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5.0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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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최근 들어 인상 깊에 읽었던 퀴어집이 있는가.

 

별로 없었던 것 같던 와중에 꽤 와닿았던 소설이 있어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첫 두 소설이 꽤나 강렬했고 재미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매료되어서 끝까지 단숨에 드르르 읽어 나간 것 같다.

 

알라딘에서 하고 있는 북펀딩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한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져서 책이 계속 출간된다고는 하는데, 나도 앞으로 더욱 꾸준히 살펴 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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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았으나 그렇다고 할 만한 경력도 돈도 없는 중년 여성들의 생활 투쟁기를 그린 '보험과 야쿠르트',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미나와 헤테로 여사친의 이야기를 그린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퀴어 퍼레이드에서 BDSM 깃발을 들고 온 같은 반 정인이와의 이야기기인 '다가가지 못하는', 긴 시간 소식이 없는 은영을 기다리는 나의 일상 이야기인 '여름 밤', 안개로 봉쇄된 도시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수리와 안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랑인 '소금의 맛', 1970년대 명동 레즈비언 정희와 영휘의 이야기 '늦여름 매미 만선'이 수록되어 있다.


근래에 와서는 한 작가의 소설집보다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모인 소설집을 부쩍 더 자주 읽는 것 같다. 소설집에 실린 다양한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다 마음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소설은 처음에 자리했던 작가 이유리의 <보험과 야쿠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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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인, 혜원은 오늘부로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었다.”

<보험과 야쿠르트>, 이유리.  


 

보험 아줌마인 ‘나’와 야쿠르트 아줌마인 ‘혜원’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중년 부부처럼 여름에는 한강 풀장에 놀러 가고, 가을에는 관악산에 올라 도시락을 까먹고, 겨울에는 여느 연인들처럼 목도리를 두르고 골목을 걷고, 봄에는 냉이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우리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접하게 되는 레즈비언들의 모습은 생각해 보니 좀 다 판타지스러웠던 것 같다. 흥행이 목적이어서 그런지 대개는 현실스러운 구석이란 그리 없었기도 했다.

 

중년 레즈비언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당장 그려지는 건 <<윤희에게>>나 <<캐롤>>처럼 아름다운 장면들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다르다는 생각을 <보험과 야쿠르트>를 읽으며 하게 된 것 같다. 생각해 보지 못했던 레즈비언 여성들의 단면을 한눈에 보여 주는 작품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도, 가진 돈도, 함께 먹고 입는 것들도. 그러나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긴 세월 동안 내가 혜원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며, 혜원 역시도 그럴 거라는 사실이다. 그거면 됐다.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바랄 수도 없다.”] - <보험과 야쿠르트>, 이유리.


그러면서도 그들이 나누고 있는 온기가 꽤 부럽기도 했다. 나이를 한두 살 먹게 됨에 따라 낡고 지친 마음을 서로 위로해 주는 두 여성의 모습이 매우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물론 당장의 내일과 내년을 어떻게 대비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저 그 두 여성이 서로를 신뢰하고 위로해 주는 모습을 볼 때는 그랬다. 적어도 지금은 사랑하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불안함을 배제하면서도 저렇게 안정적일 수 있는 사랑을 느껴 보았으면, 하고 꿈꾸기도 했던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 그 따뜻한 온기가 책장 너머로 전달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름밤



반면에 완전 다른 느낌을 줬던 소설은 작가 이주란의 <여름밤>이다.

 

한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두루 친하게 지내는 모습, 함께 밥을 지어 먹는 모습을 보면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다.은근히 내포되어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가 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에 더욱 중점을 두고자 한 소설 같았다.


그런데, 이런 이웃이 실제로 있나? 우선은 한편으로는 이런 이웃들과의 따뜻한 분위기 자체가 이제는 판타지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은영 씨와 주인공의 관계이다.

 

행선지도 말해 주지 않고 불쑥 떠나가 버리는 은영 씨를 바보같이 기다리는 주인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갔으면 간 것이지, 은영 씨의 방을 정갈하게 청소하며 은영 씨를 기다리는 것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주인공과 은영 씨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거나, 또는 불쑥 떠나도 다시 금방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을 은유한 것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 판타지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따뜻하고 포근한 내용이었지만, 이런 측면에서는 앞서 말한 <보험과 야쿠르트>와는 꽤 설정 측면에 있어 대조적이게 읽힌 소설이었다.


이외에도 인상 깊은 소설들이 꽤 실려 있던 소중한 소설집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쯤 읽어 보라고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추천 중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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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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