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리운 것을 마주하는 방법

그 방법을 여전히 모르겠다
글 입력 2023.05.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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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으면 항상 나오는 이야깃거리는 과거의 에피소드다. 지금은 미화된 옛날의 추억들을 하나 둘씩 꺼내고 나면, 어느새 우린 꿈을 꾸던 여고생으로 돌아가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우리가 되어 한바탕 웃고 나면, 기분 좋은 꿈에서 깬 것 마냥 현실로 돌아와 다시 지친 얼굴을 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나는 옛날 추억들을 전보다 덜 언급하는 것 같다. 다들 마음 속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에 그 애증의 기억들을 고이 접어 보관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에 좀 더 충실해졌다.

 

어른이 되면, 현실에 '찌든다'고들 한다. 웃음이 사라지고 현실 속 제약들에 발이 묶여 그냥 저냥 살아가는, 그런 어른이 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어른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 또한 일상이 모두 무료하지만은 않지만, 현실을 체감하는 것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잔나비의 정규 2집 앨범 수록곡 중에서 '꿈과 책과 힘과 벽'이라는 노래의 가사에도 이런 말이 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중략)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x2)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이 노래가 나온 것은 2019년, 당시의 나는 이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어렴풋이 내포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다. 어릴 적 꾸던 꿈을 놓지 않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치고 있지만, 가끔 찾아오는 우울감은, 그리고 불안감은 그리운 과거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 그것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번 그리움의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마치 독처럼 그것이 온 생각을 지배하고 만다. 현재의 나는 온 데 간 데 없고, 그리워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 한껏 슬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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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은사님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지금은 돌아가신 은사님께서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보셔서 고등학생일 때 나를 떠나셨다. 아프신데도 나를 챙기시기 위해 직접 연락까지 하셨던 분이었고, 은사님의 장례식장에 갔던 그 날조차 내겐 커다란 충격으로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을 정도로, 내게 정말 큰 의미를 가진 분이다.

 

분명 그 분에 대한 별 다른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생겨난 그리움은 지금도 나를 슬프게 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그 추억과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은 도저히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저, 계속 슬퍼했다. 그 슬픔과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나도 한껏 슬퍼했다.

 

어제, 떡볶이를 먹었다. 요즘 대중화된 프랜차이즈 스타일의 떡볶이가 아닌, 시장이나 골목 분식집에 있는 떡볶이가 생각이 나서 튀김과 함께 버무린 메뉴를 주문했다. 커다란 떡이 오징어 튀김, 김말이 튀김, 고구마 튀김, 만두 튀김과 함께 매콤한 양념과 하나 되어 따끈따끈하게 나왔다. 거기에 어묵 국물까지! 정말 오랜만에 먹는 것들이었다. 함께 한 여우씨와 추억에 젖어 컵떡볶이, 콜팝 등 어릴 적 먹던 음식들을 열거하다가, 문득 근처에 와플을 판다는 것이 떠올랐다.

 

은사님을 매주 한 번씩 뵈러 갈 때마다 배가 고프던 나는, 항상 와플 가게에서 와플을 하나 사먹곤 했다. 로또 가게지만 길거리 간식을 파셨던 사장님께선 날 기억하시고 항상 친절하게 와플을 건네 주셨고, 나는 그걸 야금야금 아껴먹으며 은사님의 수업을 들으러 갔던 그 추억을, 나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추억을 여우씨와 공유하며, 한창 그리움에 빠져있을 때였다. 여우씨가 그런 나를 살짝 바라보다가, "오늘은 (나의 별명)의 추억의 음식들을 먹어보자"라고 말했다. 비록 와플은 배가 너무 불러서 먹지 못했지만, 그 순간은 여우씨에게 정말 가슴이 시릴 정도로 고마웠다. 추억을 소중히 생각하는 내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그리워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추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한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리움이란 감정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저 그 감정을 느끼고 잠시 그 기분에 젖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억으로 그리움을 덧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를, 현재의 내가 마주하면서, 그리움이란 감정으로, 하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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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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