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 속 ‘진실’과 ‘진심’에 귀를 기울인다면 –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사소한 것도 사소하게 보지 않는 귀한 마음이야”
글 입력 2023.03.2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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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 앞에 쏟아진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더욱 자극적으로 포장된 그 이야기들은 때론 논란이나 스캔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한 순간에 엄청난 의심과 분노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하루가 멀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이야기들 속에 그 이야기들의 ‘진실’을 끝까지 따라 가기란 너무 벅차다.

 

그렇게 진실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너무 쉽게 밀려나고, 한때 우리를 사로잡았던 이야기들도 막연한 적대감과 거부감만 남긴 채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는 무겁고 때론 무섭기도 한 진실보다는, 쉽고 편하게 ‘믿고 싶은 진실’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도 그렇게 ‘믿고 싶은 진실’과 ‘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린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미지]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_포스터.jpg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 속 ‘진실’과 ‘진심’에 귀를 기울인다면


 

셰익스피어 사후 약 200년이 흐른 18세기 영국, 셰익스피어의 미공개 유작과 그의 유품들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허술하게 위조된 유물들이었음에도 대중들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전문가들 역시 이에 열광했고, 그 유물들을 사람들 앞에 내놓은 ‘윌리엄 사무엘 아일랜드’는 단숨에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 허술한 거짓말에 속을 수 있었을까?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은 실제로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위작 관련 사기극을 모티브로,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차근차근 찾아간다.

 

 

01. [2023 뮤지컬 윌리엄과윌리엄의윌리엄들]_어떤 재판_원종환(사무엘), 김지철(H), 임규형(헨리).jpg

 

 

극은 윌리엄 사무엘 아일랜드가 공개한 셰익스피어의 미공개 유작 ‘보르티게른’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재판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재판을 주도하는 판사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무엘도, 정작 진실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미지의 신사 ‘H’에게 셰익스피어의 문건들을 건네 받았다는 사무엘의 아들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만이 오랜 망설임 끝에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사무엘은 헨리에게 오랫동안 반복해왔던 말을 이번에도 꺼내 놓는다.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숨만 쉬면 돼”


 

사무엘을 포함한 누군가의 눈에는 작고 쓸모 없는 것들이 헨리에게는 반짝이는 이야기들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헨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 놓을 때마다, 그는 ‘문제아’ 취급을 받고 ‘쓸모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혼날 뿐이었다.

 

그런 헨리의 이야기를 들어준 유일한 사람은 미지의 신사 ‘H씨’였다. 그는 헨리의 상상에 동참하며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헨리의 마음을 이해해준다.

 

 

06. [2023 뮤지컬 윌리엄과윌리엄의윌리엄들]_10장 中_주민진(H), 황순종(헨리).jpg


 

"헨리,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사소한 것도 사소하게 보지 않는 귀한 마음이야"

 

 

극 중 헨리가 H씨와 함께하며 자신의 상상을 마음껏 펼치는 장면은 헨리가 그동안 이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했을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결국 헨리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세계와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사무엘이 원하는 것은 헨리가 원하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그는 헨리가 품은 진실이 무엇이든 또 헨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L(엘)이 하나 빠진 윌리엄’의 불운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열광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다 읽어버린 책처럼 그저 그런 인생은 싫어, 난 항상 이런 순간을 꿈꿨어.

모두가 나를 알고 환호하는 순간. 다 잃어버릴 순 없어.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아.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것만 생각하면 돼.

아무것도 모르는 그때로 돌아갈 순 없어."

 

 

어쩌면 사무엘이 가지는 이러한 욕망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들이 모두 멋지고 휘황찬란한 영웅담이나 모험담이기를, 적어도 그 속에서만큼은 우리가 반짝이는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 개개인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소하고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며 그리 주목할 만하지 않은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더욱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요즘, 너무 많은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정작 우리 자신의 이야기는 더욱 희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보다는, 점점 더 믿고 싶은 것들만을 믿으며 거짓으로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더 꾸미고 포장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대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수많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제대로 마주하고 있을까?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속, 윌리엄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실 그 자체보다는 흥밋거리가 되는 소식들에 더 관심을 가졌던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일이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게임이나 스포츠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휩쓸리거나 ‘믿고 싶은 이야기’로 진실을 포장하기 보다는, 이야기 뒤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이야기가 지닌 ‘진실’과 그 속의 ‘진심’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04. [2023 뮤지컬 윌리엄과윌리엄의윌리엄들]_9장 中_원종환(사무엘), 임규형(헨리).jpg

 

 

극 중 헨리의 거짓말을 어떠한 말로도 정당화 할 순 없지만, 그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한 아들의 여리고 어린 거짓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희대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에는, 누군가의 진실에도, 누군가의 진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사소하고 투박하더라도 우리 각자가 지닌 진실에도, 진심에도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서로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우리 스스로가 때론 삶에 직접 부딪히고 그것과 화해하며, 그 속에서 발견한 것들로 조금씩 채워나간 우리 개개인만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사소하고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우리만의 진심과 가치가 담겨있다. 그렇기에 우리 각자가 지닌 이야기는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고 각자의 색깔로 반짝인다.

 

결국 있는 그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마주보게 된 헨리처럼 우리 자신 안의 이야기에도,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도 눈 돌리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태도와 작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H씨’의 목소리보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진심’과 우리 안의 ‘진실’에 더욱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저 ‘믿고 싶고’ ‘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우리 자신만의 이야기를 소중히 꺼내 놓을 수 있기를 바라며, 드디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한 헨리의 고백을 우리 앞에도 놓아 둔다.


 

"나조차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나의 목소린 점점 사라질 거야.

이렇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느껴져.

내 안에 숨쉬는 작고도 조용한 이야기들이 말을 걸어와.

삶이란 한 권의 책을 쓰는 일. 나만의 이야길 써내려 가는 일. (…)

내 안의 수많은 얘기들, 그것을 속이고 위대한 작가를 흉내 내며

내 것이라 믿었던 얘기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냐.

‘버려진 것들과 얘기하는 헨리’, 날 바보 같다 해도

 ‘보잘것없는 얘길 쓰는 헨리’, 쓸모 없다 해도.

그래도 괜찮아 이게 나니까. 있는 모습 그대로도 아름다울지 몰라.

난 그냥 그대로 그저 숨만 쉬면 돼. 있는 그대로 내가 가진 얘길 해."

 

 

 

김효중 PRESS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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