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악보를 갈망하는 삶의 시주(視奏), ‘리턴 투 서울’

글 입력 2023.04.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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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되는 바람에 자연스레 한국계 프랑스인으로 성장한 '프레디'는 갑작스런 연유로 의도치 않게 본인의 근원지에 당도한다. 본래 일본 도쿄에서 2주 간의 휴가를 보내기로 계획하고 있었으나, 급작스러운 항공사의 사정으로 인해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한국의 서울에서 예기치 않은 휴가를 보내게 된 것이다.

 

특유의 붙임성 있는 성격을 내세우며 금세 한국인 친구들을 사귄 '프레디'는 이내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뜬금없이 '시주'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시주'는 '악보를 처음 보고 연주하는 일'을 뜻한다며 알 수 없는 의미의 이야기를 시작한 '프레디'는 설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본인의 주변에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처음 보는 이들에게 합석을 권유한다.

 

'프레디'가 갈망하는 삶의 즐거움이란 곧 시주라는 행위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방금 처음 만난 이들과 자연스레 술자리를 함께하고, 이내 그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남성과 잠자리를 가지는 등 '프레디'는 자신의 삶 속에 처음으로 들어온 악보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 악보들을 바라보며 다소 즉흥적인 연주를 펼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낙이자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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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상황이기는 했으나 '프레디'는 어쨌거나 자신이 태어난 한국에 당도한 김에 자신을 낳은 친부모를 찾아 나서보기로 한다. 자신이 위탁되었던 아동 시설을 통해 친부와 연락이 닿게 된 '프레디'는 이내 친부가 거주하고 있는 군산으로 찾아가 아버지를 비롯하여 할머니, 고모, 이복동생 등 자신의 친가 구성원들과 만남을 갖고, 그들과 며칠 간의 일과를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 며칠 간의 생활이 아마 '프레디'의 인생에 있어 가장 괴이하게 느껴졌던 하루하루가 아니었을까 싶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언어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들이 단지 피가 섞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집착에 가까운 형태의 애틋함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프레디'에게는 퍽 괴상한 일처럼 다가온 것이다.

 

특히, '프레디'가 다시 자신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 주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는 둥 가족들의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프레디'에게 단지 이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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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신의 친부라는 새로운 악보를 연주해보고자 했던 '프레디'의 시주는 다소 괜스러운 불쾌함만을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레디'는 시주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주의 부정적인 일면을 몸소 확인한 '프레디'는 다양한 악보를 찾아 나서며 즉흥적인 연주를 펼치는 생활을 잠시 청산하고, 오로지 한 가지 악보에만 집중함으로써 특정 곡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방식의 삶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자신의 무분별한 시주에 일종의 회의를 경험한 뒤, 수년의 시간을 걸쳐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프레디'는 이전에 도망치듯이 이별했던 아버지와의 재회를 주선하기에 이른다. 다시 만난 아버지는 여전히 딸에 대한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프레디'는 그의 애착이 이전에 비해 다소 옅어진 것만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둘러 자신과의 만남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태도로부터 '프레디'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해지고 체화되어버린 악보는 안정감이 아닌 권태를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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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게 된 '프레디'는 다시금 맹목적으로 새로운 악보의 시주를 갈망한다. <리턴 투 서울>은 '2년 후', '5년 후', '1년 후' 등과 같은 자막과 함께 굉장히 잦은 극중 시간대 변화가 일어나는 작품인데, 작중 시간대가 변화할 때마다 '프레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즉석 만남 어플을 통해 낯선 이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이들과 어울려 술과 마약에 취해 파티를 벌이기도 하는 등 '프레디'는 어떠한 악보든 가리지 않고 연주하며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프레디'의 막무가내 시주는 이내 이전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모와의 만남으로 향하기에 이른다. 아동 위탁 기관을 통해 마침내 어머니와 재회하고, 그로부터 어머니가 오래 전에 이별했던 딸에게 가지고 있었던 미안함과 애틋함을 몸소 느끼며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게 된 '프레디'는 최대한 많은 악보들을 인생 속에 끌어들이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차별한 시주만이 자신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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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 후, 자신을 쓰다듬던 어머니의 손길 속 따스함을 기억하고 있던 '프레디'는 어머니에게 다시 연락을 취하고자 했지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어머니의 메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메일이라는 메시지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미 한 번 연주했던 악보들은 가볍게 인생의 뒤안길로 묻어버리며 언제나 새로운 악보만을 갈망했던 '프레디'는 그 순간, 자신이 외면하거나 찢어버리기 전에 먼저 사라져버리는 악보도 있다는 사실을 다소 처참한 방식으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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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프레디'가 하룻밤을 머물기 위해 방문한 루마니아의 한 호텔을 배경으로 마무리된다. 호텔에서 우연히 피아노를 발견한 '프레디'는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악보를 바라보며 어설픈 연주를 시작한다.


호텔을 경유하는 수많은 투숙객 중 한 명일 뿐인 '프레디'가 만들어내는 피아노음은 넓은 공간 속에 공허한 형태로 울려 퍼질 뿐 그 어떤 유의미한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허망하게 사라지고 만다. 그 공간에는 그저 시주의 부질없음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프레디'만이 우두커니 존재할 뿐이다.

 

언젠가는 '프레디'가 새로운 악보를 향한 갈망을 멈추고, 자신에게 꼭 맞는 악보를 간직할 줄도 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응원해본다. 우리네 삶에는 한 번의 연주만으로는 그 가치를 쉬이 알 수 없는 악보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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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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