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선시대 속 주인공이 되어 로드무비 한 편 찍어본다면? - 도서 '조선 미술관'

조선 미술의 깊은 맛
글 입력 2023.03.2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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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나는 해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생각보다 많은 해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미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수묵화의 농담과 필선에서 마치 어떤 동양 사람들의 신비로운 영향력이 담겨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그 이유가 그저 단순히 우리가 기존에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처음 접하고 경험했을 때 그것이 더 생경하고 각별해 보이는 효과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우리가 서양의 화풍을 매혹적으로 바라보듯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은 조선 미술관은 읽고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이 책은 김홍도, 신윤복, 정선, 조영석, 김득신, 김희겸, 신한평 등의 당대의 7명의 천재적인 화가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17~18세기의 조선 문화의 절정기를 하나씩 풀어간다. 한국미술과 고미술계의 최고 해설가인 탁현규 저자의 해설을 따라서 그림 한 점 한 점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덧 조선 미술의 정수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탁현규 저자의 해설은 이보다 더 친절한 도슨트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림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고 사소한 사물조차 화가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헤아리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살면서 조선의 미술을 이토록 찬찬히 향유하는 경험은 난생처음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조선 미술관은 <1관.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과 <2관. 궁궐 안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로 구성되어 있다. 1관에는 조선의 양반과 서민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풍속화를 엿볼 수 있고 2관에서는 궁궐의 안과 밖에서 열린 행사를 기록한 궁중기록화를 보여주는데 1관과 2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1관은 그림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 속 다양한 주인공들과 교감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챕터가 끝날 때 즈음엔 마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로드 무비 한편을 찍고 나온 느낌이라면, 2관에서는 한 발치 멀리 떨어져서 궁궐 안과 밖의 모습을 꼼꼼히 관찰하고 분석하며 임금과 사료들을 포함하여 서민들의 모습까지도 문화 절정기의 흐름 안에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조선 미술의 화가들


 

개인적으로 미술을 전공한 나에게 조선 미술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도 각 화가의 화풍과 사연을 살펴보는 것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은 감상하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였는데 김홍도는 거침없는 붓 터치와 더불어 붓끝의 선과 먹의 농담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그의 능력은 마치 시각적인 붓선의 흐름에서 청각적인 운율감과 리듬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며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김홍도는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음악에도 천재성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가 엄청난 예술성을 지닌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고 김홍도의 작품 중 <포의 풍류>에서 이가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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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은 인물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묘사하여 단순한 이목구비에도 생생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도록 연출하는 뛰어난 재주가 있는 화가였다. 작품 속 인물들을 서로 묘한 시선을 주고받게 만들어 그림의 뒷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하고 그림 속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단 훔쳐보기 기법을 이용하여 은밀한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자극했다.

 

실제로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양반과 서민들이 있는 환경으로 직접 뛰어들어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았다고 하는데 그의 프로페셔널한 직업 정신이 드러난다. 신윤복은 <기방무사>에서 기방에서 벌어지는 당대 상류층의 일상을 직접 관찰하고 퇴폐성을 고발하여 문화 절정기 속에서도 어두운 이면을 집중 조명하였는데 상류층의 입맛에만 맞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그의 예술가로서의 당당함과 호방함이 참 멋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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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조선 미술관을 모두 읽고 나서 그동안 조선의 미술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고 사유하는 과정 없이 그저 미디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서양 미술만을 정답으로만 여겼던 문화 사대주의에 빠졌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다채로운 색감, 역동적인 구도, 과감한 붓 터치는 서양 화풍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 조선의 미술에서 절제된 색감, 여백의 미, 자유로운 붓선을 통해 더욱 깊이 있고 참된 그림의 맛을 목젖 뿌리 깊은 곳까지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의 그림은 생생한 드라마이자 다큐멘터리였기에 잠시나마 '나'란 사람의 민족의 뿌리를 찾아, 때로는 절경 속 산수의 거리를 노니는 양반이 되기도 하고 애끓는 서민이 되기도 하며 작품 속 인물이 되어 울고 웃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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