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건강한 자학 - 어쩌다 어른 [도서]

도서 <어쩌다 어른>을 향유하며
글 입력 2023.04.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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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한 우리들의 분투기

이래 봬도 꽤 진심이야 나도, 내 인생에

 

어느 누가 스스로를 '난 어른이야'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은 고통이고, 나는 그 고통을 겪을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어른이 되면 조금 덜 아프고, 웬만한 일들은 웃어넘길 줄 아는 '프로'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많은 순간 좌절하며, 아직도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일까?

 

 

 

건강한 자학은 삶이라는 여행의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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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고민들이 들어있다. 어른으로 나아가는 큰 여정 가운데 작은 고민들조차 없다면 앞에 놓인 무거운 바위들을 옮길 수 없다. 내가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작거나 크거나 고민 자체가 내 삶을 방해하는 바위가 아니냐고 말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고민은 삶의 길 위에서 날 멈춰 세우는 수많은 장애물 중 하나이다. 이 말에 숨은 나의 퍼즐을 찾았는가. 우리의 삶에는 고민이라는 작은 돌멩이에 비해 우리를 넘어지게 할 더 큰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서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지금 내가 너무 무서운 말로 겁을 주었다면 본격적으로 글을 적기 전에 사과를 하고 시작할까 한다. 이 삶은 힘들고 우리는 그것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그 말을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기보다 우리 같이 그 돌멩이들을 치울지, 던질지 같이 도서 <어쩌다 어른>을 감상하며 생각해 보자. 생각보다 답은 멀리 있지 않더라!

 

이영희 작가님의 에세이 <어쩌다 어른>을 읽었다. 놀랍게도 내 첫 에세이였다. 누군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동안 피해왔다. 남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까 혹은 이상적인 삶을 바라보다 내 삶의 색을 잃어버릴까 우려했다. 하지만 나의 첫 에세이 <어쩌다 어른>은 정말 건강한 생각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그 건강한 밑거름을 지금부터 공유해 보고 싶다.

 

 
“때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빌어먹을 세상, 욕을 해봐야 소용없고, 마음은 한없이 쪼그라들고, 이런 세상에 내 자리는 없을 거야, 누가 날 좋아하겠어, 난 아마 안 될 거야, 헤매던 시절. 그때, 그 안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 내 상황을 남 일 보듯 하기.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냉정하게 파헤쳐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기. 아마도 자학이었을 것이다.”
 

 

‘자학’이라는 단어가 내 심장을 쿡 하고 찔렀다. 가장 놀란 것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학과 내가 해왔던 자학이 비슷한 점을 가졌지만 동시에 방향이 달랐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까. <어쩌다 어른>에서 묘사하고 있는 자학의 또 다른 정의는 이러하다.“세상과 맞붙어 싸우기에는 힘이 모자란 이들의 한발 앞선 포기 선언이자, 내 기대를 너무 쉽게 배신해 버리는 이 세상에 대한 소심한 복수다.”

 

절절히 공감한다. 왜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인가. 내가 기대하는 바를 이룩할 수 없는가. 지금도 물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어렸을 땐 더 자주 이런 생각에 휩싸이곤 했다.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처한 이 상황에 대한 비난이 고스란히 나에게 향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자학으로 이어졌고, 이 습관은 나에게 자존감 하락이라는 사은품을 얹어주었다. (사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반강제로 넘겨주더라)

 

소심한 복수 끝에 존재하는 게 낮은 자존감이라.. 너무 절망적이지 않는가. 세상 앞에 포기를 외치고 저자가 말씀하셨듯 내 스스로가 모자란다고 광고하는 모습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달은 바가 있다. 자학을 시작한 이유. 그 첫 시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그 이유는 자학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고 내가 가장 힘들기 때문에 시작했다.

 

나에게 행복의 답은 분명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울지 않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나의 전부였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직접적으로” 가기에 자제하고 그 비난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자학이 큰 고문이 되는 것을 말이다.

 

이 시를 같이 읽어보자.


 

나도 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내가 나라서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아니고 싶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나라서.

내 몸으로 내 머리를 받치고 서 있는 나라서,

정말 도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리가 없다.

나도 안다.

 


이미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함.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슬픔의 눈이 아니면 어떨까? 위의 시처럼 내가 부족한 건, 내가 나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이니 난 자학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라는 마인드는 나를 우울한 자학의 길로 빠지지 않게 붙잡을 한 마디다. 불평과 불만으로 나와 주변을 울상 짓게 하는 자학이 아닌 난 부족하니까, 난 나라고 인정하는 순간 자학의 신세계가 열릴 것만 같다. 아직 신세계 자학을 맛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자학이 건강한 자학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안다.

 

더 이상 불평하고 우울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지금 우울한 건 내가 나라서. 내가 지금 슬픈 건 나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주문을 외워보자. 그 일을 아무나 할 수 없다. 오직 나만이 실행할 수 있는 건강한 자학. 그 건강한 자학 안에는 먹구름이 아닌 화창한 햇살과 맑은 구름이 기념품으로 마음속에 배달될 것이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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