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벚꽃 사진이 찍기 싫어 [문화 전반]

하지만 벚꽃은 죄가 없는걸
글 입력 2023.04.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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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였다.

 

벚꽃은 무슨 마법을 뿌리듯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벚꽃에 대한 수백수천개의 노래들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어쩌면 벚꽃은 정말 나무의 마법일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벚꽃이라는 예술을 무에서 유로 창조한다. 나뭇잎의 푸릇푸릇한 쨍쨍함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뭇잎은 일종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모양도 더 단순화된, 해체 같다고 할까.

 

벚꽃에 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거리에 부쩍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모두가 벚꽃 놀이에 흠뻑 취해 보였다. 벚꽃은 시리었던 겨울이 지나 핀 아름다운 끝맺음 마냥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생각이 복잡하고 바쁜 때에도 저절로 고개가 올라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벚꽃에 시선을 맞추니 말이다.

 

하나 벚꽃의 아름다움은 왜 이상하게 슬픔을 자아내는 걸까? 벚꽃 노래들은 특유의 서글픔이 깃들어 있다. 이건 아름다움에 눈이 머는 인간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을 아무리 예찬해도, 그 어느 것도 결코 영원한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이란 본질이자 아름다움에 대한 성질이 벚꽃의 순수함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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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죄가 없다. 하지만 벚꽃을 보고 슬퍼지는 나를 보며, 내가 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벚꽃은 새 학기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다. 3월 말, 벚꽃이 필 때면 꼭 한 달 남짓한 새로운 환경을 적응한 나에게 찾아온 깜짝 선물같이 느껴지곤 했다. 친구가 없을 때는 같이 벚꽃 사진 찍자면서 말을 건넬 수 있었고,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함께 사진 찍으며 친해지곤 했다.

 

3월의 의식처럼 매년 찍는 벚꽃 앞 반 단체 사진도 잊을 수 없다. 벚꽃을 따면 안 된다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벚꽃을 찾아 머리에 꽂고 헤벌쭉 한 채로 사진 찍던 내가 생생하다.

 

하지만 성인이 되니, 학교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던 벚꽃 놀이라는 성스러운 의식은 사라졌다. 이제 친구들과 함께 즐기던 벚꽃 놀이는 시간을 내야 하는 일종의 행사로 변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이가 행사에 참여할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연례 행사가 폐지될 것 같은 이 위기 속에서, 난 벚꽃의 설렘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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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벚꽃 사진이 찍기 싫어졌다. 벚꽃을 볼 때마다 나를 슬프게 하는 벚꽃이 미웠다. 문득 벚꽃에게 이게 무슨 짓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 없는 벚꽃에게 괜히 투정 부렸던 것이다.

 

벚꽃은 작년에도 피고 올해도 폈듯이 내년에도 필 것이다. 벚꽃은 최선을 다해  벚꽃답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벚꽃에 핀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보며 그 생명력에 실감하면서, 괜한 유난을 떨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벚꽃이 죄가 없듯이, 그 누구도 벚꽃 앞에서 죄가 없다. 벚꽃이 피고 지듯이, 내 미운 마음도 언젠가는 시들 것이며 모두가 자연스럽게 지게 되어 있다.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아름다워 보일까? 지나간 과거가 꼭 미화되기 일쑤이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에 더 그리게 되는 것처럼.

 

예전에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어서 그리운 것이라고.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기억이라면, 과연 그리워할까? 이 극단적인 진리로 인간은 자극되고 행복해하고 아름다움에 눈이 먼 채 사는 것이 참, 이상하다.

 

P.S. 위 벚꽃 사진들은 모두 작년에 찍은 사진들이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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