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어떤 낮을 기다리는 밤의 아름다움,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

시차없는 파리 여행
글 입력 2023.05.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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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유일한 버킷리스트는 일상을 벗어나 배낭만을 메고 가볍게 떠나는 유럽여행이다.

 

삶에 치이고 때로는 우울감에 잠식되며 수없이 담금질 당하는 동안에도 그 사소하지만 간절한 목표는 늘 가슴 속 한 편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놀고먹는 대학생을 졸업하는 시점이 한 학기 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유럽 땅을 밟아 보지 못한 것엔, 너무나도 얄팍한 나의 지갑 사정과 버겁기 그지없는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한몫한다. 곧 또 다른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나에게 유럽 여행은 사치이지 않을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그곳을 찾기 위해 투자할 시간도, 돈도, 여유도 내겐 없다.


한 번쯤 가 보면 좋을 텐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나. 입시를 준비하며 했던 생각이다. 버킷리스트고 뭐고 다 떠나서, 내가 앞으로 더 깊게 공부할 분야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세계 곳곳을 누비는 동기들이나 친구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막연함과 부담감이라는 심리적 불안을 그들은 어떻게 정리해두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화창하고 활기찬 타국의 낮을 즐기기 위해 친구들이 보냈던 한국에서의 밤은 어땠을까? 그들은 곧 마주할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까?


도서, 미드나잇 뮤지엄은 현실과 소망 사이, 인생의 시차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담는다. 예술가들이 걸어갔던 길의 흔적을 모으는 미술관들을 소개하고, 미술관들이 모인 곳을 가볍게 여행시켜 준다.



[평면표지] 미드나잇 뮤지엄(파리).jpg



 

1장, 파리 미술관에서의 하루



우리가 한국에서 미술관을 가면 그 안의 전시를 모두 관람하는 데 평균적으로 3-4시간 정도를 보낸다. 꼼꼼히 전시의 요목조목을 뜯어본다면 더 걸릴 수도 있겠으나, 보통은 하루 정도면 미술관 하나는 마스터할 수 있다.


그러나, 뮤지엄의 규모가 클 경우 전시되고 있는 작품의 수가 많아지고, 뮤지엄의 역사가 깊어질 경우 그곳이 담고 있는 의미와 역사적 의의가 많아진다. 게다가, 뮤지엄의 규모와 역사는 보통 비례하기 마련이라, 유명한 뮤지엄을 방문해서 그 안의 전시를 속속들이 모두 보려면 하루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직접 가서 보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과거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뮤지엄들은 대부분 하루 이상을 투자해야 꼼꼼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파리를 대표하는 뮤지엄인 루브르의 경우 모든 전시관을 돌아본다고 가정했을 때 한 작품 당 10초씩만 본다고 해도 관람을 마치려면 4일이 걸린다고 하니,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배낭 멘 대학생들에게 파리의 대표적 뮤지엄들을 모두 돌아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유명한 작품들만 꼽아서 관람하려면 할 수도 있겠으나, 나만의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과 그 맥락을 감상하고 싶다면 사실상 여행의 모든 일정을 뮤지엄 방문에 투자해야 한다.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에서는 이렇듯 관람하는 데 하루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뮤지엄들을 방문하는 내용으로 1장을 구성한다. 1장에서 다루고 있는 뮤지엄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 퐁피두 센터, 로댕 미술관이다. 각 뮤지엄의 특성과 설립 배경에 관한 설명을 챕터별 초입에서 다루어 뮤지엄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2장, 파리 작은 미술관에서의 하루



1장에서 유명하고 대표적인 뮤지엄들을 소개하고 그 작품들을 다뤘다면, 2장에서는 조금 한적한, 파리의 작은 미술관들을 다룬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뮤지엄들은, 한적한 만큼 작품 하나하나의 맥락과 가치, 창작 배경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한 미술 작품의 관람만을 위해 방문하는 큰 미술관들과 달리, 작은 미술관에의 방문은 한적하고 자연스러운 복도를 거닐며 진정한 휴식을 취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흔히들 여행을 간다고 할 때, 그 여행의 테마가 힐링인지 관광인지를 정하는 게 동행자와의 여행 계획 수립에서 가장 큰 중요도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나의 큰 방문 목적을 정하는 것은 여행을 온전히 즐기는 것에 있어 제일 첫 번째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그러나 파리의 작은 미술관을 방문한다면, 그곳에 방문한 목적이 작품 관람인지, 휴식인지 명확히 정해둘 필요가 없다. 자유롭게 미술관을 누비며 프랑스의 유명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면 된다.


프랑스, 그 안에서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는, 그곳에 위치한 그 어느 미술관에 들어가더라도 명작 한 점씩은 꼭 전시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주제나 작가를 가지고 작품의 창작 배경이나 창작 의도를 깊게 설명하는 작은 미술관을 좋아한다. 작품의 개수가 그리 많지 않아도 괜찮다. 한 번의 방문으로 한 작가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미술관의 더없이 큰 장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미술관들을 소개하는 것이 바로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의 2장이다. 이 책의 2장에서는, 마르모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프티 팔레와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의 정체성과 그곳에 간직한 작가들의 인생이 돋보인다. 만약, 파리에서 여유로운 미술 관람을 하러 갈 계획이 있다면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를 통해 예습하는 것도 꽤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차없는 파리 여행



나는 책을 보면서 좋다고 느낀 내용이 있으면 그 내용이 있는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둔다. 그런데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를 보고 나니 접히지 않은 장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책의 부피가 조금 커진 듯 느껴질 정도로 많은 모서리들이 접혀 있었다.


내가 미술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은 것도 있겠지만,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았던 것도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를 좋아하게 된 것에 아주 큰 한몫을 했다.


부담감 없이 사유할 수 있는 밤의 시간과 그 하늘을 사랑했던 고흐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 책은, 책으로나마 파리의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 이들이 위로와 공감을 얻어 가길 바란다는 격려의 말로 끝을 맺는다. 파리를 찾는 것, 나아가 인생의 목적지를 찾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모든 이들이 맘 편한 각자만의 밤을 향유하길 응원하는 것 같달까.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된다면, 여유가 된다면. 이 책을 부담 없이 한 번쯤 펼쳐보는 것도 이 글을 보고 있을 모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절대로 부담 없이. 책이 전하는 따뜻한 말들을 빛이 쏟아지는 한가로움 속에서 나른히 보듬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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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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