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올해는 즐겨보려나 봄! [공연]

<2023 올해도 글렀나 봄>의 후기
글 입력 2023.04.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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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동기와 만나기 전날, 동기가 보내온 음악 페스티벌 <2023 올해도 글렀나 봄> 라인업에 흥미가 생겨 인생 최초로 야외 음악 페스티벌에 가보았다. 예전에 기타를 커버한 적 있던 10CM을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고, 새소년과 선우정아의 노래들을 라이브로 듣고 싶기도 했다. 게다가 무료 공연이라니,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으면 슬쩍 한강을 산책하면 될 일 아닌가? 바로 수락 문자를 보내고 드레스 코드인 ‘블랙’에 맞춰 옷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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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예기치 않은 비로 우천 연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하더라.

어쩌면 하늘이 나의 봄을 도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복작복작한 서울, 질리게 많은 사람


 

사실 그다지 큰 기대는 없었다. 다년간의 서울살이로 내가 터득한 것 중 가장 귀중한 경험적 사실이 바로 ‘서울은 어딜 가나 사람이 미치게 많다.’라는 것이었으니까.

 

점심을 먹고 약 2시쯤, 한강 선착장 인근에 도착했을 땐 첫 번째 가수인 미노이가 퇴장을 하고 공연자가 바뀌기 직전이었다. 이미 공연장은 물론이요, 공연장 너머의 잔디밭마저 사람들로 빼곡했다. 각자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아, 질린다. 진짜.’라는 감상이 드는 건 당연했다.

 

자리를 찾는 것도 힘들었는데, 돗자리도 없이 맨바닥에 앉자마자 날리는 꽃가루 탓에 숨쉬기가 거슬려 마스크를 썼다. 아무리 봄이 꽃가루의 계절이라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가 싶게 많았다. 이 페스티벌,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걱정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이쯤에서 동기에게 ‘우리 한강 산책이나 할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들뜬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는 동기의 표정에서 “나 이 공연이 엄청나게 기대돼!”라는 생각을 읽고 한두 곡 정도는 들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돌이켜보면 참 잘한 결정이었다.

 

 

 

적당히 흐린 하늘과 스르르 빠져드는 음악


 

새로운 공연자, 밴드 새소년이 등장했다. 첫 곡부터 밴드라니! 대표곡 <난춘>과 <긴 꿈>을 좋아하는 나는 그제야 조금 이 페스티벌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어진 새소년의 무대는, 감상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정말 좋았다. 쨍쨍한 햇살과 어울리는 밴드의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오묘한 기분에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같은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잔잔히 흐르는 한강이, 넓게 펼쳐진 하늘이 있었다. 무대로부터 먼 거리에 있어 제대로 호응할 수도, 가사를 온전히 들을 수도 없었지만 좋았다.

 

베이스 음이 너무 튀게 들리는 음향의 문제가 없었다면 난 아마 새소년의 순서부터 야외 페스티벌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놓친 말과 몰랐던 노래들이 궁금해 집에 돌아와 직캠을 찾아보며 ‘이것도 나름 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아닐까?’라고 내 마음을 달랬다.

 

하늘이 내 봄을 도운 것이 틀림없다. 선우정아가 무대에 오를 때쯤에 하늘이 기막히게 흐려졌기 때문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내 등이 조금 식었을 무렵, 선우정아가 관객에게 인사했다. 기묘하게도 선우정아의 인사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동기와 “무대에 모든 걸 쏟아내기 위해서 목을 아끼고 있는 걸까?” “음향에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몰라.”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3분 정도, 슬슬 답답해질 무렵 마침내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와, 대박!”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구애(求愛)>였다. 사랑을 갈구하는 것으로 시작한 무대는 보사노바풍의 처음 듣는 노래를 지나 관객들의 성대를 쥐어짰던 호응 유도, 모두가 조용해졌던 <도망가자>를 거쳐 좋은 봄날에 비가 내리길 바란다는 (이 이야기만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비 온다>로 마무리되었다. 노래를 듣는 내내 감동의 쓰나미에서 허우적댔다.

 

선우정아의 노랫소리는 나를 잔잔히 울리기도, 신나게 흥을 돋우기도 했다. 성대를 신체 일부에서 더 나아가 악기처럼 쓰는 가수로는 선우정아가 제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목소리의 강약 조절, 표현력…. 나는 비전공자이므로 전문적인 요소들을 거론하며 그를 찬미할 수 없지만, 선우정아가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노래의 파도로 전해주었다는 찬사 정도는 남길 수 있다.

 

 

 

생경한 음악이 주는 색다른 즐거움


 

내가 여태껏 보았던 공연들은 내가 ‘팬’이었던 밴드, 가수들의 공연뿐이었다. 나는 성실한 팬으로서 공연에 찾아갈 즈음이면 그들의 노래 대부분을 알고 있었고, 애초에 세트리스트가 어떻게 구성될지도 대강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다. 요즈음의 문화생활은 전부 돈으로 환산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가수의 공연에 비싼 돈을 내고 찾아가는 건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노래를 이렇게 생경하게 들은 것이 처음이었다. 이 묘한 하루는 충동적으로 찾아간 무료 페스티벌이 나에게 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가수라고 해도, 우리는 그 가수의 모든 노래를 알지 못한다. ‘팬들만이 아는 명곡’들을 맨 귀로 듣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퍽 미묘했다.

 

스쳐 지나가는 가사들을 그저 흘릴 수도, 궁금해하며 귀 기울일 수도 있는 이 환경이 참 낯설었다. 이 처음 느끼는 감정들을 즐길 때쯤에 페스티벌이 끝났다. 연신 “좋았다, 정말 좋았다”를 반복하며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문득 오늘 하루가 정말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흐르듯 나를 휘감던 선우정아의 목소리를, 오늘의 풍경을 오래 기억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서도 살랑이며 불어온 바람과 어딘가에서 부딪혀 되돌아 울리던 스피커의 소리, 쟁쟁하게 꽂히는 기타의 애드리브.


이번 한 해에는 정말로 페스티벌을 자주 다녀야겠다. 더 많은 풍경을 들어야겠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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