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겨진 이들을 향한 따뜻한 다독임 [영화]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글 입력 2023.05.3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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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뉴스를 훑어보다, 미국의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지 1주기가 되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의 이름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지난해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느꼈던 비통한 심정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듯하다.


최근, 올해 3월에도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총 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사건 역시 기사로 알게 되었는데, 올해 들어 미국 내에서만 120번 이상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접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그리고 가장 안전해야만 하는 교육기관인 학교에서도 총기 난사 참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 학생과 교직원들,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는 생존 학생들, 그리고 남겨진 유족들은 애통한 현실을 견디고 있다.


미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은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어린 딸을 잃은 부모가 겪는 상실의 아픔을 그린다. 13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고 대사 하나 없지만,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 후 남겨진 이들이 지내는 공허한 시간과 암울한 현실을 가만히 비추며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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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시든 꽃이 놓여 있는 긴 식탁 앞, 양 끝 쪽에 떨어져 마주 앉은 부부가 식사하는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도 절대 닿지 않을 먼 거리에 앉아있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접시만 바라보고 있는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흐른다.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각자의 모습을 닮은 큰 검정색 그림자가 피어오른다. 서로를 탓하고 나무라는 그림자들은 두 사람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감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사를 하는 여자를 두고 남자가 먼저 말없이 자리를 뜨자, 그렇게 한참을 서로 다투던 그림자들도 이내 흩어진다. 


밖으로 나간 남자는 파란 페인트로 때운 집 외벽의 큰 틈을 멍하니 바라본다. 집 안에 남겨진 여자는 살짝 열려 있는 방문 앞에 가만히 서 있다가, 차마 방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들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근심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 서려 있는 듯하다.


영화 초반부에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들이 교내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딸을 잃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후반 지점에 다다라서야 알 수 있다. 두 사람 주변을 떠다니며 그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그림자들을 통해 서서히 전말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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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적막만이 감도는 집 안, 세탁기 위에서 떨어진 축구공이 죽은 아이의 방 안으로 굴러가 LP 플레이어를 톡 건드린다. 딸이 좋아하던 노래가 작게 흘러나오자, 쉽사리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던 두 사람도 조심스럽게 안으로 향한다. 이윽고 플레이어를 건드린 고양이로 인해 음악의 소리가 커지고, 이내 플레이어에서 튀어나온 아이의 그림자가 부부의 두 그림자를 데리고 어디론가 바삐 향한다.


세 그림자는 아이가 살아있던 시절,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들 속을 마음껏 누빈다. 아이가 태어났던 순간, 아이와 아빠가 함께 공을 차며 놀던 순간, 그리고 공 때문에 깨진 벽을 다 함께 파란 페인트로 메꾸며 웃던 순간까지.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금세 자란 아이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 갈 채비를 한다. 부모의 그림자는 어두운 그늘이 진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의 그림자를 힘껏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랑해요. 죽은 아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의 글자가 산산조각 나며 물방울로 변하고, 두 부부의 그림자 위로는 장대비가 내린다. 잊으려 해도 머릿속에 계속 재생되는 끔찍한 날의 기억에, 두 그림자 아니 두 사람은 서로 멀어지며 다시 우울에 잠식되고 만다. 


그때,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의 그림자가 온 힘을 다해 몸집을 부풀리더니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한 품에 껴안는다. 그렇게 세 그림자는 하나가 되고, 아이의 침실에 남겨진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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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좋아하던 축구공, 아이가 키우던 고양이, 그리고 아이가 즐겨 듣던 음악. 집 곳곳에 남아있던 아이의 흔적들은 남겨진 두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존재였을 것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아이의 죽음은 두 사람을 자책하게 만들었고, 마주하기 힘든 죄책감은 서로를 탓하게 만들었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다시 끔찍한 기억이 자신들을 집어삼킬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서로 간의 대화는 끊기고 집에는 적막만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서로 다시 껴안도록 만들어 준 것 역시 아이의 흔적들이다. 축구공, 고양이, 그리고 음악이 가져다준 것은 사랑했던 아이의 모습들이다. 아이가 남긴 문자가 말해주듯, 두 사람 주위를 떠다니며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을 아이의 존재가 결국 부모를 품는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좋은 기억들은 끔찍한 기억들로 괴로워했던 남겨진 이들을 그렇게 다독인다.


비극은 목숨을 빼앗아갔을 뿐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관계를 와해시켰고, 현실을 무너뜨렸고, 일상을 망가뜨렸다. 영화는 그러한 고통과 상실을 겪은 이들의 아픔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을 전한다. 동시에 아이의 포옹을 통해, 시간이 흐르며 애통한 마음도 언젠가는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따뜻한 어루만짐과 함께 온 마음 다한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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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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