI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동시에 AI여도 이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가는 방법을 알려줄 뿐, 친절히 같이 가주지도 않고, 어디로 갈지 정해주지 않는다. 바라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뭘 하고 싶은지 되물을수록 문장은 낯설어지고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끝을 바라보며 유서를 적을 때, 비로소 첫 문장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했음을 깨달았다.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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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때 나에게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처럼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나는 한참 행복을 검색도 해보고, ‘사랑’이나 ‘좋아함’ 같은 말을 그 자리에 넣어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행복은, 현재에 발붙이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어디서 읽었던 글이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어떤 순간들이 떠올랐다. 심장이 간지러워서 가슴을 벅벅 긁었던 때. 내 걸음이 춤처럼 변했을 때. 


“내 사랑은 미치도록 뜨거운 열병인 것 같아.” 연극 <알앤제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끔 나는 이 문장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마음이 너무 벅차고 간질거려 견딜 수 없을 때 조금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그러니까 그를 생각했을 때. 어느 날 내가 그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해서 기꺼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싶을 때. 나는 행복하다. 그를 볼 때,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누구보다 내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나이기 때문에 그가 보여주는 그 모든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를 곧장 사랑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조금은 나를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이걸 좋아하고, 이걸 즐거워한다는 걸, 이건 예민한 부분이고, 이걸 힘들어한다는 것을. 


그때 나는 나중을 위해 많은 것들을 참고 있었다. 나중에 행복해지려면, 지금 이런 건 견디고 포기해야 해. 사람들의 말을 주워 담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견디고, 참고 억누르는 지난한 일만이 내게 남은 모든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행복은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언제나 친절히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AI처럼, 그러나 동시에 AI는 하지 않는 일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같이 걸어가 주는 일을 나는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물어보는 일이었다. 무도회장에서 파트너의 손을 잡듯이, 나는 살포시 마음속으로 내 손을 잡고 물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나의 소울메이트다. 나는 나를 제일 잘 안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를 이해할 수도,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은 외롭고 야속한 일이다가도, ‘나’를 나의 둘도 없는 고유한 짝으로 만드는 사실이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을 다시 읽고, 질리도록 읽은 책을 다시 펼쳤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좋아하는 색으로 베껴 적었다. 하루는 한글 프로그램 창을 켜서 내 마음에 쌓인 말들을 빠르게 적어내려갔다. 다 쓴 뒤에는 휴지통에 집어넣어 영구 삭제했다.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누웠다. 무언가를 했다는 것과 복잡한 마음을 영영 삭제했다는 사실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지금 '나'를 미루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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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싶은지, 뚜렷하고 명확한 장소가 있을 필요는 없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생각해 보면 삶에는 목적지가 없다. 현재는 찰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출발점에 서있는 동시에 목적지에 다다라있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나’를 챙기는 것 역시 참 중요하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건 지금의 ‘나’이니까. 


지금의 ‘나’를 미뤄두지 말자. 모든 순간의 ‘나’를 사랑하고 아껴보자고, 나를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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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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