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간을 산다는 것 [사람]

삶은 망각과 기억의 경계선 속 놀림
글 입력 2023.05.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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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줄곧 나는 순간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순간을 만끽하는 것을 추구한다.

 

순간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내가 정의하는 순간을 산다는 것은, 그 순간에 몰입함을 말한다. 순간의 유한함을 인식한 채 소중함을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를 준비를 하는 삶이라고 할까? 왜냐하면 순간은 지나가니까.

 

하지만 순간을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정말 어렵다. 하드코어 그 자체다. 순간을 사려면 우선 모든 순간에 의식이 고양되어 있어야 한다. 삶을 인식하고, 그 속의 나를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요가나 자기 치유의 영역에서는 이런 ‘순간을 산다’를 ‘존재하기(be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존재한다는 것과 순간을 산다는 것은 차이가 좀 있는 것 같긴 하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생물, 의식 없이 생각을 비우는 느낌이라면, 순간은 산다는 것은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하기’ 속 순간을 산다는 의미를 찾는다면, 순간을 산다는 것이 숨 쉬듯 그저 단순한 행위임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최근에 순간을 살았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순간을 잘 사는 것은 하루하루를 기억하며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유를 찾고, 그 감사함으로 아름답게 삶을 펼치는 것. 따라서 지나간 순간들, 하루들, 일주일도 기억할 수 있게. 헛되지 않는 하루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순간을 살았다고 느끼는 때는,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이다. 쨍쨍한 햇빛이 나뭇잎을 반짝반짝 비출 때,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날 때, 영롱한 어둠이 도시를 덮치고 조도 낮은 나무들이 낮과 달리 낯설게 보일 때… 등이다.

 

사소하지만 이런 아름다움을 마주한 순간, 마음이 웅장해지고 평안해지고 행복해진다. 무엇보다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진다. 직감적으로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이 대자연이라는 볼거리는, 신의 손에 의해 빚어진 경관의 수요는 영원할 것을 말해준다.

 

전에 한 교수님께서 매 수업 시작 때마다 한 주간 뭘 했는지, 인상 깊은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시는 분이 계셨다. 그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시면, 우리 강의실의 경우 조용했다. 겨우 한 명 한 명 불러서 얘기하시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때마다 사진첩이나 다이어리, 일정표를 뒤지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나도 있었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삶이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을 좀 꼬아보자면 기억이 삶의 가치라고 치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하기 위해 삶을 산다는 건, 조금 무모한 듯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망각이 신의 배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망각 덕분에 힘든 일들 속 상처와 아픔을 무르게 하고 이겨내며 다시 살아간다.

 

우리는 그럼 뭘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까지 이르다가 굳이 순간을 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흘러가는 순간처럼, 흘러 보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 흘림이 여유다.

 

 

 

지나간 순간에 대하여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그 순간에 ~ 하지 않았다면’, ‘그 순간에 ~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 순간이 중요할까? 순간이라는 말은 단일하다. 세상에 하나로 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유일무이하다. ‘그’를 붙이는 순간, ‘순간’이라는 말은 ‘순간성’, 즉 순간의 성질을 잃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순간’을 끊임없이 언급하고 회자한다. 지나갔고,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아는데도 혹은 그걸 알기 때문인지 얘기한다. 어쩌면 삶은 망각과 기억의 경계선 속 놀림일지도 모르겠다.

 

이 놀림 앞에서, 미련 없이 순간을 보낼 수 있길. 그리고 미련 있게 삶을 살 수 있길 바란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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