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삶을 지탱하는 것

글 입력 2023.03.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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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좋은 기회로’, ‘우연히’, ‘어쩌다보니’, ‘바라던대로’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몰라 다 적어보았지만 실은 전부 맞는 말이다.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아 내 몸과 정신의 추가 기울던 시기에 변화를 맞이하게 되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바쁜 도시의 일원이 되어보길 바라오긴 했지만 그게 지금이 될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3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나름 길기도 한 시간동안 생애 처음으로 집에서 나와 살아보게 되었다. 독립 아닌 독립. 낯선 천장을 올려다보며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 삶을 내가 온전히 감당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나 스스로 생존한 게 아니었구나. 당연한 사실인데, 마치 처음 안 것처럼 놀랐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 나와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에 읽었던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의 에세이 <랩 걸>이 떠오른다. 여성으로서, 또한 과학자로서 겪었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침체의 순간)마다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꿈과 깊은 우정, 그리고 사려 깊은 사랑이었다. 세상이 위아래로 뒤집힌 것 같은 순간에도 절망을 앞서는 ‘다음’과 ‘내일’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지향하는 인생의 가치, 그녀가 이해하고 동시에 그녀를 이해하는 가까운 사람들 덕분이었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내 주변으로는 온갖 낯선 것들 투성이고, 적응해야 하는 많은 상황 앞에서도 의연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점철되어 있을 때. 바로 지금 같은 순간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호프 자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나를 묵묵히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또 희망의 끈이 되어주는 작은 운과 기회들이 있다. 내가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면서 가장 황홀하게 느끼는 순간은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초봄 해질녘 노을이 체리색으로 물드는 것을 지켜보다 우연히 랜덤 재생으로 넘어간 음악이 너무나도 취향에 맞았을 때, 꼭 잊기 전에 찾아와 안부를 묻고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이 따뜻할 때, 스스로를 끌어안지 못하는 나 자신을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해줄 때, 언젠가 우연히 지나쳤던 그림이 갑자기 마음에 확 와닿아 심장이 두근거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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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어려운 일이 약간의 도움으로 그토록 쉬워진 것이다.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조건을 만나면

몸을 펼치고 원래 되려고 의도했던 그 존재가 마침내 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조각조각을 주워모으며 오늘날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선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자꾸만 불안하고 휘청거리던 것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서 완벽히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오만함을 벗어내자고 다짐한다.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런 나를 지탱하는 많은 마음과 사람과 순간에 진심으로 감사해야지. 모든 것을 다 알기보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작은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충만함정도는 누리며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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