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락사보다 먼저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 -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글 입력 2023.05.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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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세’. WHO가 2019년 발표한 우리나라의 건강수명이다. 같은 해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기대수명이 83.6세라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평균 10년간 여기저기 아프다가 죽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오래 앓은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10년이 어떤 모습일지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잠을 자다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안락사 논의가 계속되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에는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죽음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싶은 할머니, 유도라 허니셋이 나온다. 까칠하고 무뚝뚝한 유도라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다.


소설은 매우 현실적으로 유도라의 노화를 묘사한다.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갈수록 나빠지는 기억력. 유도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경멸과 동정 사이를 오간다. 85세의 유도라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현실에는 동화 속 푸근한 할머니보다 유도라와 같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주어진 일상을 성실하게 이어가긴 하지만 노인으로 사는 것에 지친 유도라는 안락사를 신청한다.


 

“내 나이가 여든다섯이에요. 나는 늙었고 피곤하고 외로워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우울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끝났을 뿐이에요. 요양원에서 시끄러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저귀에 오줌이나 지리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고요. 나는 품위를 갖추고 조용하게 세상을 뜨고 싶어요.”

 

40p

 


살다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 많다. 왜 죽고 싶을 때 살 만한 이유가 생겨나고, 살고 싶을 때는 죽음의 위기를 맞는 것일까.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 유도라에게 10살짜리 새로운 이웃 로즈가 찾아온 것 역시 그러한 아이러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감정 표현에도 솔직한 로즈를 매개로 유도라는 스탠리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로즈는 갑자기 뛰어들어 얼마 남지 않은 유도라의 삶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소설은 로즈와 가까워지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85세의 유도라와 과거의 유도라 사이를 오가며 전개된다. 과거의 유도라는 삶의 쓸쓸함과 무상함을 보여준다. 그가 살아온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사실상 가장이 된 그는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기보다 엄마와 동생을 돌보며 살아야 했다. 유도라가 몇 차례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거쳐 지금에 이르는 모습에서는 한 번뿐인 데다가 그나마도 너무 짧은 우리 인생의 슬픔이 느껴진다.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동안만이라도, 삶을 선택해 주시겠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167p

 

 

반면, 현재의 유도라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한 즐거운 순간은 언제든 찾아온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로즈와 함께하며 유도라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삶에도 아직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를 들면 맛있는 피자, 토크쇼, 회전목마 같이. 85세에도 새롭게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인간의 본능은 죽음이 아닌 삶이기에 방심하는 순간 자꾸 삶에 대한 애착이 잔뿌리를 내린다. 


안락사를 둘러싼 논의가 중심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설은 유도라와 로즈의 우정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죽음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 죽음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소설의 초반, 유도라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죽기를 바란다. 그러한 ‘깔끔한 죽음’은 현대 사회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게 꼭 ‘의미 없는 연명치료 끝에 맞는 죽음’의 해결책이 되어야 할까.


안락사가 정답으로 여겨질 때, 우리가 평생토록 필요로 하는 돌봄의 존재는 지워진다. ‘깔끔한 죽음’의 선호 이면에는 돌봄 받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안락사가 합법화되어 있다면, 남의 돌봄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안락사를 선택하는 게 사회적으로 윤리적인 것일까? 그 이전에 나이가 들어서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사는 게 가능한지, 그게 정말 괜찮은 삶인지 묻게 된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이 질문에 소설은 매우 이상적인 답을 제시한다. 유도라는 돌봄을 받고 또 누군가를 돌본다. 여기서의 돌봄은 친족이 사회와 단절된 채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야만 하는 ‘지옥 같은 돌봄’이 아니다.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떼어내 타인을 위해 공유하는 방식의 돌봄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정말 안 한다. 두려워하고, 못 본 척하고, 부정할 뿐이다. 지긋지긋한 비디오 게임에서 서로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호러 영화를 즐기면서도, 성숙한 어른으로서 죽음이 무엇인지,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토론하기를 거부한다.


103p

 


더 나아가,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지금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죽음을 금기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죽음을 원하는지,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은 어떠했는지 적극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0살이지만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로즈의 모습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죽음은 삶의 종착지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의료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죽음과 삶은 칼로 무 베듯 깔끔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죽음과 삶 사이 ‘그레이존’이 존재한다. 젊은 시절 무작위로 찾아오는 죽음을 어찌저찌 잘 피한다면 신체가 서서히 기능을 다하며 죽음으로 다가가는 그 시간을 반드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안락사는 노년을 대비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논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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