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풍속화 그림 한 점, 드라마 한 편 - 도서 '조선 미술관'

조선의 문화절정기 특별한 순간들
글 입력 2023.03.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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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조선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모든 분야에서 전기와는 또 다른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후기에 열린 것이다. 그 중 가장 주목할만한 지점은 중국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신선하고도 새로운 노력들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1392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국된 이래, 성리학적 유교질서를 국가의 기반이자 지배 질서로 삼았던 나라이다. 대국인 중국(명)을 섬기는 나라이기도 했다. 이러한 가치관은 조선 초 태종 때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잘 나타난다. 그 어떤 나라들보다 커다랗게 지도 한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배하던 사대부들의 이념과 신념이 어떠했는지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조선 후기,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조선 후기 사회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성리학 대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위한 ‘실학’이라는 학문에 주목하는 사대부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인 국학 연구가 발전하고 농업과 상공업 중심의 현실적인 개혁안들이 속속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문화와 예술에도 불어왔다.

 

경제적 지위와 의식 수준이 높아진 서민들 사이에서도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해학과 풍자를 통해 마음껏 사회를 비판했던 서민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익살스러운 판소리와 한글소설, 탈놀이와 같은 것들이 모두 이 시대의 전유물이다.


문화 자부심은 사람들 얼굴에 드러난다. 조선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문화 자부심은 풍속화 속 인물들의 여유롭고 때론 삶에 충실한 모습들에 그대로 녹아 있다. <조선미술관>은 더 이상 중국이 아닌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담아낸 화가 7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마치 익살스러운 재담꾼처럼 우리를 풍속화 속 그 시절, 그 순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그림 한 점, 드라마 한 편


 

한 폭의 그림 속 이야기를 요모조모 뜯어보다 보면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저자 탁현규의 재치 있으면서도 섬세한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림 한 점으로 드라마 한 편은 뚝딱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는 기녀의 모습과 새파랗게 어린 한량들 노는 판에 불려나와 불만 가득해 보이는 표정의 악사들, 여유롭게 소 등에 올라타 먼 곳을 쳐다보고 있는 선비의 시선 끝에 걸린 것이 한 쌍의 꾀꼬리라는 것을 알아챈다면 더 이상 풍속화를 그저 이름 모를 한 점의 그림만으로 여길 수는 없다. 그 시절의 생활과 감정,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어쩌면 그 시대의 한 조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했던 고전 미술에서 이런 재미를 발견하게 되다니. 슥슥 부드럽고 막힘 없이 읽히는 문장들도 그 재미에 한 몫 한다.


 


풍속화 속 세상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풍속화 속에서 우린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대로 그린 진경풍속의 주인공은 양반 혹은 평민이다. 소재를 평민들의 삶까지 넓히면서 풍속화는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완성하게 되었다.


<조선미술사> 속 풍속화들에는 투전, 투호놀이, 매사냥, 음주가무를 즐기고 때론 절 문앞에서 도롱이를 벗는 다양한 선비들의 생활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로 우리나라에 가장 유명한 화공을 꼽으라면 단연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단원 김홍도는 주로 평민들의 풍속에 주목했던 화공으로, 서민의 일상적인 모습을 소탈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하곤 했다. 기록에 따르면 생황과 비파 등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림 뿐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던 오늘날로 치면 예체능계 천재였던 듯 하다.


김홍도의 작품 속엔 서당에 가고, 씨름을 하며 때론 밭갈이를 하고 추수를 하는 서민들이 보인다. 이는 성리학 사회가 궁극으로 도달하려는 이상사회가 그림으로 표현된 것으로, 태평성대를 이룬 조선 군주에게 백성들의 평안한 삶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자료가 되기도 했다. 하루하루 노동에 충실한 삶으로 빛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린 건강하고 평화로웠던 17세기 조선사회의 모습과 분위기를 잠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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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마상청앵>에는 잠시 길을 가다 멈춰서서 버드나무 위 무언가를 응시하는 선비와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 쌍의 꾀꼬리를 발견할 수 있다. 선비와 아이의 두 눈엔 봄날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김홍도 본인으로 추정되는, 이 여유로움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선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화가 본인의 여유로운 심정이 이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에게까지 푸근히 전해져옴을 느낄 수 있다.


혜원 신윤복은 양반의 풍류와 남녀간의 애정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했던 뛰어난 화가다. 양반들의 놀이문화를 통해 문화 절정기의 호사스러움을 드러냈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섬세하고도 유려한 그림체 아래에서 탄생한 작품들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단아하고 아름다운 ‘동양의 미’를 간직한 미인들이다. 흔히 고전소설 속 묘사되는 ‘탐스러운 복숭아와 같은 미녀’, ‘달나라 항아님 같은 선녀’, ‘달덩이 같이 환한 얼굴’의 미녀들이 눈 앞에 그대로 재현된 듯 하다. 되도않는 처음 보는 브릿지 머리, 난해한 패션의 동양인이 ‘동양의 미’를 가진 신비로운 캐릭터라며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코웃음치던 나였지만, 어쩌면 서양인들이 느꼈고 또 표현하고 싶었던 동양만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미란 이런 느낌이었을까.


표정 또한 살아있는 듯 생생하고 섬세해서 무슨 감정이 담겨 있는지,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 자꾸만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흥미로웠던 점은 신윤복의 부친 또한 뛰어난 화원이었다는 점이다. 일재 신한평은 혜원 신윤복의 부친으로 이들 부자는 모두 화원이었다. 조선시대 중인 계층이 전문가 집단으로서 직업을 세습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부자의 재능이 범상치 않았음은 분명하다. 신한평은 무려 영조와 정조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데 참여하였던 당대의 일급 화원이었고, 조선시대 관료가 벼슬에서 물러나는 나이인 70이 넘어서도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신한평의 <이광사 진영>과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있자면 표현력이 뛰어난 신윤복의 재능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흥미롭다. 동시에 아버지를 뛰어넘는 표현력과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는 신윤복을 보며 ‘청출어람’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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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신윤복을 기방문화에 정통한, 기방 드라마의 연출가이자 감독이라고 평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신윤복은 인물 개개인의 심리 상태를 놓치지 않고 한 폭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미묘한 표정, 주고받는 시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까지. 신윤복의 작품들엔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원래 인생사도 드라마도 가장 재미있는게 남녀의 애정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가. 문화 절정기 한양의 기방 풍속이 그대로 담겨 있는 신윤복의 작품 속에서 우린 적나라하며 현실적인 수많은 삶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궁중기록화도 풍속화다


 

궁중기록화는 당대 사람들과 물건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풍속화로 바라볼 수 있다. 대부분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가장 중요한 그림으로, 임금이 등장하는 궁중기록화와 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첩이 여기에 속한다.


이전에 없었던 조선의 고유색 가득한 궁중기록화는 진경산수와 진경풍속의 원조인 겸재 정선에 의해 유래되었다. 정선이 숙종 기사첩을 담당하면서, 환원들의 전유물이었던 기록화에서도 혁신을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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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첩봉안도> 속에 그려진 한양 중부 징청방의 기로소가 오늘날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새삼 이 땅을 밟고 지나갔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나오는 글



생생하고도 흥미로웠던 엿보기를 마치며 이젠 미술관에서 나올 시간이다. 저자의 마지막 나오는 글과 함께 글을 이만 마친다.

 

*

 

우리가 몸을 단정히 하고 미술관, 박물관에 찾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눈앞의 작품과 마음올 교감하기 위해서다. 마음의 교감을 할 때는 침묵과 응시만 있으면 충분하다. 각종 AV 연출은 진정한 교감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오늘날 이런 미술관, 박물관 전시 상황에서 미술품, 특히 그림을 침묵과 응시만으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책이다. 책 속의 그림이 비록 원본은 아니지만 적당한 크기와 인쇄 품질이 뒷받침된다면 어두운 조명과 진열장 유리 반사로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려운 전시장보다도 오히려 나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책은 좋은 대체제가 된다.


- <조선미술관> 나오는 글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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