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몬순 [공연]

글 입력 2023.04.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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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몬순_포스터.jpg

 

 

전쟁 밖에서 보는 전쟁 이야기, 당신의 일상은 전쟁의 시간과 무관합니까?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창작신작 <몬순>을 4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다.

 

<몬순>은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작가]를 통해 이소연 작가가 집필한 희곡으로, 작년 한 해 동안 개발되어 올해 관객과 처음 만난다. 섬세한 인물 묘사가 강점인 이소연 작가는 근 미래 가상의 3개 국가에서 살아가는 9명의 인물을 설정하여 소속 국가도, 처한 상황도 다른 이들의 면면을 통해 전쟁이 평범한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계절풍을 뜻하는 단어 '몬순'은 비를 동반한 바람이다. 예외 없이 모두의 몸을 통과하고 흠뻑 적신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상에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주변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 지속되는 곳에도 파편처럼 스며든 전쟁의 그림자를 그린다.

 

 

 

# 보이지 않지만 늘 곁에 있는 바람, 몬순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4.jpg

 

 

강렬한 빨간색 건물들이 나를 반긴다. 서울역을 통과해 쭉 걸어가다 보니 보이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이러한 도심 속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극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오늘 내가 볼 연극은 <몬순>. 처음엔 몬순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이 연극에서 ‘몬순’이라는 단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살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생각나는 이 ‘몬순’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고자 글을 써 내려가보고자 한다.

 

여러분은 ‘몬순’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몬순’ 기후를 생각할 테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의 단어가 더 떠올랐다. 바로 ‘모순’이다. 모순이란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즉 맥락이 맞지 않는 상황 또는 말을 이야기한다. 연극 ‘몬순’은 전쟁의 ‘모순’을 보여주었다. 잔인하지만 희망이 가득하고, 가깝지만 먼 곳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갈등과 분노가 가득 차 있지만 그 안에 애정과 공감이 존재하는 모순. 그 모순의 모습을 연극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극 ‘몬순’은 등장인물들을 총 3개의 국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중 A국은 같이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대학생 네이지와 무기 회사 직원인 차미 그리고 그녀의 아들 굴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네이지는 전쟁 중인 타라 타트 출생으로, 가족들을 남겨두고 외딴 나라에 와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같이 홈스테이를 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에 대한 무서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난 후, 전쟁이 일어난 지역으로부터 떨어진다고 해서 완전히 전쟁과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더불어 그녀가 홈스테이하고 있는 곳은 무기 회사를 다니고 있는 멋있는 커리어 우먼 챠미의 집. 그녀는 전쟁에서 쓰이는 다양한 미사일 기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그 회사의 이름은 몬순. 극 중 배경인 나라에서 가장 크고 강대한 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삼성 반도체 같은 느낌이려나 생각했다.) 차미의 직업을 마주하게 된 네이지. 슬픔과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차미와 굴이 아무리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해도 전쟁 중인 나라의 국민인 네이지의 귀에는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둘의 오해는 차미의 아들인 ‘굴’을 통해 조금은 나아진다. 네이지는 굴에게 가끔씩 ‘유리 괴물’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리 괴물’은 온몸에 유리조각을 박고 무섭게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한 미신의 괴물이다. 걸어 다닐 때마다 유리조각이 튀고, 끔찍한 소리를 낸다는 유리 괴물. 차미와 네이지의 갈등으로 굴은 자신 스스로가 ‘유리 괴물’이라고 자책한다.

 

네이지와 차미는 전쟁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랐다. 네이지에겐 지켜야 할 게 많았고, 차미에겐 이겨내야 할 것이 많았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공통된 생각은 이것이다.

 

 
“굴은 유리 괴물이 아니야”
 

 

이것은 마치 전쟁의 피해와 참혹함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미래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쟁의 원인은 늘 다른 세대에 있는데 왜 그 결과와 피해는 미래 세대가 받아야 하는 걸까.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이 또한 다른 모순이다. 저지르는 사람 따로 피해 입는 사람 따로. 이 참담한 현실을 대체 언제까지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모순 자체가 모순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순이 아니기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B국에는 대학원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과 새벽이 졸업 전시를 계획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쟁 중인 나라 타트에서 온 교환학생, 코우쉬코지를 통해 전쟁에 관련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계획한다. 전쟁은 위에서 아래로 시작한다고 주장한 새벽. 그러나 전시를 기획하고 기획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든다. 특히 코우쉬코지와 이야기하며 전쟁이 단순히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쟁의 피해자는 구분할 수 없다.” ‘몬순’이라는 제목 아래에 전시를 개최한 새벽은 전쟁은 위와 아래, 아래에서 위와 같은 방향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바람, 몬순과 같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약 내일 갑자기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전쟁에 대해서 따질 수 없다. 왜 굳이 지금일까, 너무 이기적인 상황 아닐까. 이러한 의문들이 들겠지만 도대체 누가 그 질문에 대해서 응답을 해줄 것인가. 시작하는 사람은 있지만 시작하는 사람마저 잃는 것이 거대한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의 또 다른 모순이다.

 

 

[국립극단]몬순(2023)_홍보사진03.jpg

 

  

마지막으로 C국에선 동성 커플인 문과 리오 그리고 그들의 친구 홀키가 등장한다. 문과 리오는 퀴어 페스티벌에 훌륭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 갈등을 겪는다. 문도 네이지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인 나라 타트 출생이다. 그런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 그리고 전쟁 중인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폭행을 당한 전적이 있다.

 

그 후유증을 곱씹으며 벗어나고 싶었던 문과 그 후유증조차 기억하기 싫었던 리오의 갈등은 전쟁의 피해자가 당당하지 못하고 숨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전쟁의 기억을 숨긴다고 전쟁이라는 기억까지 숨겨질까. 아니다. 기억을 꺼내는 과정은 어렵지라도 난 그 기억을 당당히 내보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꺼번이 아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꺼내다 보면 이제 꺼낼 기억이 없어질 날이 다가올 것이다.

 

어렵지 않다. 몬순 속에 숨어 있는 모순을 통해 전쟁을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과 방향 그리고 자세를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그냥 서서히 부는 바람이라도 바람은 그냥 바람이기에 우리는 전쟁을 전쟁답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한다.

 

도망치지 말자! 말하기를 꺼리지도 말자! 부딪혀야 다시는 그 바람이 찾아오지 않지 않겠는가.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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