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조선에서 스웩(Swag)을 만나다 -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글 입력 2023.06.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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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뮤지컬 공연은 더 이상 전혀 낯선 게 아니지만, 여전히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우리’의 이야기, 즉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창작 뮤지컬이라고 해도 서양을 배경으로 하거나 서양사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특히 조선시대는 수많은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뮤지컬에서만큼은 예외다. 조선이라는 시공간이 가진 정서를 무대 위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담아내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과감한 길을 선택한 작품이다. 퓨전은 ‘모 아니면 도.’일 때가 많은데, 다행히 이 작품은 ‘모’였다. 2019년 초연을 올린 공연은 금세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2020년 앵콜 공연, 2021년 재연으로 팬데믹에도 관객을 만나왔다. 그리고 2023년, 삼연으로 금의환향하기에 이른다.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을 탐구해본다.

 

 

 

동양과 서양, 옛것과 새로운 것의 기묘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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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와 뮤지컬이라는 이질적인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우리가 아는 조선과는 약간 다른 설정의 조선을 배경으로 삼는다. 바로 시조가 국가 이념인 조선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형시로 문학과 음악의 성격을 동시에 갖춘 시조가 국가 이념이니, 온 국민이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즉, 뮤지컬의 문법인 노래와 춤은 시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조선에서 어색함 없이 녹아든다.


시조와 뮤지컬의 연결을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의외로 힙합과 랩이다. 국악 풍의 선율 위에서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가사는 시조가 정적이고 늘어진다는 편견을 단번에 깨뜨린다. ‘놀아보세’, ‘이것이 양반놀음’, ‘외쳐봐!’ 등의 넘버에서는 마치 랩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 부분까지 있을 정도다. 또한 ‘양반 놈들 하는 것은 같잖은 가짜/이제 내가 하는 말은 솔깃한 진짜’(‘정녕 당연한 일인가’中)처럼 압운을 활용한 가사는 힙합의 라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요소가 고루 어우러진 넘버처럼 안무에서도 퓨전의 장점이 돋보인다. 인물들은 탈이나 부채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소품을 사용하면서도 다양한 현대 스타일로 변주된 춤을 선보인다. 탈을 쓰고 나와 탈춤을 선보이는가 싶더니 스트릿 댄스로 동작이 연결되는 식이다.  빠른 속도의 넘버에 잘 어울리는 절도 있는 안무는 무대의 흥을 더 돋운다.

 

 

 

아는 만큼 보이는 패러디, 귀에 붙는 한국어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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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 뮤지컬을 보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처음부터 한국어로 작사된 넘버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특히 입말을 살린 가사가 많아서 한국어가 모국어인 관객은 가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수액’에서 ‘후레자식/내가 바로 망할 자식/후레자식/매일같이 무위두식/내가 바로 조선에서/제일 씩씩’ 같은 가사를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 것이며, 번역한다 한들 한국어 사용자만큼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웃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 익숙한 시조의 일부가 사용된 넘버도 있으니, 찾아보는 것도 좋다.


아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패러디 요소도 이 작품을 보는 재미다. 작품 속에서 패러디는 주로 현대에서 사용되는 외국어와 외래어를 음차 표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힙합 등의 장르에서 여유나 허세를 의미하는 단어 ‘스웩(swag)’은 ‘수애구(壽愛口)’로 표기되어 목숨을 걸고 시조 사랑을 외친다는 의미가 생긴다. 전국시조자랑의 사회를 보는 ‘엄씨’는 ‘엠씨(MC)’에서 유래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작품의 주 세력인 골빈당 역시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활빈당을 연상시킨다.


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무대 위 요소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배우들이 관객석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넘버를 함께 부르며 즐길 수 있는 ‘싱어롱데이’나 극중 조선시조자랑 예선무대 참가팀을 응원하며 볼 수 있는 ‘조선시조자랑 응원전’ 역시 준비되어 있다. 특히 ‘이것이 양반놀음’은 '떼창'을 노리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에오’라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자랑한다. 공연을 보는 시간만큼은 ‘오에오’를 되내며 관객 역시 작품 속 ‘만백성’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얼굴들이 보여주는 보편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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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적으로 독특한 점은 앞서 실컷 이야기했지만, 작품 외적인 요소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여타 작품과 달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대학교 과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확인했던 기발한 상상력과 센스 역시 기성 창작진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그 신선함은 뮤지컬을 보는 관객층의 코드와 맞아떨어지며 초연에 입소문을 불러오며 지금의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만들었다.


신인 등용문이라 불리며 공연의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신선한 얼굴을 내보이는 작품이라는 점 역시 흥미롭다. 초연 당시 주연을 맡았던 양희준과 김수하는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23년 공연에서도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단’ 역할로 김서형이, ‘진’ 역할로는 김세영이 이 작품으로 뮤지컬 데뷔를 한다. 이 밖에도 김이은, 윤지우, 김은애, 김래오가 ‘백성들’로 데뷔 공연을 펼친다.

  

창작진과 배우가 새로운 얼굴인 것과는 상반되게 뮤지컬의 내용 자체는 익숙하고 보편적이라는 것도 대중적인 호응을 얻는 요소다. 이 작품은 이미 설정이나 넘버의 개성이 뚜렷하기에 굳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허수아비 같은 왕 밑에서 권세를 누리는 양반들과 핍박받는 보통 사람들. 역적 아버지를 둔 아웃사이더 ‘단’과 아버지와 상반된 길을 가려는 '진'까지. 이들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세상을 바로잡는 여정은 쉽게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

 

*

 

삼연으로 돌아온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오는 6월 9일부터 8월 2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번 공연은 초연을 제외하면 극장 내 함성 제한이 사라진 이후 첫 공연으로, 4년 만에 관객의 환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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