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녕? 안녕.

글 입력 2023.04.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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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하고 물으면, 안녕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유독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다. 스몰 토크로 이어지는 신호탄 같은 말들이 그렇다. 안녕.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평안하신가요. 점심 식사 하셨나요. 형식적인 인사말에 불과한 말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이 모든 안부를 ‘안녕’ 한 마디에 눌러 담았지만 차마 뱉지 못하는 사춘기처럼 미적지근하게 넘어가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숙맥의 내성적인 아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금의 나는 성숙과 미숙의 중간 어디쯤 걸쳐져 있는 인간 같다. 주변사람을 챙기지 못하는 성격을 탓하며 교류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꿈에 지나간 친구들이 등장했다. 한때는 매일 얼굴을 마주했지만 연락조차 닿기 어려운 얼굴들. 말 그대로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은연중에 그 얼굴이 보고 싶었나 보다. 꿈에서는 교복을 입었다. 졸업한 지 십 년이나 되었는데 꿈속의 나는 엊그제 등교한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매일 밤 학교에 모이는 대신 놀이공원에 가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고 나란히 앉아 목적지도 없이 떠들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그 기억은 어렴풋이 흐려졌다. 그러곤 메신저를 열어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스크롤을 한참 내려 이름을 찾고 프로필 사진을 클릭하자 액정 가득 떠오르는 근황이 어색했다. 어엿한 직장인이 된 성숙한 얼굴. 내가 모르는 지인들과 나란히 웃고 있었다. 재작년 결혼을 했다는 소식은 메신저에 올린 웨딩사진을 보고 알게 되었다. 청첩장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렸구나.


사실은 교복을 입고 놀이공원에 간 적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은 기억이 없었다. 교복을 입게 되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를 맞이하며 자연스레 멀어졌기 때문이다. 위층과 아래층에 살며 절친한 이웃이었던 친구는 그 시절 죽마고우나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함께 등교했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속셈학원에 다녔고 교회 반주자인 친구의 모습을 구경하고 응원하기도 했다.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르는 나는 매일 같이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해 달라 졸라댔다.


친구가 결혼하기 전에 딱 한 번 얼굴을 마주 본 적이 있다. 성인이 되어 처음이었다. 사 월 십구일. 어쩐지 익숙한 날짜에 낯선 연락처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안부를 건넸다. “안녕. 잘 지내? 생일 축하해.” 걱정했던 것과 달리 곧이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안부를 물어왔다. 마치 그 시절로 데려간 것처럼 뭉클했으나 불편한 감정이었다. 이내 만나서 얼굴 한번 보자는 말이 오고 갔고 추억에 젖은 나는 신이 나서 약속을 잡아버렸다.


그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고 카페에 마주 앉아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당시 다니던 연구소 명함을 내밀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에 놀라웠지만 한 편으론 의구심 마저 들었다. 어린 기억 속의 친구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다. 실험기구를 만지며 연구하는 모습이라니. 근황을 전하고 나서 더욱 어색하고 낯선 감정이 고개를 드밀었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안녕. 잘 지내. 헤어지는 저녁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마주한 추억에 반가웠고 전혀 공유한 적 없는 일상에 껄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며. 지나간 추억은 이제 회상으로나마 존재할 뿐이다.

 

잘 살겠다는 상태메시지와 함께 웃고 있는 웨딩 사진을 바라보다가 더는 묻지 못하고 메신저 창을 닫았다. 축하해. 끝내 전하지 못했으나 진심으로 축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였기를.

 

안부 너머의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길 바라며. 안녕.



[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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