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에서의 과학적 상상 - 미래과거시제 [도서]

글 입력 2023.04.1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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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밥을 먹을 때마다 즐겨보는 <알쓸인잡>에서 정부의 미래 계획에 관해 부름을 받는다는 SF 작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항상 궁금했다.

 

방대한 지식과 엄청난 상상력으로 공적인 일에도 관여하는 ‘배명훈’이라는 작가가 쓰는 작품은 어떨까. 그러한 호기심 덕분에 만나게 된 《미래과거시제》는 기대보다 훨씬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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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힌 영혼이 차마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에서 날아오고, 갑작스레 불시착한 우주선은 잠실의 하늘을 뒤덮는다.(최근 나오는 SF 작품들에는 유독 롯데타워가 자주 등장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은 아무래도 상상 속에서 다양하게 쓰이기에 참 좋은 듯하다.) 그리고 그런 우주선과 영혼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금의 우리와 다를 것은 크게 없지만 아는 것은 많이 다를 사람들. 우리보다 한계가 덜한 사람들.


하지만 전염병을 기점으로 위생을 지키기 위해 발음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포기하고 담백한 발음에만 익숙해진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보다 한계가 더 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한지’의 발음을 따라 읽어보다가, 담백한 발음으로만 연기를 하게 된다면 답답하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상상해보았다. 최근 유행했던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온갖 비속어를 빼보니, 지금만큼 재밌게 느껴졌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 재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미래는 다소 답답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래과거시제》가 꽤나 인상 깊다. 상당히 재밌게 봤던 영화 <컨택트>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였을까.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 역시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보는, 다리 3개의 외계인들이 등장한다. 언뜻 보면 까만 문어 같기도 하고, 영화 <스타워즈>에서 본 것도 같기도 한 그런 이미지의 외계인 말이다.


SF 작품 중에서는 유독 ‘시간’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다. 인간이 지닌 한계라서 그런 걸까. 시공간에 대한 과학적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테지만(태생적 문과생인 편이다), 분명 일그러진 시간이 가져오는 만남은 소설적으로도 가히 매력적이고 치명적이다.

 

시간을 잘못 계산해 마주친 사람과의 사랑, 한 명은 알지 못하는 그리움과 같은 감정은 너무나도 아련하기에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마저도 홀린 듯이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님, 제발 이 둘 좀 만나게 해주세요, 하며.

 

 

[크기변환]욕망.jpg



작가 노트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통찰력도 엄청났다. 공간과 욕망은 비례한다는 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현상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지라 공감도 갔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나와 닮은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H의 말이 생각났다.

 

소설 본문뿐만이 아니라 덧붙인 짧은 글에서도 놀라게 되는 포인트가 여럿 있었다.

 

 

[크기변환]퇴근길.jpg

 

 

너무 크지도 않은 책의 크지는 가방 속에 넣고 다니기에 꼬옥 적당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장편소설의 경우 서사가 끊기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지하철에서 집중해 읽기가 다소 부담스럽다.

 

그래서 《미래과거시제》와 같은 단편소설집을 주로 읽는데, 하루 종일 머리를 쓰고 난 뒤 현재와 동떨어진 상상을 하며 퇴근하자니 1시간이 걸리는 퇴근길도 실로 짧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이 지하철이 시간을 뒤틀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달린다면 내 집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몇시 몇 분일까, 요즘같이 불안정하고 시끌벅적한 시장에 손을 쓸 수 있는 로봇은 없을까, 하는 상상을 괜히 하게 되는 그런 소설집.

 

작가 ‘배명훈’의 미래는 어떤 빛을 띠고 있을지 호기심을 가져본다.

 

 

[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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