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냥 그런' 사람 [사람]

글 입력 2023.03.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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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성실한 편은 못 되는지, 일기처럼 무언가를 꼬박 쓰는 일이 몸에 배어있진 않다. 기억력도 그닥이라 웬만한 일상의 일들은 바로바로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생활하는 순간이 더 많다. 그런 성향을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 휘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에는 대충 휘갈겨서라도 무언가를 남기거나 음식 사진을 찍듯 단순한 사건의 기록만이라도 남겨두려고 한다.

 

대부분은 사진과 간단한 메모, 아주 가끔 감정을 쏟아내야 할 것만 같은 순간들에 쓴 날 것의 글들 조금. 요즘은 여러 가지 SNS 플랫폼이며 수기 다이어리(3년째 한 권을 채우지 못해서 계속 쓰고 있는)며 기록할 곳들이 워낙 많아서, 나중에 그것들을 모두 모아보면 단편적이긴 하지만 지나온 시간의 군데군데를 기억할 정도의 양은 된다. 생각이 나면 가끔 그 기록을 들춰본다.


사실 이것들을 남길 땐 이런 대강의 기록이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키기나 할까 싶기도 하다. 또 무언가를 쓰는 일 자체가 쓰는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을 어떻게든 비추고 있을 수밖에 없고,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고 나면 꼭 후회를 하고 말아서(그 대상이 미래의 나일지라도) 특히 스스로에 대해서 남길 때에는 일부러 쓰는 사람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무색무취의 기록을 남기려고도 한다(잘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이 기록들 역시, 나라는 존재를 가늠케 하도록 하는 어떤 궤도를 이루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 때의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먹고, 좋아했는지. 사실의 건조한 나열들마저 지나고 보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하물며 감정의 기록들은 더욱 새삼스러웠다. 아마 그 계기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흘려보낼 수 있을 만한 마음들은 굳이 남겨두지 않아서인지 남아있는 것은 날카롭게 기쁘거나 슬프거나 생각에 깔려죽을 것 같거나 한 흔적과 그때의 사실들.


그리고 얼마 전 그 기록들을 꽤 예전의 것까지 거슬러 가서 들여다보다가 조금 특이한 점을 알아차렸다. 사실의 나열도 강렬한 감정의 파편도 아닌 의식의 흐름 같은 것들이 몇 개 되지는 않지만 1년 정도 텀을 두고 적혀 있었는데, 뜨뜻미지근한 기록치고 그것들은 꽤 선명히 서로 연결되어 어떤 자취를 이루고 또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기록인가 하면, 바로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한 것. 정확히는 글을 '좋아하는 것 같은' 애매모호한 마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조금 뭉뚱그려 이야기해볼까 한다.

 

 

[크기변환] paper-g151b04768_1920.jpg

  

 

기억이 또렷하게 있은 후로부턴 글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놀 거리가 적었던 시절에 책과 만화에 파묻혀 유년기를 보내면서, 글과의 접점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즐거움들을 많이 알아버리기도 했고,이렇다 할 취향도 인풋도 없어 어느 순간부터 감히 떳떳이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해낼 수 있는 일이 꼭 같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는 그나마 손에 꼽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어디 내놓기엔 정말 초라한 수준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너무 한정적이고, 얕고, 쉽게 흩어지는 나의 문장들이 부끄러웠다. 삶을 생경하게 하는 감각과 그 매개들을 너무 잘 흘려보냈고, 감성은 투박했고, 당장의 내일이 급했다. 내 뭉툭함이 싫었다. 

 

하지만 이런 부정 속에서도 계속 뭔가를 읽고 쓰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 근질거리는 날들은 주기적으로 꼭 찾아왔다. 꼭 쓰지 않더라도, 내 직관을 정확하게 옮겨놓은 문장들을 자꾸 찾게 되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글 자체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단 이 직관들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싶다는 느낌에 가까웠는데,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버겁고 벅찬 감정이 자주 찾아드는 건 일종의 천성이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꽉 들어찬 생각과 감정을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마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했다. 글을 기능적으로만 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글을 통해 꼬불거리는 마음의 시작이 어디인가는 대충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위로로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반복해서 찾아오는 이런 확인이 무서웠다. 이런 미적지근한 마음이, 겨우 딱 이 정도의 온도가 내 선호의 한 극단이라면 어떡하지. 세상에는 무언가를 위해 자기를 활활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의 반짝임이 가득한데, 다들 꿈을 좇으라는데, 심장이 뛰는 무언가를 가지는 일마저 일종의 경쟁력 같은 이곳에서 처음부터 내 동력원에 하자가 있는 거라면 어떡하지. 나는 너무 미지근한 것 같다, 근데 어느 정도 좋은 것 같긴 하다, 글을 찾게 되긴 하는데 다른 재밌는 일도 너무 많다, 그래도 글이 주는 해방감은 조금 다른 듯도 하다, 하지만 나는 시시한 문장밖에 쓸 줄을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쓰고 싶다…. 참 오래도록 혼란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또렷해진 생각이 하나 있다. 결국은 에디터 지원을 하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게 되기까지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준 그 생각. 그것은 '그냥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마음을 태워서 얻을 수 있는 온도 자체가 그닥 높지는 못한 사람이라는 것, 세상엔 그런 미지근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그건 어떤 하자나 부족함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실이라는 것. 습관처럼 따라붙는 무기력을 겨우 떼어내고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리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유의미한 온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 이것을 인정하는 과정이 참 길고 지난했다. 사실 지금도 큰 확신은 없다. 하지만 혼란스러워 하며 아무런 발걸음도 내딛지 못하던 때와는 달리 그저 내가 가진 은근한 잔불같은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토록 오래 고민하면서도 글을 완전히 놓지는 못했던 것처럼, 나는 은은한 열기를 품은 대신 끈끈한 점도를 가졌다. 얕더라도 긴 호흡을 쉴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일이 아닐까 하고, 시시한 사람 나름의 재미를 담아 문장을 쓰고 있다. 그러니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찹찹함의 동지들에게 산뜻하게 제안해본다. 그 찹찹함은 생각보다 꽤 쓸 만한 자원이다. 뜨겁지 않다는 것이 곧 아무런 지향도 방향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라. 그것이 무슨 일이 되었든.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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