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완벽한 너라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라서 사랑해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떠나보내며
글 입력 2023.05.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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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 혼자만으로 모든 걸 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동료가 필요하고, 추억을 쌓을 때는 친구가 필요하며, 사랑을 할 때는 연인이 필요하다. 그 어떤 곳에 가든 사람은 조금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때로 나도 그런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우리’를 필요로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마블의 수많은 히어로들 중에서도 유독 친숙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혼자만으로도 완벽한 힘과 정신력을 갖춘 듯한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리, 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우리 역시도,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숭고한 희생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스타로드처럼 때론 찌질하고 때론 허술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벤져스 속 히어로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동경’이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공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은 지금껏 우리가 마블에 열광해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산만한 세계관이나 교조적인 메시지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악에 맞서 싸우며 성장하다 결국 사랑을 말하는 히어로만 있으면 된다는 거다. 2014년에 처음 만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이제는 떠나보내며, 이들의 마지막 여정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를 살펴본다.

 

 


우주를 가로질러 찾아낸 나의 이름은.


 

우주의 아웃사이더들이 한데 모여 가족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다루는 이 트릴로지에서, 3부는 가족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찾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엉망진창이어도 일단 함께이기에 행복했던 시간이 지난 1부와 2부였다면, 3부에서는 이들 하나하나가 진정으로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이제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3부의 주인공은,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던 로켓이다. 교차 편집을 통해 조금씩 들춰지는 그의 과거에는, 끔찍한 생체 실험과 그로 인한 친구들의 죽음이 있었다.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생물들마저 ‘가치 있게’ 진화시키려는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계획에 휘말렸던 것이다. 그 지옥 같던 실험실을 간신히 탈출한 로켓에게, 자신이 무슨 동물인지 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껏 로켓은 자신을 너구리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뭐냐는 반응으로 일관하며, 자신은 너구리가 아닌 로켓이라고 되받아쳤다. 자신은 지구에나 있는 그런 ‘더러운 동물’이 아니라, 훨씬 더 똑똑하고 쿨한 우주적 생명체라고 발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정의 끝에 그가 다시 마주한 실험실 속 철창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동물들과 함께 ‘지구에서 온 너구리’라는 글귀가 똑바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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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로켓은 너구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비록 쿨하지도 않고 지능도 없는 한낱 잡식동물의 이름이더라도, 그게 진짜 나의 이름이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하등한 동물이라며 경멸해온 하이 에볼루셔너리에 대한 최고의 복수일 테니까.

 

이번 이야기에서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찾는 건 비단 로켓뿐만이 아니다. 지금껏 힘만 세고 무식한 캐릭터로 여겨져 왔던 드랙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실험체인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유일하게 성공하며 그들을 구해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네뷸라는 그의 원래 이명이었던 ‘파괴자’ 대신,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1부에서 딸을 잃은 복수를 위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합류한 그를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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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지구에 남은 마지막 혈육을 찾아 떠나는 스타로드, 자신을 품어준 라바저스에게로 돌아가는 평행세계의 가모라,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러 떠나는 맨티스,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나머지 멤버들까지. 오랜 여정 끝에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은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게 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매듭짓고 새로운 삶을 향해 발을 내딛는 그들의 뒷모습에 아쉬움보다는 기특함이 남는 건 그래서다.

 

 

 

완벽하지 않아서 함께고, 함께이기에 이겨내는 우리


 

이 영화가 이렇게 후련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는 데는, 그들이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사상을 훌륭하게 격파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사실 그가 빌런이기에 그가 만들려는 ‘완벽한 사회’도 겉보기에 기괴하게 연출되었을 뿐, 실제로 우리는 종종 완벽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때로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평생을 노력해도 내가 동경하는 누군가처럼 완벽해질 수 없다는 생각에 침울해하곤 한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로켓의 테마곡인 'Creep'도 비슷한 말을 한다.


 

"I wish I was special.

You're so fxxkin' special.

But I'm a creep, I'm a weirdo."

 

- Radiohead, 'Creep'

 


그런 열등감과 비참함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함께하는’ 것이다. 혼자인 내가 결점투성이더라도, 함께할 우리는 각자의 장점만을 모아 특별해질 수 있으니까.

 

어벤져스의 멤버들은 혼자만으로 세상을 구해내곤 하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들은 혼자만으로 우주를 지킬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우리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니었던가. 외려 완벽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함께일 수 있었고, 함께였기에 그 모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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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너는 완벽하지 않다’며 소리지르더라도, 그들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다. 그리고 그를 처단한 것 역시 아담 워록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진 누군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우리였다. 결국 이 영화는 완벽함을 요구하는 빌런에게 완벽하지 않음으로 맞서면서, 완벽함을 만드는 건 언제나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연대임을 말한다.

 

 

 

MCU에게 안녕을 고하기 이전에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 마블이 침체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관객들의 기대감이 떨어졌던 것도,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블이 본래 잘하던 캐릭터 구축과 액션에 소홀하고, 무리한 세계관 확장과 지루한 가르침만 시도하니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블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쉬이 떠나지를 않아서, 새로운 마블 영화의 예고편 클립에는 으레 ‘마블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댓글이 달리곤 했다.

 

이제 그런 댓글을 달 사람들도 없어져갈 때쯤, 이 영화가 나타난 건 대단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세계관 확장이랍시고 넣은 어색한 캐릭터도 없고(<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액션이 지나치게 지루하지도 않으며(<이터널스>), 원년 멤버에 대한 기대감마저 식게 만들지도 않았다(<토르: 러브 앤 썬더>). 유독 비판이 많았던 MCU 페이즈 4의 혹평 요소들을 잘 피해가면서,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서사와 쾌감 있는 액션까지 담아냈으니 평가가 나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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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서 언급한 메시지적 요소와 함께, 이 작품은 액션의 측면에서도 시리즈 중 가장 진보된 모습을 보여준다. 앞선 두 작품에서 스타로드의 잔꾀나 욘두의 레이저 화살처럼 ‘힙한’ 액션 연출을 선보이는 데 공들였다면, 대부분의 관객이 그들의 능력을 알고 있는 지금은 그야말로 ‘정석적인’ 액션씬을 화려하게 난사한다. 아담 워록과의 치열한 육탄전을 그린 오프닝 시퀀스부터, 올드팝을 멋들어지게 활용한 오르고스코프 전투씬, 화룡점정으로 캐릭터들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최대치를 힘껏 담아낸 복도 롱테이크씬까지. 그 어떤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온 관객이든 기필코 만족시키고야 말겠다는 열의가 돋보이는 영화다.

 

다만 이 작품의 성공이, 지금껏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만들어온 제임스 건 감독만의 공일까 두렵다. 마블이 정신을 차린 게 아니라, 여전히 방황하는 마블에서 감독만 정신을 제대로 차렸던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말이다. 아무리 세계관 확장이 중요하다지만, 캐릭터에 정이 가지 않는다면 유니버스는 점점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수천만 관객들이 한 너구리의 삶을 사랑하게 만든 이번 영화를 통해, 부디 MCU가 기존 마블의 성공 공식을 잘 이해했길 바랄 뿐이다.

 

 


하늘을 담고 싶어했던 눈동자로, 이젠 더 먼 곳을 바라보기를


 

별종 영웅들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올해로 꼭 10년이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이미 떠나보낸 적이 있는 우리지만, 왠지 그때와는 다른 이별인 듯하다. 희생이나 은퇴처럼 그들의 활약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닫힌 이별이 아닌, 당장 오늘이라도 우주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열린 이별이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사무칠 슬픈 이별이라기보다는, 웃음도 눈물도 함께 후련하게 보내줄 기쁜 이별이라고 하겠다.

 

어쩌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되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억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실험실의 빛바랜 천장이 하늘인 줄로만 알고 죽어가야 했을, 로켓의 친구들을 말이다. 로켓에게 처음부터 주인공은 너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그들 역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결국 로켓이 지적 생명체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까지 구해내기로 결심하게 된 건, 그 동물들에게서 실험실을 떠나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였다. 지구인과 닮은 'who'들뿐 아니라, 우주 곳곳에서 왔을 'that'들에게도 사랑을 베풀자는 그 태도야말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서의 마지막 성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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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에게 꿈을 만들어준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없었을 테다. 그러니 실험실에서 나고 실험실에서 죽어야 했던 그들이, 그곳을 떠난 후엔 로켓의 바람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길 바란다.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저 먼 우주까지, 그렇게 그들이 딛어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그러다 언젠가는 그루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돌아와도 좋겠다.

 

넓은 우주엔 별종들에게 줄 사랑도 많으니, 부디 다시 와서 그들만의 사랑을 가져가기를.


 

"Nothin' the matter with your head.

Baby, find it, come on and find it. Hail, with it baby.

'Cause you're fine, and you're mine, and you look so divine.


Come and get your love."

 

- Redbone, 'Come and get you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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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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