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레를 통한 솔직한 감‘정’ - 코리아 이모션 ‘정(情)’ [공연]

가장 한국적인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情)’
글 입력 2023.03.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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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다녀온 공연들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유명한 출연진이 나오거나 내가 좋아하는 무대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자주 보는 유튜브 속에도 나의 관심사만이 떠있고, sns에는 콘서트나 페스티벌 광고가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장르 공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관심사의 비중 차이로 나도 모르게 공연 편식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만약 발레를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다면 당연히 관람했겠지만, 내가 좀 더 관심이 가는 공연들이 선택지에 함께 놓여있었기에, 그 핑계로 발레와 같은 다른 예술 공연들을 미루고만 있었던 것이다. 만약 콘서트 VS 발레 중 고르라는 문제가 있었다면 아마 나는 95%의 확률로 콘서트를 고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번에는 그 나머지 5%의 확률이, 나에게 공연 편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바로 <코리아 이모션 ‘정(情)’> 발레 공연이었다.


발레 공연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 문외한이었던 내가 발레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자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발레 공연이 있는 날 다른 공연장에서는 한 가수의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솔직히 두 공연 중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콘서트와 페스티벌 역시 처음에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점점 경험을 쌓아가며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얻어 갈 수 있었다. 발레 역시 시작은 쉽지 않더라도 나에게 신선한 경험과 배움의 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발레 공연을 신청하고 공연장을 향했다.

 

 

2021( Korea Emotion 2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64).jpg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아 이모션 ‘정(情)’은 한국의 색으로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국악과 현대음악, 현대무용과 발레 그리고 한복 의상까지 예술 융합의 장이었으며, 한국인의 감정을 몸으로 녹여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코리아 이모션 ‘정(情)’은 총 3일간 국립극장에서 펼쳐졌다. 이 발레 작품은 2021년 대한민국발레축제 공식 초청작 <트리플 빌 Triple Bill>로 초연한 작품으로, 유니버설발레단 유병헌 예술 감독의 안무작이다. 다른 발레 공연에 비해 비교적 짧은 75분 구성이었지만, 발레 공연 입문자인 나에게 충분히 알찼고,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작품 속 프로그램은 크게 9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1. 동해 랩소디 Rhapsody of the East Sea - 앙상블 시나위

- 8 커플의 무용수들이 함께 추는 군무

2. 달빛 유희 Dancing Moonlight - 앙상블 시나위

- 여성 4인무 (Pas du Quatre)

3. 찬비가 Cold Rain - 앙상블 시나위

- 남성 4인무 (Pas du Quatre)

4. 다솜 Ⅰ Dasome Ⅰ - 피터 쉰들러 (Tristesse D` Amour)

- 여성 2인무(Pas du deux)

5. 다솜 Ⅱ Dasome Ⅱ - 피터 쉰들러 (Prelude)

- 남성 2인무(Pas du deux)

6. 미리내길 Mirinaegil - 지평권

- 2인무(Pas du deux)

7. 비연 Bee Yeon - 지평권

- 4 커플의 무용수들이 함께 추는 군무

8. 달빛 영 Moonlight Young - 지평권

- 2인무(Pas du deux)

9. 강원, 정선 아리랑 Arirang - 지평권

- 12 커플의 무용수들이 함께 추는 군무


이처럼 9개의 프로그램 속에 ‘한국인의 흥과 모녀 자매간의 정, 형제간의 정, 부부간의 정, 남녀 간의 정’을 표현하며 무대를 꾸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情)’의 표현 방식이다. <동해 랩소디>에서는 반갑고 친근한 의미의 정을, <다솜 Ⅰ, Ⅱ>에서는 슬프고도 서정적인 정을, <미리내길, 달빛 영>에서는 죽은 남편 혹은 아내에 대한 그리운 정을 표현했다. 또한 <비연>에서는 애절한 사랑을 담은 정을 연기했다.

 

모두 ‘정(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인물과 상황에 따라 정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여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2021( Korea Emotion 1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49).jpg

 

 

발레는 인물 간의 대사 없이 오로지 음악과 무용수들의 표정, 몸짓, 의상, 무대 연출과 같은 요소들에 집중하며 감상해야 한다. 나는 발레 관람 경험이 거의 없기에, 행여나 감상 포인트를 놓치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됐다. 그러나 공연은 생각보다 스토리텔링이 잘되고 친절했으며, 덕분에 공연이 주는 울림과 감정에 푹 빠져버렸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미리내길>과 <달빛 영>에서 죽은 배우자를 그리워하며 연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텅 빈 무대에 혼자 앉아있는 무용수에게 제법 가벼운 발끝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무용수가 있었다. 그 둘은 행복과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긴 하지만 그 사이에 묘한 슬픔과 애절함이 담겨있었다.

 

둘이 함께 호흡은 하지만 분명 어긋나는 부분도 곳곳에 있었다. 현실에 남아 있는 이와 죽음의 영혼이 된 이가 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손끝이라도 닿기를 바라는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애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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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들의 연기 외에도 특별한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한복의 아름다운 색이 담겨 하늘하늘하게 휘날리는 의상과 국악, 성악, 클래식이 모두 공존하는 음악이 발레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무대 양옆과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자연의 풍경이 프로그램별로 바뀌면서, 좀 더 몰입하고 색채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채춤과 같이 전통적인 요소를 적용해 만든 안무 역시 눈을 즐겁게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아 이모션 ‘정(情)’은 한국인이라면 으쓱하고 자랑할 만한 가장 한국적인 발레였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공연이었다.


이번 발레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어쩌면 내 머릿속 알고리즘은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문화 예술을 존중하고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계속 찾고 있는 무대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모든 문화 경험을 누릴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무대를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혀가고자 다짐해 본다.

 

 

 

에디터 명함.jpg

 

 

[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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