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나는 순간이 스러지지 않도록 잡아 - 유리별 프로젝트 [공연]

행복의 거름망을 촘촘하게
글 입력 2023.05.1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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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행복해야 할까? 행복은 목표인가?


어릴 적 가정불화를 겪은 동화 작가 ‘요한’은 방황한다. 마약에 기대어 살아가며 일상의 순간과 행복들을 손 틈새로 흘려보낸다.

 

비록 그는 행복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아가지만, 사실 그는 과거에 동생 ‘바울’에게 “반짝거리는 행복의 순간들을 ‘유리병’에 담아”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바울은 그의 조언에 따라 행복의 순간을 유리병에 담은 ‘유리별’을 차곡차곡 모은다.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온 요한은 바울이 모은 유리별로 소중한 삶의 순간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귀여운 다람쥐의 모습, 고양이와 눈 마주친 기억, 고구마를 굽고 보니 꿀고구마였을 때처럼 누구나 인지만 하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다.

 

유리별 중에는 바울에게는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요한에게는 끔찍한 순간이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엄마와 바울이와 바다로 떠났던 여행이다.

 

학교에서 도망쳐 호텔에서 해물라면도 먹으며 평소에는 누리지 못한 사치를 누리지만 그 행복감은 여행의 목적이 드러난 순간 사라진다. 여행은 엄마가 계획한 자녀 살인이자 자살 여행이었다.

 

바울이가 목욕하는 동안 엄마는 요한의 목을 조르다 실패한다. 요한은 여행이 악몽으로 남았지만, 바울이는 사실을 몰라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바울이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별에 담긴 빛나는 순간들은, 사실 요한의 기억이다.

 

그는 적어도 그 순간들은 행복한 순간으로 쥐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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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틈새로 모래를 흘려보내듯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메시지는 보편적이고 모두에게 공감받을 만한 권유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든다. 왜 ‘소소하게’ 빛나는 일상들을 소중히 간직할 필요가 있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요한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운 걸까?

 

마약에 중독돼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고성을 지르며 욕설을 내뱉는 그의 모습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머니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면 그의 모습을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기도 한다.

 

극 중 캐릭터이더라도 누군가를 연민하는 감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연민’이라는 감정은 상대의 처지를 나보다 불쌍한 위치로 놓아야만 성립 가능한, 어쩌면 시혜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행복’이라는 단어와 반대 선상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이 시혜적인 태도를 드러나게 만든다. 우리를 반성하게 만든다. 타인과의 무의식적인 비교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던 모습을 꼬집는 건 아닐까. 혹은 그저 최악의 불행 속에서 행복의 가치가 극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요한을 내세운 것일 수도 있다.

 

왼쪽 눈 0.2, 오른쪽 눈 0.3의 시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뿌옇게 바라보며 살아간다. 경험담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고자 애쓰려면 인상을 찌푸려 시야를 좁혀야 한다. 신경을 구겨가며 크고 구체적인 행복을 좇다 보면 주변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소소한 행복은 아웃 포커싱된다. 초점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큰 행복을 잡으려 손바닥을 펴고 손가락을 넓게 벌린 채 기다리다 보니 작은 행복의 순간들은 틈새로 빠져나간다. 빛나는 알갱이들이 의미 없이 스러지게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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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목표가 아니다. 행복을 목표로 삼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과정까지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도리어 우리를 옭아매지는 않았나.

 

큰 구멍이 숭숭 뚫린 행복의 거름망을 촘촘히 메워 반짝임을 모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리별’처럼.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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