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시 -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예측 불가능한 흥겨움
글 입력 2023.04.1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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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의 시초가 영국이라니



'데이비드 호크니와 팝아트라니. 이건 무조건 봐야 해!

 

그런데 잠시만, 팝아트가 원래 미국 꺼 아니었나?'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시는 이러한 나의 무지한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브리티시 팝아트의 성장 배경이 된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사회 문화적으로 급변하며 활력이 넘치던 시절의 영국 런던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당시 영국의 청년들 사이에는 낙관주의 문화가 번성했고, 그 중 런던은 예술가, 음악가, 작가들이 한 데 모여 실험적인 창작을 선보이는 새로운 문화의 발상지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탄생한 영국의 팝아트는 광고, 패션, 대중 매체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대량 생산의 소비문화에 주목하였다. 젊은 세대들에게 친숙한 일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과감하고 재치 넘치는 작품들로 표현하였으며, 대표 예술가로는 데이비드 호크니, 리처드 해밀턴, 피터 블레이크 등이 있다.


팝아트의 시초는 다름 아닌 영국이며, 데이비드 호크니는 무려 10년이나 일찍 팝아트 스타일을 선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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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 전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중독성 있는 재즈 음악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마치 1960년대의 스윙잉 런던으로 시간 여행을 한 듯,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영국 팝아트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작품들을 보니, 단지 시각적 흥분을 넘어 내 안에 숨어있던 반골 기질도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듯했다.


영국의 예술은 그저 잿빛 감성을 머금은 작품으로 가득할 거란 나의 편견은 산산이 부서졌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채와 짓궂은 장난기가 섞인 도발적인 작품들로 가득했다. 영국의 팝아트는 강렬한 위용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눈으로 보는 재즈처럼 흥겨운 리듬감을 구현하고 있었다.

 

동시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전시회장은 1960년대 스윙잉 런던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팝아트의 또 다른 매력, 섹슈얼리티



팝아트와 섹슈얼리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실제로 섹슈얼리티는 팝아트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단지 성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관습적인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시켰다. 잡지, 영화, 광고에서 등장하는 성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인간의 욕망, 감정의 복잡성, 다양한 인간관계를 표현하고, 전통적인 성 관념에 반기를 들며 사람들의 욕망과 본능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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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잉글리시, '아이스캔디'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작품 곳곳에는 이러한 그의 성향이 묻어난다. 호크니의 초년작 대부분은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겪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담겨있다.

 

그러나 왕립예술학교에서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호크니는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작품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서일까, 호크니는 더욱 자신감 있고 대담하며 활력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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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와 피터 슐레진저. 이 둘은 연인이었다.


 


물음표를 띄우는 물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을 참 좋아했다. 1960년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이후부터 호크니는 물에 매료되어 수영장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반사된 물결은 호크니에게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호크니는 단지 물을 바라본 게 아닌 물 저편 너머의 무언가를 보았고, 아주 오랫동안 응시하며, 찰나가 영원해질 때까지 그림에 담아냈다.

 

 

"물은 반사하는 성질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저를 매료시키는 것 같아요. 물은 주변의 모든 것을 반사하고, 그 반사 속에서 일종의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

 

- 데이비드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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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부터 바닥까지 전체를 호크니의 작품으로 수영장 타일처럼 가득 채워놓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발을 내딛자마자 어디선가 락스 냄새라도 풍겨오는 듯 코가 뻥 뚫리는 시원함이 마구 요동쳤다. 수영장에 대한 호크니의 기억이 나에게도 되살아나듯, 그가 느꼈을 감각이 어렴풋이 전해져왔다.


물은 참 섬세하다. 단지 예측 불가능한 잔물결의 파동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는 그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그토록 섬세한 물을 묘사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은, 물 만큼이나 혹은 물보다도 더욱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호크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물에 매료된 까닭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물과 자신이 닮아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호크니는 그렇게 물에 멈추어 서서, 물에 비친 선명한 자신을 발견하며, 물과 하나가 되었다. 물처럼 투명하고 진실한 그의 그림은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남아 유영하며 내게도 물음표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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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일광욕(Sunbather)'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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