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음악]

급할수록 돌아가세요, 뜨거울수록 천천히 드세요.
글 입력 2023.05.05 19: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는 것 같은 중압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 -사실, '느껴본 적이 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게, 지금도 그러고 있긴 하다.- 책과 노트북이 날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서 빠져나오려면, 아주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위에서부터 무게를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착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인간사에 통달한 도인이나 할 수 있는 것이지, 나와 같이 성격 급하고 일 못하는 사회 초년생에겐 불가능의 영역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쌓인 일에도 마음 급하지 않을 수 있는, 돌아보면 잔뜩 쌓인 실패작들에도 미련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초연함이 부족하달까. 다만 그것은 사회 초년생에게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닐 테다. 누군가에겐 사랑이, 아무개에겐 새롭게 주어진 역할이, 사회 초년생의 것과는 또 다른 초조함을 가져다주는 시발점일 것이다.


원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나는 '장기하'라는 인물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가 가진 느슨한 자신감이 세상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 같달까? 가장 최근, 장기하의 곡, '부럽지가 않어'는 사회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었다.


느릿느릿한 듯하면서 어찌 들으면 빠른 것 같은, 랩을 하는 건지 노래를 하는 건지 그냥 말을 하는 건지 분간할 수 없는 오묘함이 리스너로 하여금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게 하기도, 따라 부르게 만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만큼, 그 가사의 내용도 널리 알려진다. 이 오묘한 노래를 많은 이들이 따라 부르게 된 것은 그의 '부럽지가 않어'에 설득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에게 설득된 사람 중 하나로서 느낀 바를 오늘 풀어내어 보고자 한다.

 

 

 

이건 노래가 무슨 장르예요?



장기하의 노래를 듣다 보면 좋으면서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장르다. 그가 내뱉는 가사들은 '랩'의 범주 안에 묶일 수 있다는데, 곡을 전체적으로 들어 보면 '힙합'이라고 딱 정의하기 어렵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멜로디가 담긴 라인들이 재미있어서 '포크' 안에 묶이는 건가, 생각하며 듣다 보면 또 아예 '포크'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정리하자면, 장르를 하나로 좁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분석하고 요약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장르성을 띠는 음악이며, 어느 음악과 함께 묶여 분류될 수 있는지와 같은 기준 자체가 아예 적용될 수 없는 것이 장기하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굳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흔히 '맥이 없다'라고 평하는, 힘없는 중얼거림은 대중들에게 그리 듣기 좋은 류의 멜로디가 아닐 것이다.


장기하는 발매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본인의 노래에 대한 음원 사이트 댓글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영상 속 장기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는 아니다', '이걸 노래라고 용납을 할 수가 없다'라고 진지하게 평한 악플에 되려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르의 경계에 있는 노래를 만든 건가'라며 너스레를 떨던 그의 말은 유쾌하면서도 그 속에 꽤나 딱딱한 뼈가 있는 듯하다.


'애호가'를 자처하는 마니아들은 때로, '애호가'라기 보다 '불호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곤 한다. '장르'를 애호한다고 말하면서, 그 구성을 이루는 음악가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던질 때가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것을 보다 보면 알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을까, 꼭 싫은 요소를 찾아내야만 하는 걸까 싶다.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장르, 이 음악의 속속 들을 모두 알고 좋아하고 싶어서 그 안을 파헤치다가 싫은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하다. 불호에도 애호의 감정이 조금은 섞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았달까? 그냥 지나가다가 장기하의 음악을 듣고 '이게 노래야'하며 제대로 듣지도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그저 불호'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아무개는 노래에 가창력이 없다고 싫어하며, 또 다른 아무개는 따라 부를 수가 없다고 싫어한다. 터놓고 말해서, 그냥 감정일 뿐이지 않나. 어떠한 대상에 불호의 감정을 갖는 이유를 말하라는 것은 응답해야 할 이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는, 한낱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느긋하면서도 위트 있게,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노래를 만들었을 뿐인데, 듣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나뉜다. 늘 같은 생각을 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장기하의 노래를 듣고 나니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싫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던 친구가 '그래도 장기하는 싫어'라고 말할 때 조금은 우스웠던 기억이 난다. 음악이라는 큰 둘레 안에서 장기하는 어떤 의미와 영향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친구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냥 장기하의 노래를 함께 들었을 뿐인데.


그냥 흘러 흘러 노래를 '지나가듯이' 향유하는 21세기 세상에서, 장기하와 그의 음악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물음표'를 갖고 유심히 듣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가사가 왜 이래요?


 

 

너한테 십만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누가 더 짜증날까

널까 날까 몰라 나는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中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난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여러분은 이 가사를 보고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가?

 

부럽지가 않다고 말하면서, 내심 부러워하는 이 가사. 어쩌면 누군가는 비웃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하나도 부럽지 않은 듯한 말투로 곡이 진행되는 내내 '부럽지가 않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중간중간 들리는 '부러운 듯한' 가사들이 노래에 계속해서 집중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결국 부러운데 부럽지 않은 척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이런 가사들은 꽤나 우리의 일상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우리도 부럽지만 부러운 티를 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가령, 내가 들고 있는 것보다 남이 들고 있는 게 더 근사해 보일 때라든가,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휴대폰의 신형을 들고 있는 사람을 봤을 때라든가. 그런 때도 다들 한 번씩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모두가 말을 하진 않지만 속에 품고 있는, 작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덤덤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아티스트도 장기하뿐이라 생각한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듣고 있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만한 화제들을 가사에 담는 독창성과 배포를 가진 이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장기하는 섣불리 다루었다간 오히려 몰매를 맞을 수도 있는 주제들과 감정들을 이만큼 불편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듣는 이들이 내심 통쾌할 만하게 가사에 써 낸다. 그의 전작들인 '그렇고 그런 사이', '싸구려 커피', '우리 지금 만나' 등에서도 평범하지만 유쾌한, 위트 있는 가사들을 만나볼 수 있다.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부럽지가 않어'를 들으면서, 장기하의 말투가 노래 전반에서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 이후로 장기하의 노래가 궁금해져 그의 전 작들을 돌아 보니, 신기하게도 정박과 엇박을 가로질러 본인만의 방법으로 멜로디를 오가며 '말하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묘하게 리듬에 맞아떨어지는 말의 시작과 끝이 재미있으면서도, 그 안에 하고 싶은 말과 대중이 공감할 만한 화제를 모두 담는 것이 신기했다.


보컬이라 하기엔 다듬어지지 않은, 랩이라고 하기엔 박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냥 '넋두리'라고 하기엔 노래 마디의 끝과 끝이 너무나도 절묘하게 떨어지는 그의 노래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질타를 한몸에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모든 비판과 칭찬의 가운데에서 스타일을 고수하며 살아남아 온 그가 마치 '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줏대와 강단, 뱃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의 초연함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 궁금해진다. 직접 물어볼 수 없어 아쉽달까, 아마 대답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대답조차도 신선할 것 같아 절로 기대가 된다. 이 질문에 대한 장기하의 대답은 어떨까?

 

 

[포맷변환][크기변환]20230405506935.jpg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jpg

 

 

[유서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7.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