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을 뜨고 꾸는 꿈, 원픽 페스티벌 ONE PICK FESTIVAL

글 입력 2023.05.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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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단연 라인업이다. 페스티벌의 계절이 돌아왔음에도 확 끌리는 공연이 없었던 내게 원픽 페스티벌은 이름부터 솔깃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확인한 타임테이블은 이름처럼 너와 나의 원픽으로 가득했다. 꼭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그곳이 나에게는 코첼라요 글래스톤베리였다.

 

사정상 양일 모두 참석하지 못하는 나를 저주하면서, 일요일 오전 일정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연세대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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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밴드를 차고 노천극장으로 향하자 아득하게 <원피스>의 주제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다나카의 무대였다. 노래가 들려오자 슬슬 마음이 급해진 나는 거의 뛰다시피 노천극장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솔로곡이 많지 않다보니 어떻게 공연을 이어갈지가 궁금했는데, '와스레나이'와 '지명해줄래'를 부른 후에는 본인과 연(?)이 있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듣는 나몰라패밀리와 홍남2인조의 노래가 무척 반가웠다. 음색이 묘하게 비슷한 탓인지 본인 노래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무대에 큰 기대를 품고 있지는 않았다. 노래보다는 그의 입담이 더 궁금했었다. 한데 웃음으로 가득했던 그의 무대는 곱씹을수록 감동적이었다. 길고 굴곡진 경력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들을 고스란히 셋리스트에 담아낸 느낌이었달까.

 

그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윤종신의 '오르막길'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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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HYNN의 무대였다.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기대가 컸는데, 실력이 기대 이상으로 살벌했다. 스피커가 찢어질 것 같은 성량과 기계로 만진 듯 정확한 피치에 공연 내내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감탄만 하고 있었다. 리액션 비디오를 찍었다면 꽤 볼만했을 것 같다.

 

사실 HYNN의 노래는 '시든 꽃에 물을 주듯' 말고는 찾아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라이브가 워낙 출중하다 보니 처음 듣는 노래도 굉장히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녀가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리다 이내 몇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었다.

 

낯선 노래와 사랑에 빠지는 것. 이런 게 페스티벌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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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거리를 사서 노천극장으로 돌아오자 카더가든(前 Mayson The Soul)의 무대가 막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그를 '침착맨 유튜브에 나오는 웃긴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뭇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기름을 잔뜩 발라 넘긴 것 같은 머리와 형형한 안광, 날카롭고 절절한 음색이 한 편의 홍콩 영화 같았다.

 

노래를 마칠 때마다 툭툭 던지는 멘트도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마다 입으로 찬물을 뿌리는 통에 여운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지난 노래의 감동을 손수 걷어냄으로써 이어지는 노래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 나름의 배려일까?

 

아무튼 심금을 울리는 노래와 열받는 멘트의 온도차로 관객을 담금질하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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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마지막 무대이자 하이라이트는 넬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지만 연차가 오래된 팀인데다 보컬의 음색도 무척 독특한 탓에 라이브는 어떨지 조금 걱정이 됐는데, 끊어질 듯 희미한 전주 끝에 뱉어낸 '아직도' 세 글자에 상념들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목소리로 저런 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이지 경이로웠다.

 

'기억을 걷는 시간', 'Stay'의 섬세하고 여린 독백은 '무홍', 'Ocean of Light'로 차갑게 달아올랐고, 이내 '백색왜성'의 절규로 들끓었다. 완벽한 셋리스트에 흥을 주체할 수 없어 공연 내내 일어나서 뛰고 소리를 질렀다.

 

몸이 한껏 달아오른 탓에 봄밤을 싸늘하게 식히던 비마저 반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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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모두 끝난 공연장은 지난 흥분의 잔열만을 남기고 점차 조용해졌다. 사람들 틈에 뒤섞여 노천극장을 나서자 이 모든 일이 어쩐지 꿈만 같았다.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고, 옷은 쫄딱 젖었지만 채 가시지 않은 도파민 덕에 허기도,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짧고 달콤했던 추억의 끝맛이 최대한 길게 남도록,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좋아하는 가수가 가까이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꿈을 종종 꾸곤 한다. 그런 날에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크게 노래를 틀고 바스러지기 직전의 꿈을 열심히 되감는다. 잊을 만하면 공연이나 페스티벌을 찾게 되는 건 잠에 들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만에 눈을 뜨고 꿈을 꿀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각자의 원픽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코첼라 글래스톤베리 원픽페스티벌 렛츠고.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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