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콤함은 나누면 몇 배가 될까 [음식]

성공적인 베이킹의 비결은 '나눔'
글 입력 2023.05.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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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홍대입구역 앞에는 한 유명 주방가전 업체의 사옥이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그곳에서 열린 어린이 요리 교실의 열혈 수강생이었다. 빵도 굽고, 쿠키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들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수업이 열렸던 주방의 모습과 그때 만들었던 디저트의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꼬마 파티시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손이 야무지고 손재주가 좋았던 나는 어려서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온갖 기념일만 되면 나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그 기념일에 맞는 디저트를 직접 만들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빼빼로데이에는 빼빼로를 만들었다면, 크리스마스에는 트리에 걸어둘 쿠키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최대 수혜자는 항상 식탁에 앉아 있으면 뚝딱 먹을 게 생기는 우리 아빠였던 것 같다.

 

예쁘고 달콤한 것이 좋아서 한때는 파티시에가 되고 싶었다. 머릿속에는 영롱하고 화려한 디저트의 모습이 둥둥 떠다녔고, 프랑스의 유명한 제과 학교에 다니는 나의 멋진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꿈은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뭐, 원래 어렸을 때 꿈은 자주 바뀌곤 하니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예쁘고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고, 정보 수집가쯤은 된다. 맛있다고 소문난 빵집이나 디저트 전문점을 발견하면 언젠가 한 번 가보기 위해 지도에 잘 표시해 놓는다. 가끔 외출하게 되면 지도에 저장해 두었던 곳을 들러 먹고 싶은 디저트를 몇 개 사서 나온다.

 

고심해서 고른 만큼 대부분은 맛있다. 그러면 그날 하루는 그렇게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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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을 다시 시작하다


 

작년 초, 나는 베이킹을 시작했다. 학업에 밀려 잠시 내려놓았던, 나의 소중한 취미를 몇 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나는 대학교 2년을 답답한 집안에서 보내야 했는데, 빵과 과자를 구우면서 나는 일상의 무료함을 많이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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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을 취미로 삼는 것은 장점이 많다.

 

일단 눈코입이 즐겁다. 아직은 초심자에 불과하지만, 온 집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오븐에서 구워진 디저트를 예쁜 접시 위에 올려놓은 뒤 칼로 잘라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럽고 바삭바삭한 식감을 한입 가득 느낄 수 있다.


처음엔 각자 뿔뿔이 흩어져 존재하던 재료들이 다 함께 합쳐져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지를 관찰하는 것도 베이킹의 묘미다. 가끔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어 낸 창조주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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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은 식탁 위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의외로 베이킹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나의 돈과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 이 디저트는 혼자 먹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을 때 훨씬 더 맛있다는 것이다.


베이킹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재료와 도구를 사는 데는 꽤 큰 비용이 들어간다. 물론 밀가루와 같이 아주 기본적인 재료는 그리 비싸지도 않고 도구는 한 번 사면 계속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더욱 비싸고 고급스러운 재료를 찾게 되고, 열 개의 서로 다른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열 개 이상의 도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함께 이 달콤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절대 작아지지 않는 듯하다. 심지어 나는 한입밖에 먹지 못하더라도 그만큼 주변 사람들한테 더 나눠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라니, 이게 바로 엄마의 마음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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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이 취미라고 말할 땐 단순히 빵을 굽고 과자를 만드는 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직접 만든 디저트를 나눠 먹으며 웃고 대화하는 그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혼자서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지만, 내게 베이킹의 시간은 특별히 더 소중하다. 점점 각자가 되어가는 것이 익숙한 이 세상에서 누군가와 함께하고, 또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는 것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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