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글 입력 2023.05.2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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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 나와 잘 지내고 있나요?


일상의 경계 너머 나를 만난,

혼자만의 놀이와 여행의 기록

 

 

팬데믹 시기 몇 년 동안 우리는 여행이 쉽지 않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각자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먼 여행을 상상했을 테고, 가까운 곳으로 틈틈이 바람 쐬러도 갔을 것이며, 혼자 몰입하는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의 본능과도 같은 여행과 놀이의 욕구, 자기 성찰과 자기실현의 욕구를 자극했을 것이다. 이제 엔데믹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여행의 바람이 다시 솔솔 이는 요즘이다.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는 일 위주의 삶에 지치고 일상의 분주함 속에 무뎌진 우리의 '여행' '놀이' '혼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한 사람의 개성과 취향이 넘치는 유쾌한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KBS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의 진행자로 잘 알려진 이상협 작가다. 그는 비장의 무거운 여행 가방 하나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어플들을 능숙히 쓸 줄 아는 여행 마니아며, 어느 날 퇴근 무렵 공항으로 차를 돌리기도 하고 흐드러진 봄꽃에 취해 무작정 걷기도 하는 기분주의자며, 혼자 있는 시간이 모자라면 몹시 피로감을 느끼고 혼자만의 각종 놀이법을 기어이 찾아내는 자칭 '혼자의 전문가'다. 이 책은 그의 말대로 "내가 고독 속에서 혼자 했던 놀이와 여행의 진료 기록"이다. 삶의 작은 변화를 꾀하고 싶을 때, 설레는 여행에 어울리는 에세이 한 권을 소개한다.

 

저자는 왜 혼자를 강조할까. 그가 말하는 혼자는 외톨이와 외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치유하는 고독을 말하며, 궁극적으로 행복은 먼저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 이상협은 이런 사람이 아닐까. 그는 불행은 자신과의 불화에서 시작된다고 여겨 여러 개의 분화된 '나'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그리하여 혼자라는 시간의 텃밭에 무, 감자, 토마토처럼 시, 음악, 목소리를 기르는 사람이며, 읽고 쓰고 다니고 때로는 술을 마시며 그것을 잘 가꾸는 사람이다.

 

그는 잘 쉬거나 놀 줄 모르는, 다시 말해 혼자서 잘 지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유쾌하게 조언한다. "노는 데 꼭 누구와 함께할 필요는 없다.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은 나다. 나와 놀면 된다. 인간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갖고 있다. …그들끼리 놀게 하자. 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놀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고, 재미없는 인생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그렇다, 그는 우리가 일상의 경계 너머 나를 만나는 혼자만의 놀이와 여행을 떠나기를 권한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또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구나 말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른바 '소소한 행복'을 경쾌하게 실행한다. 그는 하고 싶은 것, 안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많다. 다이어리에 일 년 치 자신만의 이벤트를 적어두고 "꽃씨처럼 심어둔 기대들이 돌림차례로 피어나기를 기다린다." 또 스피커, 만년필, 시계, 조명기구 등 매년 1월에 사고 싶은 물건의 '위시 리스트'를 갱신한다. 주로 고가의 물건들이 많지만 사는 일은 거의 없단다. 그런가 하면 책 빌려서 읽지 않기, 점심 약속 잡지 않기, 갑을 관계에서 이득 취하지 않기, 돈 빌리지 않기, 택시 타지 않기, (웃음을 슬며시 자아내는) 술 적게 마시지 않기 등 '안 하기 리스트'도 있다. 스스로 "참 까칠한 인간이지 싶다"고 고백하지만, 별것 아닌 듯한 작은 목표가 삶의 동력이 된다는 그의 말에는 설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에어플레인 모드'라는 별도의 한 부를 할애할 정도로 비행기와 공항을 좋아하는 자신의 별난 취미를 드러낸다. 그는 웬만한 항공 드라마는 거의 섭렵했을 정도며, 계류장에 주기된 비행기를 한가로이 바라보며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가 하면, 공항을 좋아한 나머지 라운지를 찾아가 책을 읽거나 시를 쓰고, 심지어 목욕하러 들르기도 한다. 공항은 그에게 영화관을 찾는 일처럼 기분전환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삶이 헐거워진 어느 좋은 날 당신에게 묻고 싶다. 공항 갈래요?" 또한 그는 애주가임을 숨기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웅크리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때 술은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무의미하게 부려 놓은 너무나 많은 말로 인해 지칠 때 생각과 감정을 정돈하려고 그는 '혼술리안'이 된다. "미운 사람을 미워하며 그를 닮아가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술잔의 심연을 바라보며 괴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 그것이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거창한 이유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가까운 바다'는 어디일까? 저자는 꼭 바다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작정 떠날 때 핑계 대기에는 바다가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바다란 꼭 장소로서의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를 데려가 나와 화해하고 자신을 타이르다 돌아오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어디든, 무엇이든 된다. 가성비 좋은 브런치 가게이거나 새로 발견한 유튜브 채널이거나 혹은 올봄 가장 먼저 핀 벚꽃을 관찰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에서의 작은 발견이 우리를 반짝이게 하는" 법이다.

 

가까운 바다는 저마다 있고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각자 개인의 전문가가 되어 독창적인 '자기'를 갖추는 일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기꺼이 쉬고 놀 줄 아는 일이다. 저자는 노는 것 쉬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이상한 죄책감을 털어내고,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제안이기도 한 이 책에서 우리는 자신과 사귀고 노는 법에 대한 작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상협 - 정확한 언어와 정밀한 언어 사이를 오가는 사람. 방송과 시 사이를 음악으로 잇는 사람. 불행은 자신과의 불화에서 시작된다고 여겨 여러 개의 분화된 '나'를 운영하는 사람. 그리하여 혼자라는 시간의 텃밭에 무, 감자, 토마토처럼 시, 음악, 목소리를 기르는 사람. 읽고 쓰고 다니고 때로는 술을 마시며 그것을 잘 가꾸는 사람. 전공은 미술 교육이지만 대부분 학교 방송국에서 시간을 보냈고, 삼수 끝에 KBS 아나운서가 되었다. [추적 60분] [역사저널, 그날] [명견만리] [독립영화관]에 목소리를 입히거나 진행했다. 프리젠터로 6개월 동안 8개국을 다닌 로드 다큐 [석굴암]을 가장 아낀다. 지금은 KBS 클래식 FM의 [당신의 밤과 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 제9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동상을 받았다. 활동명 에고트립EgoTrip으로 앨범 '봄, 밤'과 'go trip'을 발매했고,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낭독 안내서 [내 목소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해줄래]를 펴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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