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괜찮다’라고 할 때 찬사가 되는. [영화]

영화 <킬링 로맨스> (2023)
글 입력 2023.04.25 17:3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포스터.jpg

 

 

<킬링 로맨스>는 2014년 <남자사용설명서>로 장편 데뷔한 이원석 감독의 영화이다. 영화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에서 은퇴한 배우 여래가 남편 조나단과의 답답한 결혼 생활에 지친 나머지 남편을 제거하고 다시 연기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전작의 독특한 유머 코드와 솔직한 로맨스를 다룬 감독의 스타일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와 관련해 가장 화제가 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CGV의 영화 평점 서비스인 ‘에그지수’가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이 에그지수가 올라갔다는 것은 영화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의 매력이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다른 관객을 끌어들이는 견인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보통 규모가 작은 영화가 기존 관객의 좋은 평점을 받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영업’해서 관객 수가 증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평점 폭탄’을 맞았던 영화의 점수가 올라갔다는 점에서 <킬링 로맨스>는 조금 특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킬링 로맨스>의 기술, 이야기 측면에서의 완성도 보다도, 영화와 그를 둘러싼 문화적 현상의 주목할 만한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크기변환]불가마.jpg

 

 

 

‘이상한 영화입니다’ 퀄리티로 승부하지 않는 영화


 

한국 영화가 이제 해외의 기술력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인지, 요즘 콘텐츠 업계에서는 작품의 기술적 성과 혹은 세련된 연출 방식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유행하는 듯하다. 이는 먼저 해외 영화의 기술적 과시에서 먼저 시작된다. <아바타: 물의 길>에 관한 기사에서는 이야기보다도 CG로 실제같이 물 속 세계를 구현해 낸 기술력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 영화의 VFX 팀에 ‘한국인’ 스태프가 두 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한국의 기술력과 연관 짓기도 한다.

 

이런 흐름에 따라 한국 영화계에서도 역시 기술력과 세련된 편집, 아트를 강조하는 홍보 방식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주로 CG 기술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SF 영화에서 두드러졌다. <승리호>는 극장 개봉을 목표로 했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넷플릭스 공개로 전략을 전환한 초기 영화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집중했던 것은 우주 쓰레기 청소부라는 흥미로운 설정도 있지만, ‘할리우드 못지 않은’ 시각 기술이기도 했다. 또 다른 넷플릭스 공개작 <정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수연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정이>는 사실 신파적인 요소 때문에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섬세한 시각 효과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킬링 로맨스>는 그렇지만 세련됨, 그리고 ‘티 나지 않는’ CG 기술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모든 장면이 툭툭 튄다. 예를 들어서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여래가 출연한 광고 장면이 나오는데, 그 광고는 요즘의 멋들어진 영상이라기보다는 80년대의 상품만을 강조하는 촌스러운 광고에 더 가깝다. 또한 ‘이 글은 펌글 입니다’라는 밈을 만들며 영화를 적극 알리게 된 MMS 메시지 장면에서는 실제로 장년층이 제작해 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 보다도 날것의 편집을 보여준다. 타조나 담배 연기 역시 ‘실제 같다’는 느낌을 주기 보다는 생뚱맞은 이미지에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오히려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요즘의 영화들과 반대로 간다는 점에서 <킬링 로맨스>는 일부 관객의 눈에 띈 것이 아닌가 싶다.

 

 

[크기변환]광고.jpg

 

 

 

‘까도 빠도 인정합니다’ 관대한 팬덤


 

사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 ‘작은 영화’ 팬덤은 많았다. 작은 영화의 기준이 사실 모호하긴 하지만, 대중적인 문화 코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을 응원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팬들이 많아 팬덤까지 형성된 영화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중에서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을 연출한 변성현 감독은 이런 ‘작은 영화’ 팬덤 현상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불한당>이라는 영화는 공식 홍보 자료만 보면 흔하디흔한 조폭 영화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팬덤을 통해 영화 속 미묘한 로맨스 코드가 주목받으며 재상영의 기회를 얻었고, 작지만 큰 문화적 영향력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킬링 로맨스>는 좀 다르다. 영화의 좋은 면만을 강조하는 팬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팬덤의 주된 콘텐츠는 영화 별점을 비교하는 것이다. 1점을 준 관객의 코멘트와 10점을 준 관객의 코멘트를 나란히 두고 본다. 그것이 그들에게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는다. 양쪽 반응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팬덤’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도 형성되고 그것이 한국의 문화, 정치, 종교 등 거의 모든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이런 활동은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방향으로 자라왔다. 아무래도 팬덤 활동의 목적은 소속감을 느끼고 자아를 형성하는 것도 일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보통 팬덤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비판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렇다. 그런 감정은 비판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선한 영향력 발휘를 통한 비판으로부터의 회복이 되기도 하고, 많은 때는 나와 너로 구분하여 정치적 싸움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킬링 로맨스>의 비판 수용성은 그렇기 때문에 조금 흥미롭다. 이들은 어떤 노골적인 비판에도 타격을 받지 않는 것 같다. 배우와 감독 자체가 영화를 홍보할 때도 영화에 관한 기대를 낮추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렇게 영화를 ‘까는’ 홍보 방식은 자칫 잘못하면 영화의 평판을 심각하게 낮춰 버리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팬덤은 그런 영화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유쾌하게 영화를 감상한다.

 

 

[크기변환]타조.jpg

 

 

 

‘잇츠 귯~’ 그때 그 관객 문화의 재현


 

영화계의 팬덤 현상이라든가, 유쾌한 영화를 한 극장에서 시청하는 관객들이 서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이미 있던 일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에 <지구를 지켜라>, <왕의 남자>와 같은 영화들을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팬들의 모습을 신기해하는 듯한 기사들이 많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관객의 영화 관람 습관이 바뀌기 전을 생각해 보면, 극장에 빼곡히 모여 모두 같은 감정을 느끼는 그야말로 ‘영화적 체험’은 이미 흔하게 있었던 일이다. <킬링 로맨스>에 관한 관람평을 보면 ‘다 함께 웃었다’는 반응이 있다. 꼭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니라고 해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평가를 포기하고, 그저 영화에 모든 것을 맡긴 채 편안하게 감상했을 지도 모른다.

 

‘좋은 영화’에 대한 열망으로 매번 극장을 찾아가고 스크린 속 감독의 의도를 찾아내고 영화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한국 관객의 영화 감상 방식은 한국 영화의 발전에 좋은 비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영화만 계속해서 찾아다니는 것은 관객을 피로하게 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킬링 로맨스>는 그런 강박과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보다도 ‘괜찮은 영화’라는 수식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류나윤_컬쳐리스트.jpg

 

 

[류나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