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처음 본 발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닮아있었다 - 유니버설발레단 코리아 이모션

그래, 발레는 '자연물'과 같았다.
글 입력 2023.03.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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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지인은 유독 발레를 좋아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닌 사랑이었다. 예술고등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던 그 지인은 입시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발레 학원을 찾아갔고, 직접 토슈즈를 신기 시작했다. 그 지인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발레에 대해 갑작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매번 발레학원에 간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지인 덕분에 나는 도대체 발레가 왜 그렇게 좋은지에 대한 의문으로 인터넷에서 몇 개의 발레 영상을 찾아보았다.


물론, 영상을 본다고 해도 나와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딱히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아트인사이트 덕분에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하며 과거와 비교했을 때 나의 견문이 많이 넓어졌지만, 그전에는 옹이구멍보다도 좁았다. 어째서 영상 속의 사람들은 저렇게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화장을 하고 몸에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인지, 어째서 연습이라고 하면서 아주 느리게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인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이 영상 속 발레 동작들을 보며 나는 어떤 감상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어렸던 나는 그렇게 의문만 가득 품은 채 영상을 껐고, 그렇게 발레에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그로부터 수 년 뒤, 나는 아트인사이트를 만났다. 아트인사이트에서 많은 문화초대를 받으며 가장 많이 배운 것 중 하나는 '편견을 부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재미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분야를 보고 인생에서 가장 크게 감명받을 때도 있었고, 분명히 내가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던 분야를 보고 나와는 결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유명하다고 다가 아니고, 유명하지 않다고 향유할 때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이번 '유니버설발레단 - 코리아 이모션'에 함께하게 된 것도 그러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전 내가 영상을 보며 느꼈던 발레와 실제로 경험하는 발레는 분명 다른 느낌일 수도 있다고,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나의 견문을 넓히며 발레에 대해 깊게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자고. 발레와 코리아라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발레는 굉장히 서양의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한국의 것과 엮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코리아 이모션은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진행되었다. 뮤지컬에 미쳐살던 때가 있기 때문에 극장에서 꽤나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2023 정기공연 코리아이모션 포스터.jpg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예상이 들어맞았다. 나는 유니버설발레단을 관람한 그날, 발레라는 분야에 대해 완전히 매료되었다.


발레를 직접 보기 전, 가장 내가 익숙하지 않아 하면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낀 부분은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이나 연극을 즐겨보고, 소설과 시집을 즐겨읽는 나는 '문장'이 갖고 있는 힘을 알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문장들은 내 머릿속을 풍부하게 해주고, 공연이 끝나면 그 문장들을 곱씹으며 여운을 즐긴다. 그렇다면 '말' 없이 바라보는 발레는 도대체 어떻게 즐겨야 한단 말인가?


그래, 발레는 '자연물'과 같았다. 마치 피아노의 선율처럼 무대 위에서 한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는 무용수들을 보며 나는 순식간에 그 속에 빨려 들어갔다. 한복의 풍성함은 무용수들의 손짓 한 번, 몸짓 한 번에 꽃처럼 피어올랐고, 아름다운 음악들 속에서 즐겁게 뛰노는 무용수들을 보며 나는 홀로 여행하던 때를 떠올렸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여행 동료가 없는 홀로 여행.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스케줄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아도 된다.

 

발레 또한 굳이 공연 속의 이야기를 애써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내가 지식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저들의 세밀한 감정 표현을 읽으려 눈을 굴리며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장을 곱씹으며 그 의미를 유추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물결을, 새가 날아다니는 곳에서는 그 날갯짓을,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그 풀잎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벅차올랐다.


 

2021( Korea Emotion 2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64).jpg

 

 

한국의 전통을 살린 배경음악과 함께 무대의 각 사이드는 병풍처럼 꾸며져 있었고, 그 배경은 은하수와 산맥 등 그 자연의 웅장함을 잔뜩 살릴 수 있도록 공들여 준비된 것이 느껴졌다.


푸른빛을 띄던 여성 무용수의 한복과 흰색의 남성 무용수의 한복을 보며 마치 시원하게 흐르는 파도와 한 마리의 흰 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공연의 시작을 알렸던 '동해 랩소디 - 앙상블 시나위'에서는 노을빛 속에서 시원하게 파도치는 물결을 즐기며 뛰어노는 흰 학들을 떠올렸다.


'달빛 유희 - 앙상블 시나위’에서는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서 네 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무용을 했는데, 마치 그 모습이 하늘에 수놓아진 각각의 은하수들이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자신의 친우들과 함께 아름다운 밤을 즐기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찬비가 - 앙상블 시나위'에서는 네 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부채를 활용하여 각각의 비애를 표현했는데, 서브컬처에 익숙한 나에게는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이 각각 사모하는 여성들을 그리워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짧은 순간 수많은 로맨틱한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그때 무용수가 들고 있던 부채마다 그려진 식물이 달랐으니 그 부채가 뜻하는 바도 전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알아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일었다.

 

 

2021( Korea Emotion 1 ) - ⓒ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ngjin Kim  (49).jpg

 


나는 지식이 없으니 발레를 다른 이들보다 못하면 못했지 자세히 즐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거창하게 공연을 소개해 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내 머리가 따라가주지 못한다. 아마 발레에 대해 박학다식한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터무니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편견을 깨부수며 진심으로 발레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전, 기쁜 표정으로 항상 발레학원을 찾아갔던 그 지인은 이 발레의 아름다움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 약간의 부러움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를 정도다. 하지만 과거에는 몰랐으니, 지금부터 알아가면 된다. 집에 와서 발레에 대한 것을 잔뜩 검색해 보며 앞으로 내가 알아갈 발레의 매력에 설레는 마음을 감싸 안았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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