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여행을 할 때 핸드폰을 도둑맞았다.
남아메리카 천혜의 자연을 담아오기 위해 큰 맘 먹고 아이폰 14로 핸드폰을 바꾼지 고작 20일만이었다. 그 전까지 내가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아주 단순하게도 '사진'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현장감을 담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됐을 때 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할지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을 찍던 시간이 필요해지지 않자 공백이 생겼고 허무함으로 메워졌다. '기억'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시기였다. 기억에 대한 집착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행복한 순간을 언제든 꺼내보기 위해 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 사진이라면, 극 중 동생 '바울'은 유리병 안에 소중한 순간을 담는다. 순간의 소리, 촉감, 풍경 등을 그저 있는 그대로 담는다.
“유리별을 모아야 해요, 저장을 해야 해요”
주인공 '요한'은 어릴적 가정불화를 겪었고, 현재는 마약중독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우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의미없게 느껴질 때 그를 살린 것은 큰 돈도, 드라마틱한 사랑도 아니다. 동생 바울과 함께 했던 가장 소소하고 일상적인 시간들이다.
유리병의 뚜껑을 열면 '요한'은 동생과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깊은 관계와 시간이 담긴 것이다. 유리별을 잊고, 저장을 하는 방법을 잊었을 때 '요한'은 행복할 수 없다.
유리별에서 추억이 빠져나가는 것을 모래가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흩어지는 것으로 표현하는 연출이 인상깊었다.
나레이션을 할 때 3명의 사람이 유니폼과 같은 옷을 입고 역할을 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특정한 문장을 어절 단위로 끊어서 번갈아서 나레이션을 해나가는 것도 집중도를 높였다.
관객과 무대의 사이가 정말 가까운 공연이었어서 생생하게 연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요한'의 여자친구와 엄마 역할을 함께 했던 배우는 나이대를 넘나드는 연기가 인상깊었고, 동생 역할을 했던 배우는 장애를 사실성있게 표현한 점을 주목할 수 있었다.
'요한'의 마약 중독에 빠진 연기는 매우 직관적이었고, 그 너머의 외로움을 섬세히 나타냈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유리별로 상징되는 소소한 추억을 잊고 살고 있지 않나 싶다. 더 큰 자극을 쫓고,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많은 요즘 사람들은 진정한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건강한 가벼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