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는가? [도서/문학]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글 입력 2023.05.0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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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보라. 돌무더기 형태의 장소에 한 시신이 놓여있다. 바위 쪽에는 소총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 중 찍힌 사진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사진이 연출된 사진이라면 어떻겠는가?


실제로 이 사진은 <어느 반란군 저격병의 집>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다. 사진 속 시신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쓰러져 있었으나 좀 더 시신이 명확히 보일 만한 장소에 재배치했으며 시신 옆의 소총은 직접 가져다 놓은 장식 소품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 총은 저격병이 쏘는 특수 총이 아닌 일반 보병이 쓸 법한 총으로, 소품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조차 없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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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어떠한가. 이것은 파리의 시청 앞에서 젊은 남녀가 입 맞추는 장면을 순간 포착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낭만적인 파리에서 젊은 남녀의 로맨틱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사진 역시 조작된 것이라면? 순간포착이 아닌 두 배우를 고용해서 의도적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사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위의 사진이 일종의 순간포착이었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다만 사진을 본 사람들이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파리의 배경과 더불어 두 남녀의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의 모습을 우연히 포착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사진의 기능은 사진에 찍힌 인물들의 “방심 속에서” 찍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사진의 모습은 그리 순수하지 않다. 정말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해 어떤 편집도 없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내는 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역사의 기록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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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사진기는 여러 기능이 있다. 물체를 확대, 축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심이 되는 물체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이외의 것들은 초점을 흐리게 하는 기법까지. 사진을 찍는 이는 이 모든 기능을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나의 장면을 완성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은 사진 밖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진은 검열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검열하는 기준은 국가의 장군들이나 상층부들의 마음에 내키는 대로다. 언론 최초의 검열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당시에는 소수의 사진작가들만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했으며 언론에 전쟁의 충격적인 모습이 나올 것을 염려해 전쟁현장의 모습을 제한적으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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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검열은 사상자의 얼굴을 비공개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전쟁 당시 죽은 병사들의 얼굴은 모두 땅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이 모습 역시 일종의 연출이다. 전쟁 중 전사한 병사들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그들의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각도를 잡아 사진에 담아낸 것이다. 


그런데 병사들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일관성을 띠고 있지 않다. 초상권을 보호해주는 기준은 이들의 피부색에 따라서도 나뉜다. 앞선 사진 속 병사는 백인 미군이었으나 뒤의 사진은 가난한 나라의 아프리카나 아시아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우리는 그 사진 속 인물의 죽은 모습을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실제로 가난과 기근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자주 접한 사진 역시 아프리카 속 사람들과 어린이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고정관념이 박힌다. 전쟁과 고통이 있는 곳은 항상 가난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발생한다고 말이다. 무심코 보고 지나쳤던 사진이 주는 잔상은 생각보다 우리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사진들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며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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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리온 내전의 희생자

 

 

이 책을 집필한 수전 손택은 이러한 사진을 찍은 사람만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비난의 대상은 우리도 포함이다. 흔히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며 함께 마음 아파하고 그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그러나 수전 손택은 우리의 이러한 감정 역시 고통을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당장 TV에서 전쟁하는 국가나 지진이 나서 모든 곳이 폐허가 된 모습을 보는 우리는 그것을 보며 마음 아파하지만, 그 마음을 희석시키고자 한다면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만약 TV에 나오는 참혹한 모습의 사람들이 나의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 중 한 명이라면? 우리는 단지 연민과 동정의 감정만을 느끼는 것에서 끝날 수 있는가? 너무 가슴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채널을 돌려버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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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실상 우리 모두를 관음증 환자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잔인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사진 속에 담긴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보며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비평가인 윌리엄 해즐릿에 따르면, 인간이 여러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를 늘 읽는 이유는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이는 일상에서도 쉽게 인지 가능하다. 예컨대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자동차 충돌 현장을 지나칠 때 대부분의 차가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호기심만이 아닌, 속도를 늦추는 운전자들 모두가 무언가 소름 끼치고 끔찍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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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과 동정은 매우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단지 매체에 보여지는 것에만 치중하여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불쌍함을 느끼는 것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리는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한 것도 모두 우리와 관련이 없다는 데서 나오는 연민의 한계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진 속 고통을 받는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고통을 받는 이들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만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과 동정에서만 끝내는 것은 우리의 무능력함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연민을 넘어 진정으로 공감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더불어 매체에서 많이 보이는 끔찍한 참사들이 작은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점점 진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은 결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숙고해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을 인식했을 때 타인의 고통은 연민을 넘어서 진정한 공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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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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