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얼어있는 꽃에서 찾은 메멘토모리 [미술]

마크퀸의 Garden 시리즈
글 입력 2023.05.0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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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연했던 날은 지나가고 벚꽃은 떨어져 푸릇한 잎사귀가 돋아났다. 4월 초반 분홍빛으로 가득했던 여의도의 윤중로는 4월의 끝자락에서 푸르른 잎들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분홍빛에서 설렘과 봄의 시작이 느껴졌다면 푸른빛들에게선 생명력과 건강함, 곧 다가올 여름이 느껴졌다.

 

벚꽃놀이가 소중한 것은 4월 초반 1~2주밖에 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꽃은 특히나 찰나성이 돋보이는 존재다. 이러한 '찰나'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꽃은 미술사에서 메타포로 많이 사용되곤 한다.


꽃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이번엔 조금 색다른 접근을 한 작가의 꽃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꽃을 산 채로 얼려버린 작업이다.

 

 

 

Garden

Marc Qu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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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퀸은 꽃과 여러 식물들이 아름답게 피워져있는 모습을 그대로 냉동시켰다. 마치 찰나로 피어있는 꽃을 영원히 볼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이다. 관람객들은 유리로 된 방을 통해 그 꽃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꽃은 금방 피어나고 단기간에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금세 죽음이 되고 마는 인생의 '허무함'이나 '덧없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퀸은 만개한 꽃들을 냉동시킴으로써 그들이 영원을 사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냉동된 꽃은 사진처럼 정지된 하나의 이미지와 같다.

 

여기서 paradox(모순)이 발견된다. 바로 영생을 얻은 것처럼 보이는 꽃들이 실은 물리적으로 죽어있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서 냉동된 상태는 모든 것이 멈춘 상태이므로 어떠한 생물학적인 작용도 없다. 따라 이 꽃들은 유사 죽음의 상태이다. 유리창 안에 만개한 꽃들은 시각적으로는 아름답게 펴있어 살아있다고 보이지만, 사실적으로는 냉동되어 모든 생물과 세포의 활동이 정지된 시체라는 이야기가 된다.

 

냉동 스위치를 내리면 그제야 생명 활용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꽃은 금방 시들고 죽음을 향하게 된다.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인 것이다. 어느 순간에도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생명체의 "필연적 운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냉동 꽃 조각은 현대식 바니타스로서 존재한다. 바니타스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허무하다'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정물화 양식을 의미한다. 이 정물화 양식은 주로 삶의 세속과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소품들을 함께 그려 넣는 방식이다. 

 

바니타스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의 교훈을 담아내고 삶과 죽음의 괴리감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데 의의가 있다. 유한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주요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바니타스의 의미를 다시 실현시키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퀸의 냉동 꽃 조각들 역시 이와 같은 의미를 두고 있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세상의 일부이며 삶의 일부이다." 퀸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절망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긍정하고 창조하는 초월적인 계기이다.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삶의 종착지이다. 죽음의 의미를 묻고 확인하는 것은 곧 삶의 의미를 묻고 확인하는 것과 같다. 인생의 허망한 꿈에서 벗어나서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온전한 삶을 완성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죽음은 아는 것은 삶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냉동된 꽃에 죽음의 의미까지 담은 마크 퀸, 그의 뜻대로 유한함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끝을 보는 시도들이 우리의 인생을 완벽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봄의 끝자락이다. 살아있는 생명력이 가득한 찰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올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전국에서는 에버랜드의 튤립 축제, 고양시의 국제 꽃 박람회 등 다양한 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금 가장 아름답게 피고 있는 꽃을 보며, 여러분도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가장 완전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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