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을 본다는 것과 그림을 읽는다는 것 - 도서 '내가 읽는 그림'

글 입력 2023.04.1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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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주제의 미술 전시회 포스터를 보면, 우리는 보통 친구에게 ‘같이 전시회 보러 가자’라고 말한다. SNS에서도 내가 전시를 보고 왔다고 쓰고, 작품을 봤다고 말한다. 동사 ‘보다’에는 ‘작품을 감상하다’라는 뜻이 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BGA 백그라운드아트웍스에서 나온 책의 제목은 《내가 읽는 그림》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그림을 읽는다’라는 문장은 잘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았을 때, 이들이 선택한 이 제목 안에는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의도가 잔뜩 숨어 있을 것이다.

 


내가 읽는 그림_평면표지(최종).jpg

 

 

 

읽기에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평생을 본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활용하며, 가장 큰 정보값을 가지고, 가장 큰 신뢰도를 얻는 감각이 바로 시각이다. 잠에 들지 않아도 잠시 눈을 감는 것만으로 우리는 수면과 비슷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말은 즉 시각이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자극이라는 뜻과 같다. 생물학적인 제약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보기 위해서 들여야 할 노력은 거의 없다. 우리가 보기 위한 물체가 따로 있다면, 그것을 보기 위해 시선을 돌려야 하겠지만 시선을 돌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앞에 있는 인지하지 않은 풍경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읽는 것은 어떨까? 사실 읽는 행위는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와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 인지를 담당하는 부위의 끊임없는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고차원적 행위이다. 읽기 위해서는 일단 보아야 하고, 우리가 본 물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표를 알아야 하고, 그 기표를 해석할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언어로 예를 들자면, 읽기 위해서는 글자를 보아야 하고, 그 글자가 가진 기표-기의 체계를 이해해야 하며, 그 체계가 담고 있는 뜻을 인지 영역에서 처리하여야 한다. 이 3단계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에 처리되는 행위가 읽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읽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너무 작고 큰 것과 같이 시각적인 불편함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상징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징체계까지는 이해했지만 배경지식이 부족해 인지 영역에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떨까?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언어를 읽어내는 행위보다 훨씬 어렵다. 저 3단계 이후 우리의 감각인 시각 경험을 다시 언어로 풀어내야 한다는 마지막 4단계의 고비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책 《내가 읽는 그림》은 그림 읽기 단계의 마지막, 그러니 4단계의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꽤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읽은 그림과 네가 읽은 그림



우리가 그림에 대한 감상을 말로 풀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그림을 해석하는 상징체계를 모르기 때문에, 나의 감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크다.그 다음으로는 내가 처음 그림을 보고 느낀 강렬한 감각이 언어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어느 정도의 상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나의 감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성립할 수 없는 표현이다. 감상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며, 틀릴 수 있는 것은 굳이 따지자면 ‘그림에 대한 설명(예를 들어, 그려진 연도가 잘못 표기되었다던가. 자각의 이름에 오탈자가 있다든가)’일 뿐이다.


《내가 읽는 그림》에는 총 24명의 사람이 각자 자신의 틀에 맞춰 그림을 읽어 낸 짧은 글이 121편 수록되어있다. 24명의 저자들은 우리가 전시회에서 보는 현학적인 한자어나 평론가들의 전문용어로 가득 찬 팸플릿의 텍스트 대신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기 삶의 경험에 빗댄 감상을 제시한다. 그러니 이 에세이들은 그림을 해석한 설명이 아니라, 그림을 읽어낸 감상의 영역이다. 

 

24명의 저자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읽는다. 그림 작품과 당시 작가의 상황에 대하여 집중하는 감상도 있고, 그림을 자신의 감정과 엮어 서술한 글도 있고, 그림에서 표현하는 가치를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교차시켜 서술하는 글도, 그림을 가족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편지에 동봉하듯 쓰인 감상도 있다. 약 300쪽을 채우는 감상은 결국 모두 감상자를 한 번 통과한 후 다시 조립되는 언어로 표현된 글이며, 이 글은 그림 작품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지 않는다. 


미술 평론가들이 사용하는 그림을 해석하는 체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우리가 그 체계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으로 우리의 감상이 틀렸고, 우리가 그림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림이 좋은 이유를 설명할 때 필요한 것은 나의 언어이고, 내가 읽어낸 그림이다. 


‘오늘,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즐기는 캐주얼한 미술 감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BGA 백그라운드아트웍스의 《내가 읽는 그림》은 그림 보기보다는 깊고, 전문 비평보다 가벼운 그림 읽기를 제시한다.  《내가 읽는 그림》에 수록된 121편의 글과 24명의 저자의 언어를 읽고 나면, 전문적 지식 대신 그림을 보고 사용할 나의 언어를 고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 그림을 보다 보기보다 깊게 읽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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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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