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 윅 4, 과해서 더 즐겁다? [영화]

4년 만에 돌아온 킬러들의 (액션) 수다
글 입력 2023.05.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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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 신곡의 지옥 편 중 한 구절을 과장되게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그 유명한 장면 전환과 함께 우리를 중동의 한 사막으로 데려간다.

 

평범한 슈트마저 최첨단 방탄 기능이 탑재된 세계관에서 터번을 두른 신비한 아랍인들과 총싸움을 벌이는 것이 대체 무어요, 누군가는 물어볼 것이다. 곧 이어질 다양한 전투 장면에선 정신이 아찔해지는 오리엔탈리즘 덕에 머리를 부여잡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사카, 베를린, 파리. 러닝타임이 흘러 점점 다른 국가의 모습이 보일수록, 생각이 달라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거 그냥 뭐든 과한 영화구나, 하고 말이다.

 

국가, 장르, 액션, 작품의 오마주 등. 영화의 모든 요소에 감독과 제작진의 오타쿠적 열정이 묻어나 있다. 뭐든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이 과함의 소용돌이에 납득하고, 납득하고, 또 납득하다 보면 마지막에 가선 이런 생각이 든다. 과하니까 더 재미있을지도? 물론 개인의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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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고 귀여운 강아지를 죽인 놈들에게 복수하는 알고 보니 짱 세고 짱 멋진 전직 킬러.

 

딱 그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킬링타임 영화가 4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그래서 존 윅의 제작진은 2023년에 이르러서 너무나도 커진 세계관을 납득 가능하게 만들도록, 또 존 윅의 캐릭터성을 유지하되 결말에 관객이 의문스러워하지 않도록 고뇌한 흔적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드러냈다.


특히나 존 윅의 결말에 대해서는 더 노골적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결말을 내려고 하느냐?' '네가 쉴 곳은 죽음 뿐이다.' '존 윅이라는 관념을 죽여야 한다.' 주인공의 최측근인 바워리 킹, 윈스턴부터 악역의 그라몽 후작까지 모두 존 윅의 끝을 이야기한다. 이 대사들은 한두 번에 끝나지 않고, 작품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나왔다. 결국은 감독이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존 윅은 죽을 겁니다, 그게 가장 어울리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강력히 호소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인 '미친 듯이 많은' 액션은 당연히 충족시킬 것이라는 자신감 또한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오사카 콘티넨탈의 코지가 존 윅의 관객이 되어 "최대한 많이 죽여주게." 라는 대사와 함께 퇴장했을 때, 극장의 많은 사람이 웃었더랬다.


감독과 관객. 감독이 없으면 관객은 영화를 볼 수 없고, 관객이 없으면 감독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영화라는 미디어아트이자 기록이자 콘텐츠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제작자와 감상자, 두 존재를 끊임없이 드러내려 드는 이번 4편은 아예 두 구성요소를 한 캐릭터로 형상화했다. 극 중 존 윅의 현상금이 올라갈 때까지 그를 도와주다 금액이 오르자 그제야 존 윅을 척지려 드는 "노바디"가 바로 그것이다.

 

Nobody. 누구도 아닌 자. 누구도 아닌 자는 결국은 Everybody(모든 자)와 같다. 대중의 틈에 섞인 우리는 누구도 아닌 자이자 그 속의 모든 이들이기 때문이다. 강아지와 함께 존 윅을 뒤쫓다 신처럼 기막힌 타이밍을 만들어 그를 돕고, 죽이려고 애를 쓰다 결국은 응원하게 되는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적 성격이 가미된 관객 형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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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존 윅의 삶과 죽음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아무도 모르는 자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마지막 결투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자유를 얻기 위한 1대1 결투의 장소로 결정된 성당은 총 222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다. 약속 시간인 일출이 오기까지 성당에 도달하기 위해 존 윅은 그를 좇는 수많은 킬러를 이 계단에서 상대해야 했고, 드라마가 언제나 그렇듯 목전을 두고 계단을 크게 구르고 만다. 222개 더하기 222개, 총 444개의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그는 자유의 기회를 얻었다.


결투에서 승리한 존 윅은 안도한 얼굴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몇 계단을 밟지 않아 출혈로 쓰러진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숫자 666은 종종 불길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옥이나 악마의 상징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인데, 존 윅이 만약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면 그는 666, 즉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가 삶을 마무리 지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지옥도, 그렇다고 천국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걸쳐있는 존 윅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살아있는 것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존 윅이 천국에 어울리는 신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무자비한 살인자가 천국에 올라갔다간 많은 이들의 반발심을 살 것이다. 그렇다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그는 이 세계관의 거대한 압제자인 최고회의에 맞서 싸운 반골 정신 그 자체 아니던가?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존 윅은 언제나 그사이를 오간다.

 

감독과 관객이라는 존 윅은 절대 모를 존재들은, 존 윅이 모르는 곳에 개입해 즐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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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감독과 관객의 합체형 캐릭터도 등장했으니, 더욱 대놓고 등장한 도시들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해 보자.

 

사이버펑크 분위기 물씬 풍기며 벚꽃 휘날리는 오사카가 등장했을 때, 국내의 많은 팬이 아찔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서양 문화에서 재현되는 동아시아는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인데도 대개의 영화가 아직 1982년 작 <블레이드 러너>의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콘티넨탈 주인의 딸 이름은 그 유명한 '아키라'다. 특히나 짙은 왜색엔 약간의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나 역시도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액션과 음악이 이 오리엔탈리즘을 어느 정도 가려주었다. 더해 케인 역을 맡은 견자단의 캐릭터 해석 및 변형 역시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찜찜한 상태로 넘어가면, 베를린도 만만치 않은 선입견이 담겨있는 채로 그려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독일이 테크노 문화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클럽인 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런게, 눈앞에서 사람들이 도끼를 맞고 총을 쏘고 한바탕 피를 흩뿌리며 싸우고 있는데도 춤에 미쳐 관심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 그뿐인가, 존 윅과 그의 일행에게 카드 게임을 권유하는 캐릭터 킬라 하르칸을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변태적인 분위기까지 물씬 풍긴다. 이 역시 독일에 대한 대중문화의 색안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지막 도시, 파리는 고상한 시궁창이 되어있다. 샹송부터 로큰롤까지 아름다운 선율이 라디오를 통해 퍼지는 이 도시는 거리가 온통 킬러들로 가득 차 있다. 존 윅이 어딜 가든 쥐 떼처럼 목을 노리고 따라붙는다. 밤의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골목과 정신 사나운 개선문, 그러면서도 몇백 년 전에 지어진 위엄 넘치는 정교한 건물들이 들어찬 곳. 영화의 가장 클라이맥스 액션을 엉뚱하게도 프랑스 파리가 담당하고 있다. <존 윅> 시리즈의 축축하고도 장엄한 분위기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나마 작품의 근거지인 뉴욕을 제외하면 세 도시 중 가장 덜 편견에 가득 찬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극초반에 아랍이 등장하긴 하지만 너무나도 짧으므로 더 이야기할 내용이 없다. 그러나 이전 시리즈에 중동이 등장한 적이 있었으며 그 문화권 역시 앞서 설명한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전한다. 초반에 잠깐 이야기했듯,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오마주를 생각했을 때 어떨진 다들 짐작이 가지 않는지?

 

매체에서 보여주는 환상 속의 도시들이 존 윅에선 그대로 답습된다. '이 나라 하면 이것', 대놓고 보여주는 과장된 요소들은, 놀랍게도 오히려 존 윅의 스타일을 배가하는 효과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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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에 크게 치중한 영화다 보니,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은 모두 다 보여준다는 점도 매력의 하나다.

 

파리의 8구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액션은 아예 게임의 형식으로 진행이 된다.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액션 연출로 모자라, 삼인칭 시점의 고전 슈팅 게임에서 많이 보여왔던 탑 뷰(Top View)의 구도를 채택했다. 불을 내뿜는 총기를 들고 킬러들을 물리치는 원테이크 액션씬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꼭 게임 방송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뿐만 아니다. 존 윅이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장면에서는 근래 꽤 유행했던 일명 항아리 게임(원제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과 같이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품을 연상시킨다. 몇 계단 구르고 말 줄 알았던 존 윅이 아예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탄식하지 않는 관객이 없었다.

 

게임처럼 진행이 되던 액션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특이하게도 서부영화로 귀결된다. 가장 긴 생명력을 가진 장르 중 하나이자 액션하면 빠질 수 없는 선인과 악인의 맞대결을, 미국인도 아닌 인물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치른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런데도 비장함은 여전하다. 일출에서 비롯된 노란 색감도 사막 먼지 나부끼는 할리우드 고전의 무법자들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존윅과 그와 대결을 펼치는 케인 모두 킬러들이니, 무법자인 것은 맞는 셈이다.

 

장소도 인물도 모든 것이 과하고 짬뽕 되어있는데 이상하지 않은 것, 이게 <존 윅 4>의 재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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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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