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도 너무 큰큰해

글 입력 2023.03.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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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짧게 있다 가니까 눈이 큰큰해.


처음으로 내가 섬에서 나고 자란 것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명절을 맞아 부리나케 달려갔을 때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6시간은 지났을까. 갑자기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불안감이 엄습해 일기예보를 급히 찾아보았다.

 

대략 나흘 뒤까지 작은 바람 그림이 떠 있었다. 명절은 물론 연휴가 끝나고도 하루 이틀은 더 고립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나 친구들이랑도 겨우 2시간 잠깐 봤는데. 내일 같이 야식 먹기로 했는데. 모레에는 엄마랑 아빠랑 카페도 가려 했는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한번 크게 두르고 계란물을 묻힌 동태를 올렸다. 지글거리는 소리도, 명절에만 꺼내어 쓰는 얇은 카의 촉감도 오랜만이었다. 얼마만의 명절인 걸까. 엄마는 자꾸만 유리창 너 흔들리는 나무를 힐끔거렸고, 아빠는 뉴스 아래 지하철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간략한 일기예보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주연아, 그냥 내일 올라가.

 

 

[크기변환]집_본문.jpg

 


연차 같은 선택권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비행기 시간이었다. 이미 일정 변동에 1번, 자꾸 바뀌는 일기예보에 2번을 변경한 예약이었는데 또 바꿔야 했다. 이렇게 짧게 있다간 적이 있었나.


다른 때보다 더 간이 잘 된 듯한 명절 음식들이 가득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차에서 내렸다. 서울에 사는 친척과도 비행기 시간이 달라 수속대 앞에서 인사를 하고는 홀로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엄마, 내 비행기는 지연 없대. 도착하면 전화할게.

  

세상은 가끔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소름 돋게 굴 때가 있다. 혼자 걸은 지 2분은 지났을까. 친구가 어디냐며 전화를 걸어 왔다. 야, 니 어디. 나 비행기 지연돼 갖고 아직도 앉아있는데. 혼자 있으면 한없이 막막하고 먹먹해질 것만 같은 때에는 기어코 혼자 두지 않는 것처럼, 세상은 뒤통수만 때리는 것 같다가도 듬직하고 그렇다.


친구에게 20여 분간 내가 지금 얼마나 서러운지 울분을 토해냈다. 야, 너무 간절하게 굴지 말고 그냥 쿨하게 굴어. 아니 그걸 모르겠냐고. 뭐 어떡해. 인턴은 어쩔 수가 없다. 절박하게 매달리지 않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백번 알지만, 본디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지 않던가.

 

그래도 친구와 떠들어보니 내가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님이 확신이 들어 안심되었다. 이미 알고 있고 깨우친 점이라도 타인의 입을 통해 한 번 더 듣는다면 새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위로받게 되지 않는가.


서울에 도착한 뒤 친구 얼굴을 한 번 더 보고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잠시 멍을 때렸다. 창밖으로 잔잔한 물결이 이는 강가가 보였다. 여긴 이렇게 날씨가 괜찮은데. 실로 야속한 하늘이었다.

 

 

[크기변환]집_마지막.jpg

 

 

자취방에 도착해 짐을 풀던 도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금방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있다는 내 말에 명절에 혼자 있어서 어떡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다니까. 나 혼자 잘 놀잖아. 응 그건 아는데. 너무 짧게 있다 가니까 왔다 간 줄도 모르겠어.

 

아빠는 자꾸 눈이 큰큰하대. 바로 대답을 뱉으려니 왜인지 울대가 아파왔다. 눈이 큰큰하대도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멀쩡한 척을 했다. 그치, 도깨비 왔다 간 것 같지. 응. 전화를 끊고는 한참을 잠만 잤던 걸로 기억한다.


큰큰하다. 원래 ‘커다랗다’는 뜻의 사투리이지만 ‘시큰하다’는 뜻을 말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았다. 사전적 정의와 전혀 연관 없는 의미로 말을 바꾸어 써도 걸릴 것 없이 알아듣는 사이. 나와 그런 사이인 사람들은 전부 제주에 있어서, 김포행 비행기가 이륙할 적이면 괜히 쓸쓸하고 씁쓸하다.

 

이날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제주 상공을 완전히 벗어나기까지의 시간이 더욱 외로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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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시기에 고생한 결과가 기대만큼 좋지 못했다면 나는 이날을 어떻게 기억했을지 모르겠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던 날 중 조금은 많이 서러웠던 날일까, 그러잖아도 좋아하지 않는 겨울을 더욱 싫어하게 된 날이었을까.

 

25노트 이상의 바람이 지속된다면 비행기는 물론 배도 뜨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일까, 알찬 명절과 연휴를 즐길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내려갔지만 정작 48시간도 안 지나 올라왔던 억울한 날일까. 아니면, 그래도 당장의 입장과 상황에선 최선을 다한 날이었을까.


너무도 간절해서 차마 글로도 쓰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아직도 숨 고를 새도 없는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한 꼭지의 글이라도 써내기 위한 시간을 긁어모으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간 사이 혼자만의 시간이란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문 너머로 시끄러운 연회장이 있는 조용한 방 안 같은 느낌.

 

아마 몇 시간 뒤면 또 넘치는 새로운 정보와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에 정신도 못 차리고 있겠지만, 여태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꼿꼿하고 뚜렷하게 세워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허리를 곧추세우고자 한다. 나부끼지만 휩쓸려가지는 않는 갈대처럼.

 

너무도 절실해서 아직도 입으로 뱉기 힘든 날들, 실감도 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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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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