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여행의 이유

여행은 일상의 부재
글 입력 2023.03.3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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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旅行).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타 국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일이다. 쳇바퀴를 굴리듯 지루한 일상의 연속에 여행은 반가운 손님이다.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다채로운 감정의 향연이 펼쳐지는 진귀한 경험이기도 하다.

 

필자는 일정을 미리 잡아두고 움직이는 게 편한 타입인데, 어느 관광지를 가서 어떤 걸 보고 어떤 걸 먹을지 정하는 과정이 그렇게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갈 곳을 미리 탐방하는 기분도 들고, 먹거리의 경우 식당을 미리 정하고 가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물론 우리 가족이 이번에 다녀온 여행은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이라 일일이 갈 곳을 정하지 않아도 됐다. 패키지여행은 주요 관광지를 알차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목적지는 대만이었고, 오랜만에 가는 해외여행이라 한껏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 탈 날을 기다렸다.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 약간의 걱정은 됐지만(수업 한 번을 빠져야 했기에) 걱정보다는 설렘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그렇게 우당탕탕 준비를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첫날의 숙소는 온천 호텔이었다. 저녁에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운영 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물에 들어가지 않는 건 후회될 것 같아 얼른 옷을 갈아입고 온천으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에 들어가니 피로했던 몸이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여행 전날 검도의 여파로 단단하게 뭉쳐있던 근육이 이완되는 효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온천욕 후 함께 나갔던 밤마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 모두가 같이 나갔던 건 아니지만, 호텔 근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약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가보니 가게들은 거의 다 문을 닫은 상태여서 결국 우리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편의점만큼 물건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라면 코너에는 종류가 아주 다양했다. 우리나라의 불닭볶음면, 신라면 등도 있어서 신기했다.

 

모든 글자가 한자 인 탓에 저절로 까막눈이 된 나와 우리 가족이 볼 수 있는 건 조그맣게 쓰여 있는 영어, 그리고 이미지뿐이었다. 그렇게 취향대로 먹을거리를 고른 뒤 본격적인 먹방을 시작했다. 아마 필자가 골랐던 건 우육탕면 종류였던 것 같은데 입맛에 아주 잘 맞아서 한국에 몇 봉지씩 사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제로 사 오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 면과 함께할 음료로는 맥주를 골랐다. 'TAIWAN BEER'라고 쓰인 맥주였는데,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게 궁합이 아주 좋았다. 한국의 맥주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색다른 라거의 맛이었다.

 

 

[크기변환][포맷변환]맥주&라면.jpg

   

[크기변환][포맷변환]예류지질공원.jpg

 

 

이번 여행에서는 유독 충격적인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건의 당사자가 모두 필자였다. 기암괴석이 가득한 예류지질공원에 갔던 여행 셋째 날. 하늘도 뿌옇고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이었다. 그 탓인지 미끄러운 부분이 조금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포토 스폿이 있다며 저쪽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는 아빠의 말씀에 누구보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라는 생각으로 나름 깜찍한 포즈로 사진을 찍은 뒤, 동생에게 자리를 비켜주려 할 때였다. 내리막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미끄러지는 느낌과 함께 아찔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바닥에 대차게 넘어지고 만 것이다.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마스크와 휴대폰은 물론, 신발 안까지 흙탕물이 들어와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이없는 타이밍에 웃음이 나온 건 예상도 못한 이 상황 때문이리라. 빠른 수습을 위해 화장실로 갈 때에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사건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는 것이다.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 세 분 중 한 분께서 휴지와 물티슈를 한 움큼 쥐여 주셨고, 화장실에서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께서 깨끗한 걸레를 빌려주셨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 분들이 없었더라면 빠르게 수습할 수 없었을 테다.

 

그 따뜻한 마음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훗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를 발견한다면 주저 없이 나서야겠다고 다짐하게끔 했다.

 

*

 

엉덩방아 사건이 끝인 줄 알았으나, 등골을 오싹하게 한 사건이 또 있다면 믿어지시는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입국하는 여행 마지막 날. 출국 심사 이후 비행기에 탑승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여권에 끼워 좌석 앞자리에 꽂아 뒀었다.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잠도 오지 않고, 이어폰을 꽂은 채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듣고 있었다. 기내식을 맛있게 먹은 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항공기에 짐을 챙긴 채 입국장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잊은 건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들 비행기에서 내려 본인 여권을 집어 드는 순간, 깨달았다. 서류 작성 이후 그 자리에 여권을 그대로 두고 왔다는 사실을. '나 이대로 대한민국에서 추방당하는 건가?', '혹시 여권이 거기 없으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뛰어간 그곳에는 우리의 순조로운 비행을 위해 노력해 주신 승무원 분들이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계셨다.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간 꼴이 되어 무척이나 죄송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탑승권까지 여권 사이에 끼워 놓고 오는 바람에 정확한 좌석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추후에 57A를 75A로 말했다는 것을 알고는 아차 싶었다) 그때 마침 우리 구역을 담당해 주셨던 승무원분께서 나를 알아보시고는 금방 찾아다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하마터면 무사히 입국하지 못할 뻔했던 사건이라 정말 식겁했다.

 

다음부터는 여권을 목숨처럼 소중히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기변환][포맷변환]마무리 여권사진.jpg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행이었지만 팔순을 맞이하신 우리 할머니, 사촌네와 함께한 여정이라 더욱 뜻깊었다. 타국에서 느꼈던 따뜻한 감정으로 인해,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여행이 될 것 같다.

 

 

 

김민지_컬쳐리스트.jpg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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