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서, 무대 [문화 전반]

무대와 공연예술의 매력
글 입력 2023.03.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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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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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소개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고민도 잠시 단번에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객석에서 발견됩니다!” 이것은 나의 소망이자, 자기소개다. ‘발견’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낸 경우에 사용되는 표현이다. 나는 실제로 자주 공연장에 놀러 간다. 공연예술을 관람하는 것이 취미다. 그렇다면 ‘목격’이라고 하면 될 텐데, 왜 나는 '발견'되며 '발견'되고 싶을까. 그건 공연예술의 특성 때문이다. 같은 내용을 올려도 매 순간이 다른 공연예술처럼, 나는 매 순간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다. 공연을 본 이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르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자기소개 글은 나의 확언인 셈이다.


나는 무대를 밟아도 보고, 만들어도 보고, 객석에 앉아 보기도 했다. 나에게 무대는 매력적인 공간이며 공연은 가능성의 예술이다. 그런 공연예술이 벌어지는 무대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대를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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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무대에 선다는 것을 ‘무대를 밟는다’고 표현한다. 왜 ‘딛는다’나 ‘서다’가 아니라 ‘밟는다’일까. 무대는 땅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무대를 밟는다’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대라는 공간은 어디든 될 수 있다. 무대는 시공간적으로 제약이 있지만, 동시에 약속을 정하는 순간 어디든 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다. 무대의 시공간적 제약은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매력’과 ‘예술적 형식’이 된다. 


 

 

“공연을 본다는 건, 관객들의 심장 박동이 맞춰지는 일이야.” 



공연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무엇보다 관객과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아닐까. 공연을 본다는 행위는 나에게 무대 위 사람의 존재 방식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우리는 그의 숨소리와 대사, 비언어적·언어적 행동 등 모든 것에 경청하게 된다. 배우는 한 인물의 삶을 입고 무대를 밟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관객은 박수와 기립 등 비언어적·언어적 반응을 통해 배우에게 감상을 전달한다. 공연은 관객과 무대를 만드는 사람의 소통 행위이다.  


공연은 가능성을 심는 일이다. 다른 세계와 또 다른 삶을 ‘지금, 여기’에 내려놓는다. 무대라는 공간이 갖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대중 매체는 보고 듣는 자의 시청각만을 자극하지만, 무대는 오감을 자극한다. 무대예술은 관객과 무대를 만드는 자가 하나의 공간에 함께 있게 된다. 배우와 관객은 현재의 한순간을 나눠 갖는다. 우리가 나눠 갖는 이야기와 세계는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것들은 무대에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무대라는 공간에 이 이야기는 존재하지만, 이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세계다. 다시 말해 유일무이한 세계와 고유한 순간을 관람자와 공연을 만드는 자만이 공유한다.


공연을 본다는 건 필연적으로 다소 외로운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공연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태어남과 동시에 사라진다. 공연을 보는 매 순간은 만남의 순간이자 이별의 순간이다. 같은 작품을 봐도 각자가 본 때에 따라, 배우에 따라, 시즌에 따라, 공연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또 모두가 다른 맥락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감상도 해석도 비슷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무대 위 하나의 세계가 작동하면, 객석에는 수백 수천 개의 각기 다른 세계가 탄생한다. 


 

"공연을 본다는 건, 관객들의 심장 박동이 맞춰지는 일이야."

 

(연극 <마우스피스> 中)

 

 

연극 <마우스피스>에 나오는 대사이다. 극이 무엇이냐는 데클란의 질문에 리비는 아주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위와 같이 대답한다. 


하나의 장면에서 모두가 같은 것을 느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비슷한 감정의 결을 느낄 것이다. 평생 각자의 속도와 박자로 뛰는 심장이 하나의 리듬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비슷한 결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 우리는 왜인지 요원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면 덜 외로워지는 기분이다. 공연을 보면 그로부터 수백 수천 개의 세계가 파생된다. 그 고유한 세계의 수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우리는 공연을 통해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무대 위 세계를 통해 위로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무대



이호선 전문의는 행복은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머무를 때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연을 보는 순간만큼 나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 것 같다. 무대라는 공간은 나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안겨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충실히 느낀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다른 세계로 가 있는 동시에 공연을 보고 느끼는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런 점이 삶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공연을 영원히 기억하진 못한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어쩌면 가장 가성비가 나쁜 취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가성비를 따진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 나는 기꺼이 매 순간 이별해야하는 객석에 앉는다. 이별이 있다는 건, 만남이 있다는 뜻이니까. 공연을 통해 현재에 충실히 머물러 본 내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나는 이미 행복하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공연장에 간다. 객석에서 나를 발견한다면, 반갑게 인사해주길.

 

 


박하은.jpg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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