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23 전쟁 이야기 - 몬순

국립극단 <몬순>
글 입력 2023.04.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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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쟁 이야기, <몬순>


 

[국립극단]몬순_포스터.jpg

 

 

연극을 보기 전에도 전쟁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슬프고 암울한 전쟁 장면들이 펼쳐질 걸 예상했다. 하지만 <몬순>은 가장 동시대적인 전쟁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쓴 이소연 작가는 유튜브 생중계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생경하게 느껴져 <몬순>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몬순>은 정말 우리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구 어느 쪽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그 전쟁을 지구 다른 쪽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삶을 가로지르고 있는 전 지구적 전쟁, 그 폭력의 실체를 감당하기 위함일 터다. 그 누구도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그 누구도 그 폭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 [창작 공감: 작가] 전영지의 글 중

 

 

몬순이란, 모든 방향에서 모든 사람에게 불어오는 바람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몬순 그 자체인 것이다. 이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은 몬순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차미'라는 인물은 모두가 동경하는 게임 회사이자 무기 회사인 '몬순'에서 일한다. 그의 아들 '굴'은 '몬순'에서 만든 드론을 가지고 논다. '새벽'의 졸업 전시 제목은 '몬순'이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1.jpg


 

'제가 준비한 작품은 <몬순>입니다. ... <중략> ... 처음 제가 생각했던 전쟁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빗방울처럼요. 하지만 전쟁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정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일까? 그 아래에 있는 사람만이 전쟁을 실감하는 걸까?

 

그래서 제가 이번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전쟁입니다.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 않지만 내 몸과 모두의 몸, 사이사이를 휘몰아치는...'

 

- <몬순> 속 새벽의 대사

 

 

 

우리 모두 전쟁을 경험한다


 

실제로 나 또한 전쟁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전쟁을 경험해 보았다. 이 말은 즉 전쟁을 직접 치러본 적은 없지만 항상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 폭력성을 목격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단국가로서 모두 이 말을 더욱 실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어릴 때, 전쟁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다. 당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기사들이 자극적인 편이었고, 어린 나와 친구들은 그 기사들에 자주 현혹되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주말에 핵폭탄이 터진다는 찌라시를 전해 들었던 어린 나는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까지 탔던 상장들, 이런저런 작품들, 공부와 같은 내 노력들이 다 무용지물이 될 생각에 하나하나를 다 사진으로 찍어놓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광기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어린애가 얼마나 무섭고 소중한 것들이 잃기 싫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5.jpg

 

 

 

동시대를 감각하다


 

사실 이 <몬순>을 보기 전날 다른 연극 두 편을 관람했었다. 한 작품은 동시대성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옛날 일본 희곡 원작의 작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예 관객과 무대 사이 경계가 없는, 드라마 형식을 벗어난 실험적인 포스트 드라마 형태의 연극이었다. 그리고 이 <몬순>의 경우, 드라마 형태이지만 동시대성이 강하게 대두되는 작품이다. 세 작품을 모두 보고 난 후 내 솔직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어지럽다.

 

동시대성과 거리가 멀었던 그 일본 작품은 개인적으로 불편한 요소들이 많았다. 작품 속 모든 여성들이 극 중 배경인 집에 내방자로서 신세를 지고 들어오는, 수동적인 캐릭터로 나왔고 희화화되기 일쑤였다. 본가를 나와 얹혀사는 여성 캐릭터들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해가 잘 가지 난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굉장히 신파적인 요소가 존재했고, 그 장면 속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이입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봤던 작품의 경우 관객에게 엄청난 여지가 열려 있었다. 좌석도 없어 내 마음대로 앉거나 일어설 수 있고, 작품에 얼마나 참여할지도 개인의 자유이다. 이러한 형식 자체가 특이했고 관객에게 많은 선택권들이 있었기에 그 선택권들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몬순>의 경우, 극 중 관객의 뻔한 몰입을 깨는 장면들이 많았다. 새벽의 졸업 전시를 위한 전쟁 애니메이션 장면의 음향들, 종종 나왔던 작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영상들, 직접 등장하지 않고 굳이 영상으로 얼굴을 비추었던 몇몇 배우들... 등 관객의 완전한 몰입을 위해서 수정되어야 할 것 같은 씬들이 오히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연출된 듯했다.

 

따라서 느꼈던 것은 '동시대성에 몰입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동시대성을 사전에 검색하면 무려 4가지의 뜻이 나온다.

1. 주로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현재의 사회가 나타내는 특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반영하는 특성을 이르는 말.

2. 주로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작품들이 현재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을 공유하는 성질을 이르는 말.

3. 주로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현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정한 시기의 사회가 나타내는 특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공유하는 특성을 이르는 말.

4. 주로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작품들이 일정한 시기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을 공유하는 성질을 이르는 말.

 

하지만 결국 이 네 가지가 의미하는 바는 비슷하다. 한 사회가 공유하는 성격이나 특성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즉,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 곧 동시대성이다. <몬순> 속에는 이렇게 우리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사회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전쟁, 퀴어, 이민, 차별, 혐오, 폭력, 비대면 시대, 취업... 등 '전쟁 이야기'라고 떠올리면 상상하지 못할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 이야기'인 것이다.

 

 

 

<몬순>의 갈무리


 

이 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우중충한 조명과 빗소리가 가득 극장을 매운 채 극이 끝난다. 결말에 엄청난 희망도 절망도 없다. 그저 <몬순>이라는 하나의 바람을 일으키고, 관객들에게 우리가 처한 몬순을 보여주고, 몬순과 함께 떠나는 것이 이 극이 택한 마지막 장면인 것 같다. 나도 이 연극을 보고 별 희망도 절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전쟁을 한 번 더 느꼈고, 사회가 처한 여러 가지 현실들을 감각할 수 있었다. 흔한 전쟁 드라마에 존재할 법한 클리셰적인 장면이 터뜨리는 눈물도, 감동도 없었다.

 

하지만 <몬순>을 감각함으로써 생각하게 되었다. 2023년에 일어나고 있는 이 전쟁과 폭력들에 대해서 말이다. 몬순. 모순. 자음 하나 차이이다. 자음 하나 있고 없는 만큼 분명 뜻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우리의 전쟁은 어떻게 될까? 바람과 사라져도, 바람처럼 사라지지는 못할 것이다. 몬순이 모순을 부른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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