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질문 던지는 예술 -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

글 입력 2023.06.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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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이나 이야기를 속되게 말하는 것’. ‘썰’만큼 재밌는 게 또 없다. 예술 분야라고 예외가 아니다.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는 예술을 더 친근하게 만든다. KBS 교양프로그램 <예썰의 전당>도 비슷한 기획의도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술,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이야기를 패널들이 소위 '썰'을 풀듯 재미있게 들려주며 인기를 끌었다. 


유명한 예술가의 사적인 면모와 더불어, 당대 수많은 예술작품 중 하나였을 ‘그 작품’은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의 걸작이 되었는지 듣다 보면 세상 많은 일에 우연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절대적인 무언가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예썰의 전당>은 프로그램 개편으로 종영되었지만, 다행히 책 『예썰의 전당: 서양미술 편』이 출간되어 방송 내용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방송에서 서양미술을 다룬 회차, 그중에서도 크게 호응을 얻은 회차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빈치로 시작해 피카소로 마무리되는 여정에서 독자는 17명의 서양화가를 만난다.

 

책은 이들의 이름과 작품과 함께 각각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있다. 읽으며 마음에 닿았던 ‘썰’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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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 당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요?



미컬란젤로는 ‘피에타’와 ‘다비드’로 잘 알려진 예술가다. 압도적인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천재 예술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를 천재로만 규정한다면 그가 작품을 위해 했던 구체적인 노력은 지우는 게 되어버린다. 미켈란젤로가 시대를 풍미한 천재인 것은 맞지만 그 역시 인간이었고, 그 흔적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얽힌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천지창조’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길이 40.9미터, 폭은 14미터에 이른다. 무려 300평의 면적인 데다가 평면이 아니라 둥근 천장이었으니 작업이 매우 까다로웠을 것이다. 처음에는 원치 않던 작업이었지만 일단 맡게 되자 미켈란젤로는 열정을 불태우며 4년 6개월 만에 작업을 완료한다. 규모를 생각하면 오히려 짧은 기간이다. 그동안 대부분 혼자서 작업을 했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완성에 걸린 시간과 작업 방식은 놀랍지만, 그 결과 미켈란젤로는 허리통증과 시력저하를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천장화를 서서 그리느라 물감을 온 얼굴에 뒤집어써야 했고 심지어 입에 들어가 창자가 뒤틀리기도 했다. 건강과 작품을 맞바꾼 셈이다.

 

물론 그의 완벽주의자적인 면모를 고려하면 그런 방식의 작업은 미켈란젤로 본인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해치는 것보다 자기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을 발표해야 하는 게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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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판레인 - 당신의 인생 그래프는 어떤가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판레인. 책에서는 그를 100~200개의 자화상을 그린 화가로 소개한다. 63년을 살았으니 스무 살 때부터 초상화를 그렸다 해도 1년에 약 5개씩 꾸준히 그려온 셈이다.

 

일기를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매일 쓴 일기에서 변화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몇 년 전 일기와 지금의 일기에서는 차이점이 눈에 띄듯, 비슷해 보이는 그의 초상화도 30대와 50대는 큰 차이가 있다. 초상화를 나열해 보면 레브란트가 경험한 삶의 자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모두 보인다. 


비지니스에 능한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이른 나이에 성공한다. 여기에 시장의 딸 사스키아와 결혼하며 더 큰 부를 축적한 30대의 렘브란트는 성공한 예술가의 표본이 되었다. 그러나 오르막이 끝나면 내리막이 기다린다. 렘브란트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기점은 우리에게는 ‘야경’으로 알려진 ‘프린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였다. 지금은 걸작으로 통하는 작품이지만, 회화가 일종의 사진 역할을 하던 시기에 사진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 그림은 외면받았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상황이 점점 악화되다가 1656년에는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60대에 접어든 초상화에서는 체념과 슬픔 후련함이 동시에 읽힌다. 삶의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도 초상화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야경'이 아니었다면 그는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400여 년이 지나 네덜란드 사람도 아닌 내가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보며 이 글을 쓰는 것 역시 '야경'이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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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 깊은 밤 뒤에는 찬란한 아침이 옵니다



‘절규’로 잘 알려진 뭉크. ‘절규’는 예술적인 가치도 크지만 컬트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에, 뭉크는 '절규'와 동일시되곤 한다. '절규'로 보는 뭉크는 음울한 채로 태어나 음울하게 살다가 요절했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 실제 뭉크가 여든 살이 넘게 살았으며 ‘절규’ 외에도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그의 삶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평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을 폐렴으로 잃었으며 연인과의 관계도 순탄하지 못했다. 노르웨이 태생으로 당대 주류 미술계와도 거리가 멀었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정신질환과 알코올 중독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삶을 놓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려나갔다.


삶을 끝까지 살아내려 애썼던 뭉크가 1916년에 완성한 ‘태양’은 ‘절규’로만 기억되는 뭉크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빛은 한 사람의 삶은 한 가지 색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태양’은 오슬로 대학교의 아울라 캠퍼스에 걸 벽화 공모전의 출품작으로, 비록 공식적인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캠퍼스 대강당 중앙에 걸리게 된다. 시간이 흘러,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작품을 오슬로시에 기증한 뭉크의 행보를 보며 이 작품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

 

사람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끌리는 큰 이유는 예술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은 얌전히 하나의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갖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를 다른 세계로 안내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 17명의 예술가와 함께 던지는 17개의 질문 역시 독자 각자의 마음속에서 저마다 파장을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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