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서른 즈음에 난 청춘이 싫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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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른 서른이 됐으면 좋겠어.
왜? 난 지금 좋은데.
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해. 난 아직도 애처럼 굴고 싶은데.
그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의문형 목소리 뒤로 재즈가 흘러나왔다. 요새는 대화를 하기 위해 재즈바나 LP바를 자주 간다. 대화가 너무 시끄럽지 않게 주변에 녹아드는 것이 좋다. 누구도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단정도 마음에 든다. 음악이 교체되는 그 짧은 시간에 조용해진 주위를 돌아보는 머쓱한 얼굴들이 재미있다. 우리도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십 대 끄트머리에 올라앉아서 서른이 되고 싶니 마니를 논하는 것이 시간이 지났을 때 얼마나 가치 있는 논쟁일지는 모른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는 게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이 느껴져 무서웠다면 지금은 싫은 감정에 가깝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야 하고 살아온 경험만큼 누적된 노련함을 보여야 한다는 기대가 무겁다.
아, 정말로 난 철없이 살고 싶다.
그런데도 나는 이제 왜 윤이 서른으로 진입하고 싶어 했는지 알겠다. 20대는 불안하니까. 흔들리고 깨지고 넘어지고 아프고. 그래서 자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것이다. 30대가 되면 뭐라도 엄청 대단한 변화가 생길 줄 알고 무작정...내가 본 선배들 역시 나름의 방황으로 그들의 시간을 괴로워 하고 있었는데도.
언젠가 방긋방긋 웃으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인사를 하러 돌아다니는 신입 기자를 보고 한 선배가 "에너지 좋다"고 했다. 나는 술을 한차례 마셨는지 볼이 발그레해진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내 첫 사회를 생각했다.
술자리에 끝까지 붙어있어야 좋은 점수를 따는 줄 알았고, 선배의 무심한 한 마디에 상처받고도 눈물을 죽어라 참았다. 내가 충성한 만큼 회사는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됐을 때 누가 쳐다보는 것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울면서 거리를 걸었다.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사람에게는 더 싹싹하게 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지금은 술자리는 적당히 빠지며, 주변 사람들이 하는 평가는 제대로 귀에 담지 않는다. (칭찬 빼고) 애사심이라는 단어는 왜 생겼는지 모르겠고, 눈물 대신에 자주 내쉬는 한숨에 습기가 찬다. 마른 세수를 반복하느라 긁힌 얼굴이 따가워질 때쯤이면 간신히 퇴근을 할 수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 동시에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성장의 길을 걸으며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단단해진 것 같다.
처음은 참 어설프다. 나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긴장한 눈빛을 숨기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가진 거 없고 아는 거 없는데도 구질하고 아쉽기 싫어서. 그때는 당연한 건데도 그게 맞는데도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뻣뻣하게 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구나 눈치챘을 어설픔과 초조함은 돌이킬수록 낯 뜨거워진다. 그런데 요새는 결이 좀 다르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참기가 힘들어 눈시울이 금방 붉어진다. 세워둔 바리케이드가 쉽게 무너져서 허락한 적도 없는 사람이 내 마음에 올라타 있을 때도 있다. 까먹어선 안될 일을 까먹고 허망하게 주저앉아 미쳤지, 미쳤어를 반복하며 사과할 때도 종종 생긴다.
아 엉망이야. 그 말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성실하게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30대를 향해서 막연한 미래를 향해서 아니면 어디로든. 보폭은 줄어들지 않는다. 엉망이어도 쾌활하여도.
얼마 전에는 이직을 해서 새로운 직장을 다니게 됐다.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분야도 다르고 하는 방식도 달라져서 완전히 신입이 된 기분이었다. 주변의 눈치를 보고 어색하게 분위기를 맞추는 동안 나는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것도 지나가는 일'이라는 확고한 데이터를 갖고 있어서 균열은 조그맣고 흔들림도 적은 것만 같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나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나 진부하기는 매 한가지인데... 그것의 진정한 뜻을 아는 경험치가 쌓인 걸까.
나는 청춘이 싫어, 너무 구질구질하고 촌스러워서.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는데 애써 웃고 있는 것도 싫고. 그냥 다 싫어. 낭만은 사랑하지만 청춘은 사랑하지 못하겠어.
나도 싫어. 젊음으로 무마되는 창피함과 고된 역사들이 쌓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것들이 내 거름이 된다는 고루한 말도 인정하기 싫어 죽겠어. 지는 느낌이 들어서라도 넘어지기 싫고 그래.
첫 출근이 끝난 주말에 나는 현이의 머리를 땋으며 그가 중얼거리는 청춘에 대한 저주를 들었다. 누군가 들을까 봐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그에 동의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우리는 이 비밀을 함구하면서 산다. 그것이 진실에 가까울지라도 평생 보여주기 힘든 진심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서른 즈음에 청춘이 싫다고 적었다.
[조수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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