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꽃은 피고 소년은 달린다 - 클로즈

클로즈_루카스 돈트
글 입력 2023.04.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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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클로즈’는 정체성에 대한 세밀하고 치밀한 탐구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 ‘걸’의 감독인 ‘루카스 돈트’의 새로운 작품이다.

 

전작과 비슷하게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며 그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넣었다. 즉, 자신이 바라본 정체성과 타인에 의해 확립되는 정체성 사이의 균열이 청소년기 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주인공 ‘레오’를 통해 보여준다.

 

‘계절’, ‘생生’, ‘사死’와 같이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와 법칙은 ‘레오’의 주변에 맞닿아 있으며, 그 순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듯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점차 배워간다. 이런 의미로 ‘클로즈’는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한 편으로는 그 순리를 거역할 수 없기에 지나간 사람에 대한 아픈 사랑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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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로서 몰입을 할 수 있는 데에는 바로 섬세한 연기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은 감정을 숨기고 싶지만 숨길 수 없는, 어쩌면 아주 순수하며 투명한 존재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말 그대로 심정을 흩트려 놓는다. 영화에서 그 혼란스러움의 원인은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의 충돌로 발생한다.

 

‘레오’와 ‘레미’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둘 사이를 의심하는 타인의 시선이 많아지고 점점 멀어진다. ‘레오’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시선은 다르다. 정체성 확립이 안 될 시기에 놓인 소년에게 타인의 의견과 시선은 더 무겁고 강하다.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확고한 태도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부합하도록 태도를 변경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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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기부정을 위해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출 수도 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더 객관적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소년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같다. 그리고 살아남아 인정받기 위해 자기인지 와 타인의 인지 사이에서 발생한 균열을 무시한다.

 

‘레오’ 역시 그렇다. ‘레미’를 향한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반대로 ‘레미’의 행동을 의심한다. 그리고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레미’와 서서히 멀어진다.

 

그렇게 ‘레오’는 부정한다. 그 부정은 ‘레미’에 대한 마음일지, 단순히 ‘레미’와 예전처럼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일지 확신할 순 없지만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너무나도 가까운(close) 존재에게 오히려 마음을 닫아버린다(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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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와 법칙이 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태어난 모든 건 죽음을 맞는다는 자연의 법칙이다. ‘레오’의 집은 화훼농사를 짓는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또 다른 존재는 ‘꽃’이다. 계절이 돌아오면 꽃도 돌아온다. 자신의 손에 흙을 묻혀가며 땅을 고르고 모종을 심으며 꽃을 키워낸다.

 

‘레미’의 죽음을 들었을 때, 그리고 조산사인 ‘레미’의 어머니가 방금 태어난 아기를 든 모습을 봤을 때 또 한 번 ‘레오’는 자연의 순리를 배운다. 모든 존재의 어쩔 수 없음을. 그러니 부정하지 말고 자연이 그러하듯 감정에 솔직해지기를. 그렇게 미안함과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실컷 슬퍼한다.

 

부정하던 것을 인정하며 ‘레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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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계절이 돌아왔을 때 ‘레오’는 꽃밭을 뛰어간다. 같이 뛰던 ‘레미’는 없지만 혼자서 뛰는 그 모습이 더 의젓해 보인다. ‘레미’의 방과 같은 색상인 붉은색의 꽃들이 ‘레오’를 감싸고 있다. ‘클로즈’는 영상미 면에서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장면을 넘어서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들이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자연의 순리가 흐르는 계절 속, 떠나간 존재를 슬퍼하며 다시 태어난 붉은 꽃들이 ‘레오’를 꽉 끌어안는 느낌이다.

 

여느 때와 같이 꽃은 피고 소년은 달린다. 그리고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그러듯, 여느 때와 같이 혼돈은 우리를 감싼다. 혼돈 속에서 소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일까. 그래도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혼돈 속을 달려가는 소년의 몸부림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지나간 우정과 사랑에 아파하며 다음 꽃이 폈을 땐 더 의젓해져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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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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